전라북도/임실군

임실...도통암 마애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7. 7. 21. 07: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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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통암. 삼계면 뇌천리 산43

정확한 창건시기는 전하지 않으며,근대에 조성한 사찰로 전한다.

 

금년 봄

무등산 석굴사 마애여래좌상 답사 후 1950년 이전 우리나라 지정, 비지정 마애불을 모두 뵈었다고 건방지게 글을 올렸더니 여기저기로 부터 내가 알지 못했던 그 이전 시기의 마애불 소재를 알려주었다. 몇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일제 강점기 이후 마애불이었으며,대부분 근대불로 치부하고 답사 동선에서 제외했던 불상이었다.

 

그 이후 근대불 답사 목적으로는 동선을 수립하지 않으나 답사 동선에 가까우면 들리기로 마음 잡았었다.

도통암 마애불도 그러한 연유로 이제 인연지었다.

 

 

도통암 마애여래좌상

종모양의 감실을 마련하고 연화대좌위에 모셨다.

상호는 양감이 있으나 불신은 선각에 가깝다.

 

 

 

겹동선으로 두광을 표현하였으며

나발에 육계가 높고, 상호는 원만형으로 살찐 모습이다.

백호를 표현하였고, 귀는 길어 어깨에 닿았으며 삼도를 새겼다.

어깨는 좁고 법의는 우견 편단이다.

 

 

법의는 선각으로 형식적이며

손은 크다.

 

 

 

석불은

누가 언제 조성하였으며 근세불로 전할까?

 

도통암에서 들어서며 인사를 나누었던 보살(스님?)님이 불단에 참배중인 나를 찾아 대웅전으로 오셨다.

대부분 참배객이 마애불 사진만 찍고 내려가는데 웬사람이 나올 기색이 안보여 찾아 왔다고 하셨다.

 

옳거니!

-보살님. 혹시 저 불상 언제 모셨는지 아세요?

-알지

-언제입니까?

-내가 17살 때 여기에 들어 왔는데, 그 해에 김해에서 오신 분이 석가탄에 불을 지펴 놓고 정을 연마해가며 새겼다도 하신다.

-그분을 직접 뵈었군요. 보살님 연세는 어떻게 되세요?

-보다말다 여기서 묵었는데.... 내나이가 78이다.

 

재빨리 휴대폰 계산기를 두드렸다.

78-17=61

2017-61=1956년

 

즉 도통암 마애불은 1956년에 조성되었다.

 

 

도통암 마애불 조성기?

향우측에 명문이 보인다.

 

 

명문은 육안으로 구별되지 않았다.

 

 

마애불 향좌측에도 마애비와 명문이 보인다.

 

 

마애불 조성기?

 

 

회명 대선사 열반 기념비

마애부도비일까?

 

 

육안으로도 일부 명문이 보인다.

불기 二九九六년 서기一九六九년 기유 四월 三일(1969년 4월 3일)

주지 비구니 문법상 강정화

 

그런데

대화를 나누던 보살(스님)께서 어디서 왔냐고 물으신다.

 

-대구서 왔습니다.

-요즘 대구 사람이 자주 오네

-어떻게 아세요?

-대구사람이 와서 글씨를 물로 씻고 치솔질하고 그랬어

 

절로 웃음이 나왔다.

마애비에 그런 정성을 다 할 사람은 우리카페 심충성님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대웅전 불단

 

 

독성탱

 

 

독성탱 조성기

도통암을 미산사米山寺로 칭했음을 알 수 있다.

화주. 금어를 표기했고, 금어는 청신사 임석정이다.


증명證明 비구 임석두 스님은

효봉학눌스님의 은사이신 석두보택石頭寶澤( 1882~1954)스님이시다.

금어金魚 석정스님은

통도사에서 주로 활동하셨던 스님으로  청신사淸信士로 표기되어 있어 미산사 탱화 봉안시에는 출가전이었던 것 같다.

더불어 스님은 석두스님 자제분으로 두분은 부자간이면서 사자師資간이다.


또한

주지스님이 아직 비구계를 받지 않은 사미沙彌 이동규 스님이다.

근데

면보시주에서 面은 무엇을 의미하는지?

탱화 재료를 이야기하는가?

