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양산시

양산...통도사 지장암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

임병기(선과) 2015. 12. 16. 0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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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장암

통도사 창건주인 자장율사가 통도사 이전에 머물렀던 암자.

명성에 비해 나와의 인연은  참으로 더디었다.

그건 늘 일행들과 통도사 순례에 시간을 할애했기 때문이었다.

 

절터 기운이 센 집

거북바위의 강한  혈처에 관음전 전각을 세운 절집으로 회자되는 곳

 

근데

무척 안온하다.

왜일까?

관음전 뒷편 암자위에 서있는 석탑에 자꾸만 눈이 머문다.

 

 

풍수형국에 문외한이지만

음택. 절집 기운 보다는

따뜻한 양택풍수의 기운이 느껴진다.

나의 불심이 센가?

 

 

마애아미타 삼존 뵙기위한 길

익숙치 않은 수세전壽世展 현판이 눈에 들어온다.

북극전.금륜전.칠성각의 또다른 별칭으로 칠성여래를 모신 전각이다.

 

 

마애불 앞의 작은탑

작아서 더 빛나는 모습이다.

마애불 보다도 연장자겠지만 키가 크다면 한켠으로 쫓겨나지 않았겠는가?

 

 

초층 옥개석과 일석인 탑신석

그리고 그 위 옥개석 하나만 옛 석탑의 형제들이다

그래도

이복형제들과 오손도손 정겨운 모습이다.

 

 

마애아미타삼존불입상

중앙 본존불 좌우 관음과 대세제 보살

 

 

대세지보살상 우측면 聖上卽位三十三年 丙申七月日 성상즉의삼십삼년병신칠월(1896년. 고종 33년 7월) 명문이 새겨져 있어 조성 절대년도를 알려준다.

 

그리고

化主 古山定一

金翼來, 鄭泰燮, 李善同, 朴漢淳, 張雲遠

화주 고산정일吉山 定一

일본인이 대시주자로 되어 있다.

 

이 명문으로 추측컨데

을사늑약(1905년)이전인 1896년 이전에 벌써 일본인들이 부산항 상권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였으며 시주자인 조선인들도 사대부보다는 그들과의 교역으로 부를 축척한 상인들이 아니었을까?

 

 

아미타불

어쨓든 마애아미타 삼존은 이전의 마애불에서 볼 수 없었던 불화 밑그림을 바위에 옮긴 분위기 느낌이다. 특히 콧수염과 턱수염 범자 문양은 거의 유례가 없는 마애불이다.또한 조성시기와 발원자를 새긴 조선시대 불교조각 가운데 마지막 작품으로 전한다. 더불어 자장암 마애아미타삼존불은 양산 원효암 마애아마타삼존불에 영향을 끼친 불상일 것이다.

 

 

좌협시 관음보살

 

 

우협시 대세지보살

 

 

 

 

 

 

 

 

 

일본인 화주

그는 조선의 전통 장인 보다는 일본인 화가 또는 근대 화법을 배운 조선화가에게 우리나라의 탱화를 보여주면서 바위에 그림을 그리고, 그 그림위에 조선 석공에게 불상을 새기도록 하지 않았을까?

 

고산정일古山定一

추적해보고 싶은 인물이다.

 

 

금와보살金蛙菩薩은 동안거에 들고

 

 

나는

안온한 기운에

유년의 고향을 그려본다.

 

그곳에도

겨우살이는 푸른 자태를 뽐내고 있겠지?

 

2015.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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