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지장사. 국립현충원 깊고 아늑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석탑옆 눈에 띄지 않은 곳에 작은 석비가 있다. 지장사 창건과 사적에 대한 많은 자료가 검색되지만 소박한 화장사(호국지장사 전신) 안내문이 마음에 와 닿는다.
사적 고려 공민왕 말엽(거금 640여년전) 보안대사께서 초창하시다. 선조대왕 강희 2년 창빈묘소를 봉안하고 새로 중수하여 대왕의 원당으로 봉행하고 조포사찰로 지정하였다. 동치 원년 8월 16일 경해대사가 상추문을 봉행하였다.
1971년 6월 일 화장사.
조포사찰? 예전 답사기에서 여러번 언급했지만 원당사찰을 의미한다. 특히 조포造泡, 즉 두부를 잘 만드는 절을 뜻한다. 춘천의 월송리 삼층석탑은 조면사지 석탑으로 전한다. 조면造麵도 비슷한 의미 아닐까?
재미있는 설화가 전해온다. "이승만(李承晩)이 대통령시절 이 절에 들렀다가 “절이 없으면 내가 묻히고 싶은 땅”이라 한 곳이며, 설화로는 선조 때의 중신 이항복(李恒福)과 이덕형(李德馨)이 이절에서 과거공부를 하고 있을 때 변소의 측신(厠神)이 두 소년의 아랫도리를 움켜잡고 대감이라 불러서 장차 대감이 될 것을 알려주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여러사람이 함께하는 답사의 맹점이 시간에 구속된다는 점이다. 바삐 동선에 따라 이동하는 관계로 호국지장사에서도 철불좌상이 봉안된 능인보전과, 석탑을 만나는 것에 만족해야만 했다.
철조약사여래좌상 개금이 되어 본래 모습은 불분명하다. 나발, 육계를 표현하였고, 상호는 둥글면서 갸름하며, 불신에 비해 턱이 좁고, 가늘고 긴 눈, 코, 입은 작다. 법의는 우견편단이며, 오른손은 항마촉지,왼손 위에 약합을 들고 있는 약사여래이다. 허리는 꼿꼿하게 세우고 당당하게 앉아 있는 자세로 넓은 어깨, 유난히 강조된 가슴, 허리는 가늘게 표현하였다. 결가부좌한 하반신은 볼륨감 있게 표현하였다
고려초기 불상으로 전한다.
불상의 안태사찰 등의 자료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906년에는 화주 풍곡(豊谷) 스님이 약사전의 불상을 개금·단청하고 후불탱,신중탱,감로탱,신중탱,칠성탱 등을 봉안하였다."라는 기록이 보인다. 현재 문화재 지정명칭이 지장사철불좌상이어서 약함은 후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측된다. 즉 1906년에는 능인보전이 약사전이었다.
약사여래후불탱. 1906년 풍곡스님 조성
신중도. 1906년 풍곡스님 조성
삼층석탑. 경주 남산에서 옮겨온 부재의 조합으로 알려져 있다. 옥개석 3개만 본디부재로 인지 하였지만 동행한 선주거사님은 탑신도 옥개석과 동일 석탑재로 추정하였다 기단부는 후보물이며, 상륜은 부도의 상륜처럼 보였다.
탑신석에는 양우주가 표현되었고 옥개석 층급은 전층 4단, 상부에 2단 괴임을 조출하였다. 옥개석 낙수면의 물매는 깊고, 추녀에는 반전이 보인다. 조성시기는 통일신라 후기 탑으로 추측된다.
설왕설래 그 또한 답사의 묘미 아니겠는가?
2016.06.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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