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경기도/고양시

고양...북한산 상운사

by 임병기(선과) 2017. 6. 11.
728x90
728x90

 

 

상운동계祥雲洞界

선계로 들어가는 듯 동계 각자가 반긴다.

 

 

사찰장승.

그런데 일주문에 걸려있어야 할 주련이 눈길을 끈다.

입차문내 막존지해入此門內 莫存知解(이 문을 들어서면 알음알이를 지니지 마라)

 

 

상운사祥雲寺

신라 때 원효대사가 삼천사와 함께 창건하였다고 전하며, 조선 중기 이후 승병들이 머물렀던 절이다. 1722(조선 경종 2) 승병장 회수가 중창하면서 절 이름을 노적사로 바꾸었다. 1798년(정조 22) 승병장 덕신스님,  응감스님,총섭 승일스님, 성봉스님 주도 아래 극락전을 중창하였고, 1813(순조 13) 승병장 태월스님과 지청스님이 중건하면서 상운사로 바꾸었다. 1864(고종 1) 긍홍스님이 극락전을 중건하고, 1898년 한암스님이 큰방을 중건하였으며, 1912년 주지 법연스님과 덕산스님이 법당을 중수하였다 한국전쟁의 전화를 입고 폐사상태의 사찰을 1960년대 명선스님이 극락전을 복원하였으며, 1980년대에 진만스님이 극락전을 대웅전으로 중건하여 오늘에 이른다.

 

북한산 봉우리가 흰구름처럼 상서러운 기운을 품는 듯 하다

다만 이름을 불러주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대웅전 삼존불.1982년

석가, 약사, 아미타

 

 

삼층석탑

2층 기단의 삼층석탑

초층 옥개석과, 2.3층 탑신, 상륜부, 상하기단 각1면은 1999년에 후보하였다.

고려초기 석탑으로 추정된다.

 

 

 

지대석과 하층기단

1개 탱주,양우주가 모각되어 있다.

 

 

상층기단 면석

양우주,탱주가 표현되었다.

 

 

옥개석 부재

망실된 초층 옥개석 부재로 보인다.

 

 

상층기단 갑석과 초층 탑신석

기단갑석 상부에 2단괴임을 두고 위에 별석의 앙련괴임을 올렸다.

탑신 한면에 감실이 있다.

 

 

별석괴임과 탑신

탑신에는 양우주를 새겼다.

 

 

옥개석 낙수면 기울기는 급하고, 전각의 반전이 경쾌하다.

상부에 각형 1단 괴임을 올렸고, 층급은 4단이며 절수구가 있다.

 

 

 

대웅전 옆 향나무

 

 

 

400여년 수령으로 자식을 바라는 분들에게 영험하다고 전해온다고 한다.

 

 

 

 

약사굴

전殿이 아니고 굴窟이다.

 

 

약사여래좌상

앙련과복련이 대칭인 연화좌 위에 계신다.

소발에 육계가 낮다. 장방형의 상호이며 턱이 길다.

목에는 삼도가 있고, 법의는 통견,  주름은 직선형이며, 군의의 띠 자락이 배 앞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오른손은 촉지인을 취하고, 왼손은 선정인을 취하며 그 위에 후보한 약합(작게 표현된 약합을 보완했는지는 확인하지 못했다). 일견 근대불 느낌도 들지만 조성기문에 의하면 홍치弘治 10, 1497(연산군 3)에 봉안하였음을 알 수 있다. 

 

 

약사여래 좌우에는 특이하게도 독성탱을 모셨다.

 

 

 

 

천불전.목조아미타 삼존불.

"상운사 목조아미타불좌상의 대좌에는 조성 배경을 알려주는 묵서(墨書) 2개가 있다. 그 중 하나의 묵서에는 1713년 7월 5일에 시작하여 8월 6일에 일을 완성하여 노적사(露積寺) 극락보전 아미타연대(阿彌陀蓮臺)에 봉안하였다는 내용과 조성에 참여한 조각승 진열(進悅), 영희(靈熙), 태원(太元), 처림(處林), 청휘(淸徽)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노적암(또는 노적사)은 1711년 북한산성을 축조한 후 산성의 수비와 관리를 위하여 건립한 사찰이다.

 

그리고 1813년에 쓰인 「상운사극락전중창기(祥雲寺極樂殿重創記)」에 1722년 승장(僧匠) 회수(懷秀)가 상운사를 창건하였다는 기록과 아미타불좌상 대좌의 1730년명 묵서에 상운사에서 백기(白基), 현지(玄持) 등이 개금하였다는 기록을 통하여 불상은 18세기 전반에 상운사로 옮겨 왔을 가능성이 높다"...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마지막 문장 "상운사로 옮겨왔을 가능성이 높다."?

상운사 이전에 사찰명이 노적사이었던 적도 있어 본래 부터 상운사에서 조성되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크기와 기법으로 보아 삼존불은 함께 조성한 불상은 아니며 관음보살은 1800년에 개금하였다는 묵서가 있다고 한다.

 

 

아미타불

나발, 중간계주,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방형 상호, 살찐 볼, 턱은 짧고, 코는 각지고 크다.

두 손은 별개로 조성하여 끼워 넣었다.

통견의 법의, 가슴에는  3단으로 접힌 군의 가장자리가 표현되었다.

연꽃 모습의 대의자락이 무릎위로 흘러 내리고 있다.

 

 

관음보살

연꽂은 후보물이다,

 

 

대세지보살

아미타불과 조성하였으며 연꽃은 후보물이다.

 

 

 

부도전 뒤편에 위치한 선각마애보살좌상

 

 

결가부좌, 선정인을 결하고 있다.

감실속에 계신 보살상을 표현한 모습이며 불신에서 광채를 발하고 있다.

거의 작례가 없는 유형의 보관(?)이 표현되어 보살상으로 추측된다.

옆의 홈은 목조 보호각의 기둥 자국 일 것이다.

대부분 조선후기에 조성된 상으로 추정하고 있으나 일제 강점기 느낌도 든다.

 

 

 

 

 

상운사

작지만 답사객들에게는 넘쳐나는 절집이었다.

 

2017.05.26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