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고양시

고양...삼천사지 대지국사 부도비

임병기(선과) 2017. 6. 6. 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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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천사지 탑비전 석축

 

삼천사三千寺

마애여래 입상이 있는 사찰명이다.

그런데

삼천사지는 발굴된 와편의 명문으로 인해 三川寺址임이 밝혀졌다.

즉, 삼천사三千寺는 삼천사三川寺 옛터에 중건한 사찰로 마애여래입상도 三川寺址 磨崖如來立像이 바른 표기일 것 같다

 

삼천사지 종형 부도를 지나면 정면에 거칠게 치석한 석재를 허틀게 조적한 석축이 보인다.

도괴된 석축을 쌓은 듯한 흔적도 보이며 쐐기 자국도 남아 있다.

 

 

불교닷컴.2007.11.07

 

"서울역사박물관(관장 김우림)은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 산 1-1번지 일대 삼천사지 탑비구역에 대한 발굴조사 결과 250여 점의 명문비편을 비롯해 탑비전(塔碑殿)으로 추정되는 고려전기 건물터, 500여점의 유물 등을 확인했다고 6일 밝혔다.

 

삼천사는 원효대사가 661년 창건한 법상종 사찰로, 임진왜란 이후 폐사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나 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이 없으며, <고려사>, <동국여지승람>, <북한지> 등에 단편적인 기록이 남아있다. 삼천사터는 2005년 9월 발견돼 2년 동안 발굴조사가 진행됐다.

서울역사박물관은 "기록이 부족해 실체를 알 수 없었던 북한산 삼천사지를 비롯해 고려전기 건물지 등을 새로 확인하고 청동사리합(靑銅舍利盒), 고려석조보살두(高麗石造菩薩頭) 등 고려시대 전ㆍ중기에 해당하는 희귀한 유물들이 다수 출토된 점이 이번 불굴조사의 성과"라고 설명했다.

 

탑비전지(塔碑殿址)는 정면 3칸(210×340×210㎝), 측면 1칸(340㎝)정도의 규모로 추정된다. 고려전기의 전형적인 양식을 갖춘 구조로 건물 정면과 측면에 각주를 사용하여 1칸씩 외여닫이문을 달았다. 이 자리에서 고려시대 와편과 막새류, 햇무리굽 청자편, 상감청자, 청자용문호, 청동대발, 철제발 등의 유물들이 출토됐다.

 

고려석조보살두(高麗石造菩薩頭)는 아직까지 출토된 바 없는 특이한 도상으로 주목받고 있다. 보통 오불(五佛)이나 칠불(七佛)을 표현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반하여 삼불보관(三佛寶冠)을 갖추고 있어 불교미술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대지국사명문비편(大智國師銘文碑片)에서 밝혀진 법경스님의 행장은 적현(赤縣) 출신으로 승랍(僧臘) 85, 세속(世俗) 92세에 입적한 기록이다. 법경스님은 고려 현종대(1009~1031) 현화사(玄化寺)의 창건과 함께 고려 전반기 법상종 전성시대를 이끌었던 스님이다.

삼천사지에서 발굴된 청동사리합(靑銅舍利盒)은 사리합의 양식 및 연대로 보아 대지국사법경과 연관되는 유물로 추정된다고 서울역사박물관측은 밝혔다."

 

고려 석조보살두...사진출처/불교닷컴

 

 

 

탑비전지

주초와 고맥이돌

 

 

탑비전지

대지국사 부도비 귀부. 이수. 대좌

 

 

현장 안내문의 전각 배치도

부도비 뒤쪽이 부도?

좌측 전각이 금당?

(이런 배치가 가능한가)

부도비 앞쪽 부재는 석등 지대석

(부도를 비 앞쪽에 두지는 않을테고)

 

개인적인 견해 입니다.

 

 

뒷 봉우리가 증취봉일까?

 

귀부의 방향이 산아래가 아니라 동쪽 나한봉 방향이라고 한다.

풍수비보책일까?

 

 

귀부

지대석 위에 앉아 목을 곧게 세우고, 눈을 부릅뜨고 있다.

입가에는 고려시대에 나타나는 아가미를 표현하였다.

등의 육각형 귀갑문에는 王자를 새겼으며,귀갑대를 주름문으로 표현하여 돌리고 연주문을 장식하였다.

 

비슷한 작례의 귀부로는

현화사비의 귀부(1021년), 칠장사 혜소국사비의 귀부(1060년),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비의 귀부(1085년), 금산사 혜덕왕사비의 귀부(1111년)가있다.

원주.법천사지광국사탑비

지광국사탑비 측면

김제.금산사 혜덕왕사비 귀부

안성.칠장사혜소국사비...사진/시나브로님

 

귀부

입가에 아가미가 달린 어룡형이다.

 

 

 

비는 망실되었고

비좌에 복련을 새긴 받침을 새겼다.

귀갑대 주름문

연주문

(연주문은 법상종 계열 스님 귀부에 보인다고 들었는데...)

발 뒤의 물갈퀴(비늘?)

받침돌에도 문양을 새긴 듯하다.

 

 

王자 문

 

 

 

비문에 따르면, 비문은 이영간(李靈幹)이 짓고 최홍검(崔弘儉)이 찬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다. 

 

 

 

이수

정면에는 여의주를 입에 문  두 마리 용과 운문이 조각되어 있다.

상면에는 보주를 끼운 원형공이 있고, 복판 4엽의 연화문를 표현하였다. 

 

 

이수

두마리 용과 여의주

 

 

방형 대좌

자료에는 안상이 새겨진 부도 대좌로 설명하고 있다.

부도대좌라면 다른 곳에서 옮겨왔을 것 같다.

부도비 앞쪽에 부도를 세우지는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저어기

천상의 극락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을 형상화 하지는 않았는지...

 

 

2017.0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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