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양산시

양산...천성산 성전암

임병기(선과) 2015. 12. 20.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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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암

문득 대구 팔공산 파계사 성전암이 스쳐간다.

주지하는 바와같이 성철스님이 철조망을 치고 10년 면벽 수도를 한 암자이다.

나에게는

1977년~1979년 6월 당시 대구 최고 선승 철웅스님과 일화가 많은 곳이다.

법명을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욕쟁이 스님으로 회자되던 분이었다.

"빙신들아!! 연애나하지 말라꼬 여까지 설법 들어로 왔노?"

아직도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귀에 울리는 듯 하다.

그리고

몇년전 경남 거제 오량리 석불좌상 답사를 갔다가 깜짝 놀랐었다.

철웅스님이 그곳(신광사)에서 입적하셨다는 글귀를 보았기 때문이다.

 

그런저런

추억 어린 대구 성전암

 

이야기가 오끼나와로 빠져버렸군!!!

 

 

오늘 답사의 종착지 성전암에 도착했다.

소박한 절집으로 예상했지만 범종루와  넓은 주차장을 갖춘 절집이었다.

문화재청 발간의 사찰문화재 총람에는 대웅전의 지정문화재인 신중탱과 서적, 그리고 약사여래 좌상을 포함한 비지정문화재가 다수 보관중인 것으로 등재되어 있다.

 

 

성전암은 근래에 창건된 사찰이다.

부산 사리암에 오래 머물렀던 도승道承스님이 이곳으로 와서 움막을 짓고 계시다가 상수원보호지역이 해제된 1990년대에 부터 신도들의 도움과 스님의 공덕으로 불사 이루었다고 한다. 따라서 현재 보관중인 문화재의 안태고향은 아닐 것이다.

 

 

입구 주차장의 부도와 대좌

 

 

천진당부도天眞堂塔. 조선후기 부도로 기단, 탑신, 옥개석 암질이 서로 어울리지 않아 동일 부도의 부재인지 불분명하다.

 

 

운영당상초대사부도雲影堂尙草大師塔. 조선후기 석종형 부도로 탑신과 상륜과 일석이며 크게  3겹으로 원을 그린 기단위에 올려져 있다. 기단이 본디 부재인지는 불분명하다.

 

 

 

범종루 좌측 화원에는 몇 분의 옛님이 계신다.

석불입상. 민간에 모신 민불처럼 보인다.

 

 

석불좌상.

불두가 결실된 상태이다.

긴허리와 가늘고 긴 팔, 가는 허리 등 고려초기 불상의 특징도 보인다.

 

 

뒤집혀진 옥개석과 탑신석

양우주를 새긴 탑신석 상부의 홈. 사리공은 아닌 것 같다.

 

 

석탑 앞 연못가의 조선시대 문인석

 

 

문닫힌 약사전각 열쇠를 구하기 위해 요사에 들린다고

사진에 담지는 못했지만 대웅전 벽화는 다른 절집 분위기와 화풍이 사뭇 달라 보였다.

 

월천 진강백 月川 陳 剛 栢

그분이 2000년~2005년 성전암에서 작품활동을 하시는 동안에 그린 벽화로 보인다.

지금은 입적하셨다고 백우당에서 뵌 스님께서 말씀하셨다.

 

 

 

약사전 앞 자연암반위의 석탑 부재

옥개석 3개만 옛부재로 보이며 그나마 1,3층과 2층은 다른 석탑 부재이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 석탑부재로 전한다.

 

 

초층 3단 옥개받침. 상부에 1단 탑신괴임 조출

 

 

2층 옥개석 3단 받침. 받침이 깊다. 상부에는 각호 2단 탑신괴임 조출

 

 

3층 옥개석의 2단 층급받침

 

 

석불좌상이 있는 단촐한 전각(사진이 없다)속의 약사여래좌상

문이 닫혀 있어 요사에서 키를 가져왔지만 창호 비틀어짐이 심하여 문은 요지부동이었다.

그때 노스님이 다가오셔서 직접 개방해주셨다.

 

 

 

상호는 후보하였으며 불신에 비해 무릎이 두텁다.

목에는 삼도의 흔적이보이고 약합을 지닌 약사여래좌상이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보이며 곁에 계시던 스님께서도 동의 하신다.

고려시대 불상 아닐까?

 

 

 

문을 열어주셨던 스님께서 요사의 불상을 소개해주신다고 우리을 안내하였다.

백우당白牛堂. 선방향이 풍기는 방 가득 고서적, 선화, 불상이 가득한 한켠에 모셔진 석불좌상이다.

스님께서 예전에 주석하셨던 암자 뜰앞에서 발견하신 불상이라고 한다.

나발에 백호를 새겼고, 상호는 훼손이 심하다. 목은 짧고 귀는 길다.

깍지를 낀 듯한 변형된 선정인(?) 수인이다.

개인적으로는 조선후기 경주 불석으로도 생각해 보았다.

 

 

 

 

뒷모습. 법의를 새기지 않았는데 마치 새긴듯 법의를 걸친 쪽에는 철분(?)으로 인해 법의가 뚜렷하다.

 

 

근데

답사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다.

 

우리에게

약사전각을 열어주시고 백우당 석불을 안내하신 그 스님이

선, 고서화, 선화, 문화재에 일가를 이루신 성전암 창건주 도승 스님이었다.

 

또 다른 반전

박종철군의 고문치사로 시작된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

박종철군의 영정이 성전암 대웅전에 있으며

그 박종철 군의 49재를 올려주신 분이 바로 도승 스님이었다.

서슬퍼런 전통 그시절에...

 

준비없는 답사는 늘 후회가 따른다!!!

 

20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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