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포항시

구룡포...장기목장석성

임병기(선과) 2016. 4. 25.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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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석성이 길게 펼쳐져 있다.

 

말목장의 석성은 말 목장의 돌 울타리를 말한다.

장기목장성은 구룡포 눌태리에서 동해면 흥환리 까지 약 8km의 호미반도를 가로질러 쌓은 것으로 현재는 약 5.6km나 남아있으며 여지도, 경주도회좌통지도 등 고지도에도 전한다고 한다. 정확한 축조 시기는 알지 못하지만 조선 세종실록에 목장 감독관을 수령이 겸임한 기록이 있어 이미 세종 이전에 존재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이전에도  삼국유사에는 장기반도 안에 있는 호미곶면 강사3리 명월암이 신라 선덕여왕 5년(636년)에 지역 수장의 군마사육을 기원하는 사찰로 창건되었다고 기록 되어 있다. 그리고 매년 3월과 10월에 마단馬壇을 그 곳에 설치하여 제향 기도를 드리고 대보면 강사리의 명월암(明月庵 : 현재 해봉사 海蓬寺)에서  말 목장을 위한 제를 지내고 기원을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일성록과 승정원일기에는 당시 호랑이의 피해가 극심해 산행장이 목장에 배치되어 포수와 창군도 있었다는 기록도 있다. 증보문헌지고에는 구룡포 돌문에 당시 말의 출입과 수를 헤아리던 문지기 2명이 있었다고 전한다. 또한 구룡포읍 삼정리에는 목아문을 설치해 양육하는 말을 관장했고 장기반도에는 물을 먹이는 웅덩이 50여개소와 눈과 비를 피할 수 있는 마구 19개소도 있었다. 특히 관찰사의 지휘아래 있는 종6품의 관직을 가진 관리가 목장을 관리 했으며 목자군이 목장 안에 살면서 말의 분뇨를 치우거나 관리에 동원되었다고 전한다.

 

 

 

 

"장기곶 목장은 말 관리인 141명, 말 물 먹는 곳 50곳, 축사 19채, 매일 6명이 말똥을 치웠고, 매달 말 242마리를 중앙으로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또 호랑이 등의 짐승 습격과 외부인 침입을 막기 위해 별포수(別砲手) 30명, 창군 20명이 일하였다는 기록을 볼 수 있다. 효종 전까지는 포항지역에는 일월목장(日月牧場 : 현 해병사단 내), 경전목장(鯨田牧場 : 죽장면 상옥리), 봉림목장(鳳林牧場 : 흥해읍 곡강리), 마장목장(馬場牧場 : 흥해읍 성곡리) 등 소규모 말 목장이 있었으나, ‘동을배곶 목장’ 이 생기면서 이곳으로 통폐합되었다. 목장은 갑오경장(1894년)후 잠시 폐쇄되었다가 을사조약(1905년)과 함께 일제에 의해 완전히 없어졌다. 없어질 당시 남은 말 300마리는 일제가 군용으로 징집해 갔다고 전해진다."...출처/다음

 

 

장기목장성과 관련된 비석.

 

울목김부찰노연영세불망蔚牧金副察魯淵永世不忘

흥인군 이최응의(흥선대원군의 친형)비각 신축을 위해 터고르기를 하던중 발견된 비석에는 조성 연대는 전하지 않으나 비석이 발견된 인근에 흥인군 이최응과 목장을 관장하던 감목관(監牧官) 민치억의 공을 기리는 불망비가 세워져 있어 같은 시대인 1882년에 세워진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비석에는 울목(蔚牧) 이라는 명문이 처음으로 확인된 것으로 볼 때 이는 군마등 말을 키우던 장기 목장성이 울산 목장의 관할 지역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해 주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일제조흥인군이영상국공최응영세불망비一堤調興仁君李領相國公最應永世不忘碑

흥인군 이최응:1815(순조15)∼1882(고종19) 조선말기의 문신, 자는 양백(量佰), 흥선대원군의 형, 흥인군에 봉해졌으며 1865년(고종2) 경복궁 중건때 영건도감제조(營建都監提調)를 지냈으나 쇄국정치를 반대하여 대원군과 반목이 심했다.
1873년 영의정에 올랐다. 공덕비의 내용은 장기 목장성에 속한 7마을(七防)이 있었는데 모리배들이 세금을 많이 걷어 들여 천여 백성이 살아가기 힘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흥인 대감께서 특별히 백성들의 뜻을 살피셔서 고질적인 폐단을 없애 버리며, 그 근원을 뿌리 뽑아 버리니 흩어졌던 백성들이 다시 모이게 되었고, 목장 전체가 편안하게 되어 공덕비를 세우게 되었다.

 

감목관민공치억영세불망비監牧官閔公致億永世不忘碑

감목관 조선시대의 외관직(外官職), 지방의 목장(牧場)에 관한 일을 맡아보던 관원으로 대개 부사(府使) 첨사(僉使)가 겸직하였다. 30개월을 만기로 하는 종6품관으로 정원은 경기도에 5명, 충청도에 1명, 경상도에 3명, 전라도에 5명, 황해도에 3명, 함경도에 3명, 평안도에 1명이 있었다, 광서8년(光緖八年), 1882년(고종19년)에 세워졌다

 

 

 

 

 

 

 

 

 

 

 

 

 

목장성을 재 조명해 관광자원으로 개발하기 위해 구룡포읍사무소에서 2009년  4km의 석성터를 발굴해 탐방로를 조성하고, 봉수대 터를 개발해 정상에 2층 전망대를 설치했다. 전망대에서는 호미반도의 능선과 영일만항 등 3면의 동해 바다를 조망할 수 있다. 탐방로는 8개 코스로 전망대 정상까지 3.1km로 1시간~1시간30분(왕복 2시간30분)정도 소요된다.

 

2016.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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