 

조성시기는 불기 2977년으로

1950년 10월 7일 한국전쟁 기간이었다.

 

보살님 말씀에 의하면

산신탱,칠성.독성탱이 있었으나 산신탱은 도난 당했다고 한다.

 

 

칠성탱

화기는 동일하다.

 

 

불기 2977년 10월 7일

 

 

임실군청 홈페이지에 실린 전설

우리나라 많은 사찰에 전해 오는 설화이다.

 

삼계면에 옛날 (고려중기 이후로 추정)부터 도통사라는 절이 있어 스님들이 도를 닦았다 한다. 이 절에는 오른쪽으로 사람의 키로 두어길이 넘는 깎아지른 듯한 암석이 있고 그 아래에는 맑은 샘이있어 7,8월 삼복더위에도 이 샘물을 한 모금만 마셔도 더위가 싹 가신다고 한다. 이 샘이 있는 바위에 직경 3cm 정도 되는 구멍이 하나 있는데 여기에서는 하루 분의 식량이 매일 나왔다고 한다. 그래서 이산의 이름을 미산이라 전래되었고 절 이름도 도통사보다는 미산사(米山寺)라고 더 많이 알려져 있다.

 

이 전설은 바위의 작은 구멍에서 나오는 쌀에서부터 연유된다.

도통사에는 주지스님 한 분이 상좌 한 사람을 데리고 도를 닦고 있었다. 스님과 상좌는 하루 새끼의 식량을 이 구멍에서 얻을 수 있어 집집마다 시주를 다니지 않고서도 살 수 있었으며 완전 속세와의 인연을 끊고 수도하는데 만 전념할 수 있었다. 조용하기만 하던 이 절에 어느 날 방랑도사 한 분이 찾아왔다.

 

그러나 상좌는 걱정이 태산 같았다. 돌에서 나오는 쌀은 두 사람뿐인데 밥을 먹어야 할 사람은 세 사람이 되니 상좌는 지체가 낮은 자신의 밥이 적어져 짜증이 났다.상좌는 이 도사를 쫓아낼 수도 없고 그렇다고 쌀도 더 나오지 않자 바가지를 들고 바위 밑에 가서 정한수를 떠놓고 한사람의 식구가 늘었으니 쌀을 더 나오게 해달라고 부처님께 빌었다. 그러나 쌀은 역시 두 사람분만 나오고 뚝 끊겼다. 상좌는 부처님이 원망스럽고 돌구멍이 미웁기까지하여 그만 부지깽이로 구멍을 후벼 버렸다. 이런 후로 이 돌구멍에서는 쌀은 나오지 않고 대신 하얀 쌀뜬물 만이 나왔다고 한다.(지금도 비가 오면 쌀뜬물 같은 물이 나온다고 함)할 수 없이 상좌는 식량을 구하기 위해 이집 저집 이 마을 저 마을로 시주를 나서는 고행 길에 들어섰다.

 

특히 상좌는 절 앞마을(지금의 두월리 상지동)에 있는 부잣집을 자주 찾아 시주를 받았으며 이 부잣집 식구들 중 가장 아름답고 마음씨 또한 착하기로 소문난 순이는 상좌를 측은하게 여겨 쌀을 듬뿍 떠주었다. 이러는 동안 상좌와 순이는 서로를 좋아하기에 이르렀으며 둘은 인적이 없는 곳에서 만나 사모의 정을 나누었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조금 전까지만 해도 별이 총총히 빛나던 맑은 하늘에 난데없이 먹구름이 몰리고 천둥과 번개가 번쩍이더니 뒷벽에 서 있던 암석이 굉음을 내며 부등켜안고 있는 두 사람을 덮쳤다. 그런 일이 있은 뒤로 바위에는 두 사람이 껴안고 있는 모습이 하얗게 나타나 있어 중바위라는 이름이 붙여져 내려오고 있다. 두 사람을 덮쳐버린 바위에서는 지금도 비가 오면 붉은 물이 흐르고 있어 피바위라고도 부르고 있다.

 

 

내려오는 길 

마애불 조성시기를 알았다는 뿌듯함 보다 조심해 가라는 노보살님의 얼굴이 자꾸만 오버랩되는 연유는...

 

201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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