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강화군

[스크랩] 강화도 / 희종 능

임병기(선과) 2008. 6. 6. 0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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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사의 맛은 화려한 뒷풀이라고 늘 외치고 다니는 놈인지라 장어구이와 강화군수님이 선물한 오가피주로 시작한 뒷풀이는 화기애애하게 진행되었지만 장어구이 집에서 노오란 장어주를 맛 보지 못하면 뭔 의미가 있겠는가?
하여 이놈이 손수 사장님을 꾀어 우리 테이블엔 오가피주가 아닌 장어주로 마지막 강화의 밤을 노란색으로 물들였다.


숙소로 돌아와서도 문화재청 진행 요원과 답사기 당선자들이 다시 모여 우리 문화의 현주소, 문화정책 등의 다양한 의견을 난상토론한 후 내일의 동선을 고려조의 왕릉 방문으로 픽스했지만 우리 방으로 돌아와도 잠은 오지 않고 4~5명의 사람들과 맨정신으로 대화를 즐기고 있는 중에 맥주 20명과 마른 안주가 방으로 배달 되었다.
모두들 차도 없거니와 술도 살 수 없는 외딴 지역인데?
부산서 오신 사진부분 당선자가 소리없이 나가서는 호텔 지하 노래방에서 주문을 하였단다.
그렇게 강화의 밤은 깊어가고 우리들의 문화재 사랑은 무르익어만 갔다.


예전에 모셨던 직장 상사중에 강화도 출신이 한 분 계셨는데,그분이 늘 하신 말씀중에 강화도 특산 순무와 강화도에는 마니산 말고도 진강산이 있으며 자기의 모교 교가에 진강산이 들어갔다는 말씀을 많이 들었었는데, 그 진강산의 희종능을 답사하기 위하여 좁은 마을 길로 들어섰다.


여기서 잠시 희종에 대해서 자료를 살펴보자.


"희종(熙宗)
1181(명종 11)∼1237(고종 24). 고려의 제21대 왕. 재위 1204∼1211. 본관은 개성(開城). 이름은 영(#영48), 초명은 덕(悳). 자는 불피(不陂).
신종의 맏아들이고, 어머니는 정화태후(靖和太后) 김씨(金氏)이며, 비(妃)는 영인후 진(寧仁侯#진27)의 딸인 성평왕후(成平王后)이다.
1200년(신종 3)에 태자로 책봉되고 1204년에 신종의 양위를 받아 대관전(大觀殿)에서 즉위하였다.

1205년(희종 1)에 최충헌(崔忠獻)을 진강군개국후(晋康郡開國侯)에 봉하였으며 1206년에 다시 진강후(晋康侯)에 봉하고 흥녕부(興寧府)를 세우게 하였다.
1207년 최충헌의 청으로 유배자 300여명을 가까운 곳으로 옮겨 방면하였다.
1208년 개성 대시(大市) 좌우의 긴 행랑(行廊) 1,080영(楹)을 다시 짓게 하였는데 오부방리(五部坊里)와 양반의 집에서 미속(米粟)을 내게 하여 그 비용을 충당하게 하였다.

1211년 내시 왕준명(王濬明) 등과 함께 당시 정권을 휘두르던 최충헌을 죽이려다가 실패하였는데, 이로 인하여 도리어 최충헌에게 폐위를 당하여 강화로 쫓겨났다가 뒤이어 자란도(紫鸞島)로 옮겨졌고, 1215년(고종 2) 다시 교동으로 옮겨졌다가 1219년 서울에 봉영(奉迎)되었다. 이렇게 서울에 돌아와서 딸 덕창궁주(德昌宮主)를 최충헌의 아들 성(珹)과 혼인시켰다.

1227년 복위의 음모가 있다는 무고로 최우(崔瑀)에 의하여 다시 강화로 쫓겨났다가 교동으로 옮겨져 1237년에 법천정사(法天精舍)에서 죽었다.
강화에 장사하여 능을 석릉(碩陵)이라 하였다. 시호는 성효(誠孝)이다."


마을 뒤에 얕은 석축들이 보여 학예사에게 질문을 하였더니 말을 키우던 종마장 터라시며 최충헌 최우에 의하여 교동도,영종도 등으로 유배를 당한 희종에 대한 설명이 이어진다.
희종능도 남한에서 거의 볼 수 없는 고려의 능으로만 생각하라며 일반 민묘 보다 못하니 실망은 하지 말란다.


과연 매장 당시에도 이랬을까? 햇볕이 잘 드는 것을 제외하면 내눈엔 도저히 능이 위치할 장소로 보이지 않으며 앞이 막혀 갑갑한 능에는 문무인석 구별이 잘 되지 않고, 조선조의 왕릉의 곡장이 타원형인데 희종능의 곡장은 ㄷ자 형이며,아무른 장식도 없으며 봉분의 크기가 학예사의 설명대로 요즘의 민묘 수준이라 그 시대의 사회배경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었다.


조사 결과 3차례의 도굴이 자행되었으며 백제의 전방후원의 구조는 아니지만 왕릉 내부로 들어갈수 있는 문지석이 있었다는 학예사의 설명이 이어진다. 또한 이지역은 고려 왕족으로 추정되는 고분이 많이 있다며 안내하는 곳으로 갔더니만, 많은 고분이 완전히 도굴되어 봉분조차 사라졌고 석상들만 어지롭게 널부러져 있어 답사객들의 탄식이 진강산을 울렸다.

어찌 어찌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들리지 않았으면 좋았을 것을....

2004.11.06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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