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강화군

[스크랩] 강화도 / 한말의 역사 현장에서

임병기(선과) 2008. 6. 6.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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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는 비가 부슬부슬 내리는 일기에도 피곤하기는 커녕 열정이 넘쳐나건만 일행들 특히 문화재청에서 온 직원들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강화도는 한말에 서구 열강들이 한양으로 침략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통과해야 하는 지리적 위치기에 어쩌면 군사적 요충지었다.


강화 해안선을 따라 구축되어 있는 군사시설인 진, 보,돈대가 수도 없이 많아 보여 한말에 축성했을 것이라 지레 짐작을 했는데 가이드에 의하면 임란,병란 후 숙종 재위시 외세의 침입과 이궁목적으로 축성되었으며 경기도 광주,개경과 함께 강화도에는 오늘날 2급에 해당하는 관원이 파견되어 있었다 한다.


문화재적 가치도 중요하지만 일망무제로 펼쳐진 갯벌을 볼 수 있는 가장 전망 좋은 본오리 돈대로 향하면서 이런 길은 마음 맞는 사람과 더구나 마누라가 아닌 아줌마라면 더욱 좋겠다는 생각이 불현듯 스치니 나란 인간은 덜 떨어진 것인지, 인간적인 것인지,언감생심 만추의 로맨스를 꿈꾸는 것인지 모르겠다.


돈대란 군사시설에서도 가장 앞선 곳에 설치된 오늘날의 초소로서 지형에 따라 원형,방형으로 축조되나 본오리 돈대는 반월형이며, 보통 4문의 포,10여 명이 상주하였으며,전시에는 30 여명이 주둔하였다는 학예사의 설명도 눈 앞에 전개된 갯벌의 장관 때문인지 부슬비에 실려 여리게만 들려온다.


가을비가 장마비 만큼이나 세차게 내려 대부분의 일행은 하차할 생각도 하지 않건만 학구열(?)에 불타는 몇몇 사람들은 덕진진과 남장포대로 향하면서 학예사의 설명에 귀를 기울인다.
진은 오늘날 대대병력이 주둔하였던 군사시설이라니 그만큼 요충지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지만 프랑스군이 갑곶돈대로 침입하여 정족산성으로 향한다는 정보를 입수한 양헌수 장군이 여기를 통해서 정족산성으로 잠입 프랑스군을 궤멸시켰을 뿐 아니라 우리역사상 최초로 신미양요 때 미군과 일전을 치룬 곳이라 한다.


덕진진에는 전국에 산재한 척화비와는 다른 대원군 시절에 세운 경고비가 바다를 향해 그시절을 머금고 서있다. "해문방수타국선신물과(海門防守他國船愼勿過)" 즉 어떠한 경우에도 타국의 배는 이 해협을 통과할 수 없다는 문구가 그 시절의 우리가 처한 상황을 대변해주고 있는 듯하다.


날씨 탓에 빠르게 어둠이 산아래로 내려오고 있지만 학예사는 광성보와,초지진,손돌목 돈대,용두돈대를 꼭 보아야 한다며 분주히 발길을 재촉한다. 광성보는 신미양요 때 중화기로 무장한 미군에게 일천한 무기로 맞선 조선군사가 장렬히 전사한 터로 어재연 장군의 형제의 쌍충비각과 52명의 무명용사를 화장하여 7개의 묘을 안장한 곳이라는 늦게 합류한 문화유산 해설사의 맛나는 설명이 이어지며 미군이 승리후 환호하는 사진이 전시되어 있는 곳에서는 해설사의 톤이 높아진다.


"광성보 전투는 미군 해병 전사에 "쟁에서는 이겨도 전투, 정신력에서는 참패한 전투"라고 기록되어 있다하니 조선 군사의 애국심을 미루어 짐작할 수 도 있건만 오늘날 우리의 현실이 나를 잠시 미궁으로 몰아 넣는다.


용두돈대 역시 박정희 대통령의 성역화 사업으로 눈부시게 단장되어 있고 자랑스런 필체가 예외없이 새겨져 있는 곳에서 손돌의 전설과,저 해협 건너 그의 묘 등에 관한 숨겨진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지만 나도 이제 서서히 지치기 시작했다.

2004.11.05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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