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강화군

강화...장정리 석불입상

임병기(선과) 2016. 10. 31.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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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에서 가장 대접 받는 불상 아닐까?

 

 

보호각 간살만 낮추었으면 금상첨화이었을텐데.

 

 

보호각일까?

감금일까?

 

 

어?

내눈을 의심했다.

 

나는

왜 강화에서 남도땅 후백제계열의 불상을 떠올렸을까?

 

 

 

즉,남원 신계리 마애여래좌상에서 보이는 특징이 보인다.

 

높은 육계

두툼한 상호

육감적인 입술

굵은 삼도

왼똑 어깨로 넘긴 법의 자락

광배의 연주문

 

장인은 후백제 장인의 후손들이었을까?

 

 

장정리 석불입상.

판석에 주형거신광배, 양감이 없는 불신이 함께 조성되어 있다.

소발, 큼직한 육계, 살찐 상호,입술은 두텁고, 귀는 길며 삼도가 표현되어 있다.

오른손은 여원인, 왼손은  변형된 시무외인을 취하고 있다.

법의는 통견으로, 의문이 상체에서 하체까지 넓은 U자형으로  흘러내리고 있다.

군의자락은 발목까지 드리워져 있다.

두 발은 뒷꿈치를 맞붙이고 좌우로 벌린 모습으로 발가락까지 표현하였다.

광배는 2줄 겹동선으로 신광, 두광을 새겼고, 안쪽에는 연주문, 가장자리에는 화염문을 새겼다.

 

오층석탑과 동시대에 조성된 고려후기 불상으로 전한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더 올려보고 싶은 것은 왜일까?

 

발이 찍힌 사진이 없어 문화재청 사진을 들고 왔다.

 

 

 

사진...문화재청

 

 

 

 

 

 

달빛에 물든 설화가 전한다.

고려 예종1년(1106) 3월 7일(음)에 한 노파가 연못가에서 빨래를 하고 있을때 갑자기 오색 무지개가 찬란하게 비추더니 연못에서 옥함이 떠올라 열어 보니 옥동자가 비단에 쌓여 있었다 한다. 노파가 신기하여 아이를 임금에게 바치고 궁중에서 기르게 하였다. 왕은 이 아이의 성을 『봉』이름을『우』라 하였고,총명한 이 소년은 10세에 등과한 후 고려 조정에서 큰 벼슬에 올랐다. 이후 5대손 봉천우가 정승에 올라 조상의 은공을 기리기 위하여 봉은사라는 사찰을 짓고 노파의 갸륵한 은공을 받들기위해 오층석탑을 쌓고 또한 이 석조여래입상(일명-석상각)을 새겨 매년 제사을 올려 은혜에 보답하고자 하였다 한다.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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