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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홍성군

홍성...홍주읍성 석탑부재

by 임병기(선과) 2015. 12.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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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 10월

빈절골사지마애보살, 삼준암 석탑 답사후  한건택님과 근처에 답사중이던 문사인님과 3명이 홍성읍내에서 한 잔 하던 중에 한건택님이 홍주읍성의 석탑부재를 알려주었다. 다음날 아침 주취상태에서 비몽사몽, 주마간산 격으로 석탑 부재를 보았었다. 그마져도 비림 주변의 부재만...

 

 

홍주읍성

현재 남아 있는 성벽의 둘레는 약 800m이다. 동문인 조양문()과 성 안의 홍주아문(), 그리고 주변의 산성()을 포함한다. 백제시대의 주류성()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처음 축조된 연대가 확실하지 않고, 고려시대에고쳐 쌓았다는 기록도전하지 않는다. 다만『세종실록지리지(錄)』에는 둘레가 533보 2척이고, 여름과 겨울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하나 있다고 하였다.

 

조선 초기에는 지방행정구역을 개편하면서 새로운 규식()에 맞추어 각 지방의 읍성을 고쳐 쌓았다. 이 읍성도 1451년(문종 1)에 새로 고쳐 쌓았다. 당시 성벽은원래 있었던 것보다 물려 쌓았는데, 둘레가 4,856척이고, 높이는 11척이며, 높이 2척의 여장()이 608개 있었다. 적대() 24곳 중 6곳, 문 4곳 중 1곳에 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성문 앞을 가려 쌓은 옹성()을 두지 않았다. 성 안에는 우물 2곳이 있었고, 성 밖에는 해자()를 파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성문은 본래 3곳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 뒤 현종 때 한계수()가 다시 수리하였고, 1824년(순조 24)에는 진장() 김계묵()과 홍주목사 이헌규()가 수리하였다. 1870년(고종 7)에는 홍주목사 한응필()이 조양문·경의문()·망화문() 등 3곳의 성문과 함께 관영()을 지었다. 조양문은 팔작지붕을 올린 정면 3칸의 다포계 문루로, 흥선대원군이 조양문의 편액을 친필로 하사하였다. 지금의 조양문은 1975년에 완전 해체하여 복원한 것이다. 1978년 10월 7일에 강도 5°의 지진으로 인해 성벽의 일부가 무너졌으나 1979년부터 복원 작업을 시작하여 1982년에 부분 보수를 완공하였다.

 

1906년에는 이 성에서 의병이 일본군과 치열한 홍주성 전투를 벌였다. 곧 1905년에 민종식(, 1861∼1917)·이세영(, 1869~1938)·채광묵(, 1850∼1906)·안병찬(, 1854~1921) 등은 을사조약 체결에 반대하여 의병을 일으켰고, 이듬해 5월 19일에 1,100여명의 의병을 이끌고 6문의 화포로 홍주성을 공격하여 일본군을 덕산()으로 쫓아냈다.

이 성은 특이하게 남문이 없고 북문에 문루가 없다. 특히 삼국시대∼조선시대의 치소가 있는 자리로 큰 변동이 없고, 조선 초기에 새로운 축성 규식에 의해 축조된 유적이라는 점에서 연구와 보존의 가치가 크다.

 

출처:한국민족문화대백과, 한국학중앙연구원

 

 

 

홍주읍성의 석탑 부재는 2기 이상 석탑 부재로 보이며 성곽, 비림 부근, 홍주아문 주초 등에 산포되어 있다.

안태고향은 전하지 않으나 한건택님은 광경사지 당간지주와 더불어 미륵사의 석탑으로 추정하고 있다. 나에게 권한을 준다면 석탑부재를 수습하여 당간지주 근처에 복원 할텐데...

 

언감생심!!! 꿈도 야무지다!!!

 

 

겹으로 새긴 안상과 귀꽃

 

 

장대석

 

 

탑신석

 

 

귀꽃 안상

 

 

 

기단석과 일체형 저석

 

 

위의 부재와 동일

 

 

기단석과 일체형 저석 파편

 

 

문비와 자물쇠

 

 

탑신석

 

 

탑신석

 

 

 

탑신석

 

 

탑신석

 

 

탑신석

 

 

 

탑신석

 

 

멀리 홍화문이 보인다.

 

 

토성의 흔적

백제 주류성의 자취일까?

 

 

비림주변에도 석탑재를 수습해 놓았다.

 

 

 

 

 

홍주아문 주초의 탑신

 

 

주초

홍주아문을 들어서면 공양왕이 심었다는 느티나무 2그루 사이에 놓여 있다.

제례시에 제단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웃지 못할 이야기도 들린다.

 

 

홍주동헌. 안회당安懷堂

홍성을 그렇게 여러번 답사하였어도 존재유무를 인지못 했다. 홍성군청 뒷편에 위치한 안회당은 1678년(숙종 4)에 홍주군의 정사당으로 건립하였다. 홍주목사와 홍주군수가 행정을 집행하는 사무실로 사용되었으며 1870년(고종 7)년에 동헌을 개축하고 흥선대원군으로부터 안회당이라는 편액을 하사받았다. 안회당이라는 이름은 논어의 "노자안지 소자회지之"에서 인용한 것으로, 노인들과 젊은 사람 모두를 위해 정사를 펼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현판은 광복 이후 분실되어 1991년에 안회당을 부분 중수하였다. 또한 안회당 뒷뜰과 연접한 연못위에 지은 여하정은 고종 33년(1896)에 이승우 목사가 신축한 수상정으로  육각형 정자로 느티나무와 잘 어울린다.성곽과 조선시대 관아에 관심 있는 사람들에게는 하루 발품을 팔 충분한 가치가 있는 답사지로 생각된다.

 

여러번 답사한 홍성

한건택님은 2016년 유교 문화와 관련 준비가 완료되면 다시 부르겠다고 했지만  이제는 자꾸만 자신감이 없어진다.

그 또한 인연이리라!!!

 

2015.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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