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강화군

강화...해운사 석조약사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6. 10. 29. 07: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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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사海雲寺

옛 진해사터에 1963년 새로 사찰을 중건하였다고 한다..

병와 이형상(1653~1733)이 1694~1696년 사이에 저술한 강화부읍지 강도지에 해운사의 전신인 진해사가 등재되어 있다.

"진해사는 신미년(1691)에 본부 강화 유수부에서 모집한 화주승(化主僧) 32명이 공사를 시작하여 임신년(1692)에 준공 하였다.군량미와 군기를 보관하고 승군이 지키도록했다.  총섭사(摠攝使)를 두어 각 사찰의 승군을 통솔하게 하였다"

 

 

강도지에 언급된 진해사의 건축부재들로 보인다.

 

 

승보전 僧寶殿

나한전의 다른 이름이었다.

 

 

석가여래를 주불로 나한을 봉안하였다.

 

 

 

승보전의 용왕탱

 

 

석조약사여래좌상

대좌와 광배는 결실되었고, 상호는 심하게 훼손되어 형체 구분이 어렵다.

통견의 법의는 길게 무릎까지 덮고 있으며,의문은 간략화 되었다.

왼손에 약함을 지물로 든 약사여래이며, 약사여래좌상의 오른쪽 수인이 시무외인을 결한 경우는 흔치 않다.

결가부좌한 하반신이 높아 전체적으로 안정감을 가져온 불상이지만, 고려초기 보다는 중기 이후로 보면 어떨까?

 

 

 

 

 

 

진해사 창건이 조선 숙종때로 전하지만

약사여래좌상으로 미루어 그 이전 고려시대에도 사찰이 있었음을 짐작 할 수 있다.

 

 

1906년 고재형의 심도기행의 진해사 부분을 보자.

 

진해사전록초비鎭海寺前綠草肥   진해사 앞에는 풀이 무성하고

담운혜월총의희曇雲彗月摠依稀  구름속 밝은 달은 헤매는듯 보이누나

적연공탑무이소寂然空搭無人掃  고요한 탑 앞에는 인적이 없고

유유산금대춘비惟有山禽帶春飛  산새들만  봄빛 띠고 날아가네

 

고재형은 봄날 달이 뜬 밤에 폐사 된 진해사에 들렸으며

탑이 남아 있었던 것을 알 수 있다.

 

"심도기행(沁都紀行)"

강화도 선비 고재형(高在亨 1846-1916)이 강화도의 200여 마을 명소를 직접 방문하여 각 마을을 주제로 한시(漢詩)를 짓고, 그 아래에 각 마을의 유래와 풍광, 인물, 생활상, 관습 등을 설명한 산문을 곁들인 기행문집이다. 고재형은 1906년 봄 강화군 불은면 두운리 두두미 마을을 첫 출발지로 하여 강화도 기행을 떠났다. ≪심도기행≫ 맨 첫 번째 시의 주석에서 ‘병오년 봄에 강화부 전체의 산천과 고적을 다시 탐방하기 위해서 길을 떠난다.’고 밝히고 있다. 그는 강화도의 거의 모든 마을과 명소를 직접 말을 타고 다니며, 사람들을 만나보고 자료를 수집한 다음 한시 7언절구 256 수를 짓고 그 마을의 역사와 당시의 마을의 모습을 정리하였다.

 

고재형은 선대로부터 살아온 고향 마을인 두운리 두두미마을에서 1846년에 태어났다. 호는 화남(華南)이고, 본관은 제주(濟州)이다. 1888년(고종25)에 식년시(式年試) 진사(進士)로 합격하였으며, 관직에 나아간 기록은 발견되지 않는다. 1916년에 별세하였으며, 묘는 불은면 두운리에 있다. 불은면 두운리에 직계 후손들이 살고 있다.

 

 

 

적연공탑무이소寂然空搭無人掃  고요한 탑 앞에는 인적이 없고

 

심도기행 문장에 보이는 그 탑은 어디로 만행을 떠났을까?

 

2016.1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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