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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도/고양시

고양...북한산 산영루와 비림

by 임병기(선과) 2017. 6.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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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운사 답사 후

태고사.봉성암.용암사지를 경유 도선사로 하산하기 위해  왔던 길을 되돌아서 용학사 방향 산영루로 향했다.

 

 

용학사 입구 비림

바위를 대좌 겸 비좌로 삼아 세웠거나 암각문형태의 비석이 서있다.

 

북한산성을 관리했던 총융사使, 무위소 제조武衛所 提調, 경리사經理使의 선정비와 애민선정비, 영세불망비이다.

여기저기에 산재해있던 비석 26기를 수습하여 세웠다고 한다.

 

 

산영루山映樓

태고사 계곡과 중흥사 계곡이 만나 합수되는 지점에 있으며, 산그림자가 수면 위에 비치는 곳이라 하여 산영루로 이름붙였다.

산영루는 고려시대때 중흥사와 연관된 누각으로 추정된다고 하지만 정확한 근거는 없는 것 같다.

 

월사 이정구(月沙 李廷龜 1564~1635)의 월사집月沙集

삼각산기遊三角山記에는 산영루가 옛터로 남았다는 기록이 있다.

 

"조기보하산영루구지早起步下山映樓舊址 아침에 일찍 일어나 산영루 옛터로 걸어갔고

잉방향옥탄仍訪響玉灘 내친김에 향옥탄을 찾았다."

 

즉 1600년대에 산영루는 유실되었고

1745년 성능스님의 북한지에도 보이지 않는다.

 

 

북한지.1745년

1717년 성능 스님이 건립한 항해루가 보이지만 산영루는 표기되지 않았다. 


 

그렇다면

조선후기 선비 문인들이 유람하면서 남긴 "산영루"는 항해루를 산영루로 잘 못 알고 있었던가?

또한

현재 복원된 산영루는 산영루 옛터인지. 항해루 옛터인지...


나로서는 지식이 일천하여 판단할 능력이 없어 위키벡과에서 글을 가져왔다.


출처/위키백과

정유년(숙종 43년, 1717년) 옥오재 송상기의 『옥오재집』「유북한기」에는 ‘중들이 산영루를 중수하였고 단청칠이 이제 막 끝났다. 라는 내용으로 보아 산영루는 이미 헐리고 없어져서 승 성능이 1717년경에 항해루를 창건할 때 유생들은 이를 산영루로 알고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 산영루 연혁
  • 1603년(선조 36년) 이정의 ‘유신각산기’에 산영루 기록 처음 등장
  • 1707년(숙종 33년) 이익의 ‘차삼각팔경운’에 삼각산 필경의 하나로 산영루에 뜬 달 기록
  • 1717년(숙종 43년) 송사기의 ‘유북한기’에 산영루 중수 기록
  • 1745년(영조 21년) 성능의 ‘북한지’에 산영루가 지금은 없어졌다고 기록
  • 1761년(영조 37년) 이덕무의 ‘기북유한’에 산영루 기록 재등장
  • 1799년(정조 3년) 이엽의 ‘북한도봉산유기’에 산영루 기록
  • 1799년(정조 3년) 유광천의 ‘유삼각산기’에 산영루 기록
  • 1793년(정조 17년) 이옥의 ‘중흥유기’에 산영루 기록
  • 1776년(정조 즉위년)~1820년(순조 20년) 신명현 산영루 유람
  • 1794년(정조 28년)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 정약전이 산영루 유람
  • 1816년(정조 18년) 추사 김정희, 동리 김경연 산영루 유람
  • 1858년(철종 9년) 양의영의 ‘유복한기’에 산영루 기록
  • 1874년(고종 11년) 김영조 산영루 유람
  • 1882년(고종 19년) 박문호 산영루 유람
  • 1884~1885년 주한미국영사관 ‘포크’ 공사직 대리가 산영루 촬영
  • 1906~1907년 독일인 헤르마 구스타프 테오도르 산더가 산영루 촬영
  • 1911년 독익 베버 신부 산영루 촬영
  • 1925년 산영루 유실 

 

현재 정자는 2014년에 복원한 정丁자형 정자로 누하에 사다리꼴 석주를 세우고 위에 마루를 깔고 평난간을 설치하였다.

겹처마 팔작지붕으로 정면 3칸. 측면 1칸이며, 정면 중앙 맞은편 계곡쪽으로 마루를 연결하였다.

 

 

산영루에서


험한 돌길 끊어지자 높은 난간 나타나니

겨드랑에 날개 돋쳐 날아갈 것 같구나

십여 곳 절간 종소리 가을빛 저물어가고

온 산의 누런 잎에 물소리 차가워라

숲 속에 말 매어두고 얘기 꽃을 피우는데

구름 속에 만난 스님 예절도 너그럽다

해 지자 흐릿한 구름 산빛을 가뒀는데

행주에선 술상을 올린다고 알려오네


*1794년 가을 다산 정약용과 그의 형 약전이 산영루를 방문하고 남긴 시.


 

201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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