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계산 등산로 입구 도로변 미륵당 모대학교 동문들의 산행으로 저자거리 보다 더 번잡한 길. 어느 한사람 미륵당과 석탑에 눈길을 주지 않고 빠르게 발걸음을 옮긴다. 그 모습을 무념무상의 표정으로 지켜보시던 어르신께서 철제 펜스를 밀고 들어서는 나를 보더니 시집간 후 첫친정 온 딸을 반기듯 벌떡 일어나서 다가오신다.
대구서 왔다는 나의 답도 끝나기 전에 "이 미륵불은 500년 된 미륵불이며...."
단층 기단의 삼층석탑으로 고려중기 이후 강원도 영서지방을 중심으로 널리 조성된 석탑의 유형으로 그보다 퇴략한 후대의 석탑 이다. 기단 갑석이 하는 매몰된 상태이며, 물매가 깊은 갑석에는 3단 괴임을 두었고, 초층탑신에는 양우주를 모각하였다, 영서지방의 석탑 특징처럼 옥개석과 상층 탑신석이 일석으로 조성되었으며, 탑신석은 상대적으로 크기가 작다 삼층 옥개석과 노반, 보주도 일석이며, 보주 상부에 사리공을 두었다. 또한 탑신에 비해 노반이 크게 표현되었다.
기단갑석.초층탑신.초층 옥개
옥개석과 탑신
찰주공처럼 보이지만 크기로 미루어 사리공이다. 탑신석 보다 노반과 보주를을 크게 조성한 것도 사리함 때문으로 추정된다. 전체적으로 왜소한 탑신에 비해 상대적으로 상륜을 높게 표현한 석탑이었을 것이다. 이 시기에는 사리공을 상륜에 모신 경우는 드물며 대부분 초층탑신 등 석탑 아래 부재에 봉안하였다.
석불입상 마을에서 미륵불로 모시고 있다.
볼륨감이 없는 방형 석주형 불상으로 소발에 육계를 표현하였고 중간계주는 빨간 색을 칠하였다. 중간 계주 아래와 이마에 흰색과 검정색(빨강?)의 백호를 대칭으로 그렸다. 2개 백호를 표현한 작례는 처음 접하는 것 같다. 불교와 민속의 습합 현상으로 생각되지만 약사여래의 협시보살인 일광보살과 월광보살을 상징(이렇게 표현한 작례도 보지 못했다)하는 즉 약사여래로 조성했던 불상은 아니었을까? 호분, 채색으로 장방형 상호의 본디모습은 확인 할 수 없다. 뭉툭한 코에 비해 입은 작게 나타냈다. 법의는 통견으로 추정되며 왼쪽손에 연봉을 지물로 들고 있다.
지물이 연봉(불단에 가려 연꽃 줄기는 확인 불가)이면 미륵불이겠지만 지물을 약기로 본다면 백호 2개는 약사여래의 협시보살 상징이라는 나의 견해도 영 엉터리는 아닐 것이다. 조성시기는 조선초기로 보면 어떨까?
상호에 벽사의 상징으로 오방색을 표현하였다. 즉, 청색의 머리, 빨간 중간계주, 검정 백호와 상호, 검은 눈썹과 눈, 황색은 땅
삿갓모양의 부재 불상과는 관계없는 것으로 보인다.
지물은 연봉? 약기?
미륵불은 원터마을 수호신으로 모셔졌으며 지금은 명맥이 끊어진 듯 보이지만 예전에는 일년에 한 번 동제를 모셨다고 한다.
석탑과 석불위 안태고향은 어디일까? 자료에는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절에서 옮겨 온 문화재로 추측하고 있다.
그럴까? 이 마을 지명이 원지동. 원터(院基) 마을이다. 원院, 고려시대 이래로 지방 출장길의 관리, 여행자의 숙소가 원院이었다. 원에는 충주 미륵대원, 안동 제비원처럼 과객, 여행자의 안전, 관리들의 원활한 공무 수행, 상인들의 무탈한 상거래 등을 기원하는 불상, 석탑이 조성되어 있었다. 따라서 원지동 석불, 석탑도 院에 모셨던 님으로 추정된다. 물론, 근거 없는 나만의 픽션이다.
2016.05.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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