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신안군

신안...흑산도 무심사지 삼층석탑.석등

임병기(선과) 2016. 3. 18. 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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읍리마을에서 상라고갯길 입구 상라산성 아래에 위치한 무심사지의 사적은 전하지 않는다.

근자에 발굴된 통일신라, 고려시대의 자편, 와편, 토기편이 발굴되었며, 또한 4동의 건물과 더불어 건물지 내부에서 无心寺禪院무심사선원, 陵城郡允草○○(능성군윤초○○)가 쓰여진 명문기와를 비롯해 청자상감향로, 청자접시 등이 확인되었다고 한다.

 

이를 근거로 추측컨데 폐사지는 무심사 옛터로 장보고의 활동과 함께 통일신라 당나라 무역경로 흑산도가 중요시 여겨지던 시기에 창건되어 고려후기까지 향화를 피웠으나 폐사 원인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다만 고려 공민왕대 잦은 왜구의 침입으로 섬주민들이 내륙의 나주로 이주하였던 기록으로 미루어 왜구에 의해 병화를 입었을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다. 

 

 

 

옛날 민초들의 안식처였던 무심사

병화를 입었지만 가난한 절해고도 흑산도 민초들에게 절집 복원은 언감생심 꿈도 못 꾼 탓에 오랫동안 폐사지로 남아 있었을 것이다. 그러던 어느시절 마을의 안녕, 풍어, 기자 신앙처로 성황당이 조성되어 다시 민초들 곁으로 돌아와 함께 호흡을 맞추어 어울렁더울렁 살아 왔었다. 하지만 정말 잘난 사람들이 당마져 미신이란 이름으로 철거되었다.

 

그런저런 사연을 간직한 절터

읍리주민들이 탑상골이라 부르는 사지의 오래된 당산목인 팽나무 품안에서 석탑과 석등이 봄볕을 즐기고 있었다

구태여 민속과 불교의 습합이라는 거창한 용어를 들먹이지 않아도 그렇게 어울려 살아온지 오래된 듯 한가롭고 여유러우며 낯설지 않다.

 

 

1942년 조선총독부의 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朝鮮寶物古蹟調査資에 4층탑으로 등재되어 있었던 탑으로 결실된 기단, 탑신석 2개, 옥개석 3개 상륜의 노반, 배례석 1기가 쌓여져 있다.  2개의 탑신에는 양우주가 조출되었고, 4면에 안상이 조식된 2층 탑신석은 석탑 부재가 아니며 석탑 또는 석등의 배례석 같다. 팽나무 뿌리 밑에도 기단갑석과 면석으로 추정되는 석탑재가 여럿 산포되어 있다.

 

 

 

기단

 

 

2층 탑신은 탑재가 아니며 안상이 새겨진 배례석(?) 같다.

 

 

3층 탑신석,옥개석,노반

 

 

3단 옥개석 층급받침과 탑신의 양우주

 

 

기단갑석재

 

 

팽나무 아래 기단 면석재

 

 

석등 앞의 석탑 기단 면석재

 

 

 

 

 

 

석등

화사석이 결실돤 상태로 지대석 상대석 중대석 상대석 옥개석 보주가 남아 있으나 동일 부재 여부는 불투명하다.

방형 지대석과 복련이 새겨진 하대석은 일석이며 중대석은 팔각원당형이다.

팔각 상대석에는 앙연이 새겨져 있으며 그위에 옥개석이 놓여 있다.

팔각 중대석과 상륜의 부재는 동일 석등 부재가 아닌 것으로 보여 후보한 부재 또는 다른 석등재로 판단된다.

조성시기는 석탑과 동시대 작품일 것이다.

 

 

지대석과 하대석

 

 

상대석. 옥개석. 보주

 

 

 

 

 

민초들은  탑과 석등을 속칭 수탑, 암탑, 탑영감, 안탑님 등으로 모신다고 한다. 이는 불교적 용어가 아니라 민속신앙에서 연유한 명칭이다. 실제로 오래전에는 마을주민들이 정월 초하루에  당제를 올렸던 제의처였다고 한다.

 

우리세대에서

유존하는 부재를 활용하여 자리를 옮겨 삼층석탑과 팔각원당형 석등의 본디 모습을 찾아주고

팽나무 아래는 당집을 세웠으면 좋겠다.

참말로 좋겠다.

 

2016.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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