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천광역시/강화군

[스크랩] 강화도 / 전등사

임병기(선과) 2008. 6. 6.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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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추의 산사, 좋은 사람과의 동행,한결 우수에 젖게하는 가을비가 내리건만 로맨틱한 감상은  
고사하고 춥다는 생각만 드니 너무나 인간적인 발상인지,그런 분위기를 향유할 여력마져 가슴
을 떠났는지 알 수 없지만, 아마 붕괴 위험으로 마니산 첨성단을 답사하지 못하는 아쉬운 마음
때문이라 자위하며 전등사를 들렸다.
강화도를 생각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것이 전등사인 까닭은 시대적 배경은 맞지 않더라도 
신라불교 전래의 단초, 도편수와 주모의 사랑의 전설을 간직한 나녀상(다른 설화도 있지만), 
사고,가궐지 등의 산적한 볼거리 때문일 것이다.
정문인 동문이 아니라 남문으로 들어서면서 가이드는 갑곶돈대로 침입한 프랑스군을 양헌수 
장군이 대파한 병인양요를 설명하면서 열강과 전쟁에서 거둔 승리의 찬가를 노래하지만 퇴각
을 하면서 프랑스군이 약탈해간 우리의 문화재가 떠올라 마음은 편치 않고,최근에 대두된 반환
문제로 여러사람의 의견이 분분하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가져와야 한다는 설과, 최근에 유홍준 문화재청장이 언급한 프랑스 국립
박물관에 한국전시관을 만들어 별도로 전시해야 한다는 현실론이 첨예하지만 비에 젖은 삼랑
성 여장 위의 砲眼은 과거의 아픔을 말없이 抱安하고 있는 듯 하다.
여느 산사와 다름없이 안온하다는 느낌의 진입로지만 보문사 처럼 야외에 윤장대가 조성되어
있어 고개가 갸웃거려진다. 서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어  대조루란 현판을 내걸었다는 대조루 
누하를 통과하면 좁은 중정 위에 대웅전을 중심으로 전형적인 일자형의 산지가람의 형태를 볼
수 있지만 일행들은 굵어진 빗줄기로 인해 대조루 누하를 나설 생각을 하지 않고 있다.
전등사 답사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대웅전을 짓던 도편수와 야반도주한 절 어귀의 주모와의 
사랑 때문에 주모를 형상화한 나녀상을 조성 개과천선하라는 상징성을 표현한 것이라 한다.
물론 경향각지의 절집에는 이와 유사한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지만,불교 설화에 나오는 여우
와 원숭이,토끼의 깨우침의 시현에서 온몸을 불속에 던져 공양을 한 토끼보다 뒤진 원숭이의 
수행과 정진을 상징하여 원숭이 상으로 보는 것도 또 다른 즐거움은 아닐까?
대웅전 건축을 날렵하다는 표현들을 많이 하고 있지만 내눈엔 어찌 불안해 보일까? 
중정의 햇볕을 반사하여 대웅전 내부로 최대한 조명하기 위한 어쩔수 없는 서까래의 물매 
선택으로 인해 바람이 불면 지붕이 날아 갈 듯한 느낌으로 다가오는 것일까?
에혀~ 우리의 가이드는 매장문화재 전공이라 날렵하다는 의미를 질문할 수도 없었지만,처마
의 날렵함과 건물 가구와의 문제는 울카페 최성호님에게 질문하면 쉽게 설명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니 남겨 두어야겠다.
문얼굴의 착시현상을  아름다움으로 나타낸 쌍사문이 보이지 않는 정면의 문을 지나 대웅전 
내부로 들어가니 석존을 주불로 아미타,약사여래불이 협시불로 모셔져 있지만 내눈엔 수미단
양끝에 자리하고 있는 업경대가 눈에 먼저 들어와 온갖 수수한 장식을 갖춘 천정에는 눈이 
가지 않더라.
이상하지 않는가?
물론 모조품이겠지만 대웅전과 규모의 차이만 있을 뿐 흡사한 약사전 옆에 지장보살과 시왕이
시립한 명부전이 있음에도 명부전에 있으야 할 업경대가 대웅전에 있는 것이...
슬쩍 보살님에게 여쭈어 보았더니20(?)년전 명부전에서 대웅전으로 가져왔다는 말씀과 본래에 
있던 자리로 가져왔다는 말씀만 하신다. 그렇다면 대웅전이 예전에는 명부전이었다는 말인가?
불교신문사 주최로 전국 본사의 사계절과,예전의 모습 사진 전시회가 열리는 뜰을 지나 가궐지
로 향했다. 고려 고종 때 풍수도참가인 백승현이라는 사람이 항쟁에서 승리와, 고려 주위의 국가
로부터 조공을 받을 수 있도록 가궐을 조성했다는 안내문에는 왕이 거처하지 않아도 금침을 깔
았다지만 바램과는 달리 전국이 몽고의 말밥굽에 짓밟혔으니 주초만 남은 가궐터는 을씨년스럽
기만 하다.
무수히 쌓인 비에 젖은 낙엽을 밟으며 조선 왕조신록이 보관되어 있다가 병인양요 때 피해를 
입은 사고로 향했지만 복원한 사고를 답사하는 맛과,전등사의 답사의 즐거움 보다 43세의 나이
에 자신이 하고픈 것을 공부하기 위해 전통문화학교에 금년에 입학했다는 부여에 산다는 만학도
와,건축과 졸업반이지만 금년에 수능을 치루고 동국대 문화보존학과에 도전 예정이라는 동행인들
과의 대화의 맛이 더 깊었던 비오는 전등사 답사였다.
2004.11.05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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