뚜벅이 답사 마지막 옛님이 형촌마을 미륵불이었다. 하지만 국립박물관 특별전 관람을 위해 동호회원들과 11시 약속을 지키기 위해 원지동 석탑을 마지막으로 택시를 이용하였다. 서울시내를 승용차로 이동하는 답사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으나,이제는 대중교통으로 동선을 수립하는데 자신감이 생긴 것이 답사 외의 또다른 수확인 듯하다.
대중교통을 이용한 뚜벅이 답사의 일등 공신은 T-MAP이었다. 형촌리 미륵불도 기대에 부응하여 회화나무가 보이는 골목길로 안내하였다. 그런데 이상한 분위기 아닌가? 보호수 안내문이 정방향이라면 미륵불은 왜 등지고 서있으며, 회화나무는 미륵불 앞을 가로막고 있을까?
형촌마을 회화나무. 형촌荊村의 유래는 가시나무가 우거진 마을, 즉 가시내골의 한자음이다. 회화나무 수령으로 미루어 오래전부터 촌락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마을 뒤에는 월산대군 태실과 성석인의 묘소가 있다고 한다. 화나무는 일명 학자수 學者樹 라 불리우며 양반들은 이사를 갈 때에도 쉬나무와 회화나무 종자는 반드시 챙겨 가져갔다고 한다.
미륵불 안내문에는 동자상 童子象 미륵 彌勒 이라고 설명하였다. 무슨 의미일까?
마을 지키미의 상징은 충분히 이해되지만 왜 동자상인가? 그런데 전혀 동자상 처럼 보이지 않는다.
머리에는 갓을 이고 방형의 상호는 마모가 심하여 형체가 분명하지 않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복부이하는 묻혀 있다. 전형적인 조선후기의 민불로 보이며 본래부터 이 자리는 아닐 것이다.
우리조상들은 회화나무를 집에 심으면 가문이 번창하고 큰 학자나 인물이 난다고 하였으며 , 또 잡신의 침입을 차단하는 힘이 있다고 믿고 있다. 그런 믿음으로 훌륭한 아기가 태어나기를 염원하는 사대부 집안에서 나무와 맞보도록 미륵을 조성하여 동자상 童子象 미륵 彌勒으로 모시지 않았을까?
2016.05.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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