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양산시

양산...호계리 마애불

임병기(선과) 2010. 9. 24. 1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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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산에서 언양으로 향하는 극도변에 석굴사 작은 입간판이 보인다. 방향을 잡으면 게속해서 이어지는 공단 산막공단이다. 우리나리 지명에 자주 보이는 산막, 호계리의 산막은 호계마을 "반고굴(磻高窟)에서 수도하던 원효대사를 만나기 위해 설총을 안고 찾아온 요석공주가 원효대사가 만나줄 때까지 산에 막을 치고 기다렸던 데서 비롯되었다고 한다."

 

공단 끝지점까지 진입하여 꽤 경사진 길을 올라야한다. 마지막 오르막 초입의 "기어를 1단에 놓으세요"  작은 경고문이 입가에 미소를 머금게 한다.  원효산 .마애불이 나투신 산을 원효산이라 했다. 반고굴과 요석공주 설화에서 알 수 있듯이 원효대사의 행적에서 유래된 모양이다.

 

 

이 지방 사람들에게는 큰바위 부처로 알려져 있다.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왔다. 불상은 마애여래좌상(磨崖如來坐像)으로서 얼굴부분은 두드러지게 양각(陽刻)하고 신체는 선각(線刻)으로 처리하였다. 머리는 마애불에서는 드물게 보이는 나발(螺髮)이며, 육계(肉)는 비교적 작게 표현되었다. 얼굴은 사각형에 가까운 모습으로 길게 감은 눈, 넓적하고 큰 코, 꽉 다문 작은 입 등은 투박한 인상을 준다. 신체는 오른쪽 부분이 마멸이 심하여 자세하지 않지만 왼손은 길상좌(吉祥坐)를 한 오른쪽 발 부분에 아래로 내린 촉지인(觸地印)을 짓고 있는데 발이나 손 등은 모두 성글고 투박한 편이다.

 

 

법의(法衣)는 통견(通肩)으로 형식화되었다. 광배는 원형의 거신광(擧身光)인데 거의 마멸되어 선각한 흔적이 어렴풋이 남아있을 뿐 장식은 없다. 대좌는 연화좌(蓮華座)로서 아무런 꾸밈이 없는 단순한 연꽃을 두겹으로 선각하였다.또한 불상은 형식화되고 투박하고 토속적인 조각수법을 보여주는 것으로 조선시대 작품으로 생각된다.  

 

 마애불옆 석굴

 

마애불 옆에는 10-20 명 정도가 들어갈 수 있는 석실이 있는데 원효대사가 수도했던  “반고굴”이라고 불리지만 확실한 근거는 없다. 반고굴은 “양산의 석굴암”이라고 하며 여기서 원효대사가 설법을 전했다고 하는 달빛에 물든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바위 밑의 동굴에는 온돌을 설치했던 흔적이 있다.

 

사진 출처...오마이뉴스

 

1990년 발견 당시 사진으로 스님은 마애불을 발견한 무정스님 이다.

 

 

마애불을 등지고 바라보는 노을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수도가 끝날 날을 기약없이 기다려야 했던 요석공주도 아랫마을 호계리의 넓게 펼쳐진 들판과 저녁무렵의 석양을 분명 바라보았을 것이다. 그런 애틋한 이야기들을 품은 호계리는 상전벽해가 되어 기계음 요란한 공단으로 변했다. 원효가 진정으로 발원했던 염원이 중생들의 풍요와 다산 수복강녕이었다면 공단 근로자들의 바쁜 일상들도 결국은 원효의 바램이 이루어진 것으로 판단하면 견강부회인가? 산은 말이 없는데...... 

2010.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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