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서울...봉천동 마애미륵불좌상

임병기(선과) 2015. 11. 6. 07:40
728x90

 

 

 

낙성대로 15길 56-41 보성사

상부암 답사후

지하철을 이용한 뚜벅이 답사 길에 올랐다.

 

상부암 석불. 광나루역.낙성대역.마을버스.인헌아파트.보성사.마애불

인헌아파트 정거장에 하차후 보성사 우측 뒷담장(위사진 10미터 후방)에서 산길로 접어 들면 된다.

100여미터 오른 후 능선 3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가면 전망대가 나타난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한양 땅

 

 

전망대에서 능선을 따라 계속 올라가야 한다

중간중간 산허리로 열린 길은 둘레길이다

전망대에서 20분가량 능선을 오르면 우측편에 체육시설을 갖춘 상봉약수터가 있다..

약수터 운동시설 철봉 아래로 난 길로 내려가 우측 바위군을 돌아서면 마애불이 손길을 내밀고 계신다.

 

 

따뜻한 눈길로 참배객을 맞이한다.

 

 

관악산 봉천동마애미륵불 좌상

미륵존불 숭정3년 경오4월 대시주 박산회 양주佛  主 명문이 새겨져 조성시기. 존상. 시주자를 알 수 있는 불상이다. 즉 1630년 박산회 부부의 시주로 조성한 미륵불이다(장인의 이름도 있었으면 금상첨화이었을텐데...)

 

미륵불은 측면상으로, 즉 참배객이 찾아 오는 방향을 바라보고 계신다. 복련 연화대좌, 신광, 두광이 표현되었고 소발에 중간계주를 표현하였다. 다소 이국적인 갸름한 상호는 도톰하며 이목구비가 뚜렷하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통견의 법의에 건장한 가슴을 노출시켰다. 승각기에는 띠매듭을 새겼다. 연화대좌위에 두 발은 군의가  덮고 있다. 명문 외에도 연꽃을 들고 있어 미륵불임을 알 수 있으며,두 손은 옷속에 감싸져 있다. 전체적으로 선각으로 새겼으나 상호는 참배객의 눈높이에 맞추어 양감이 있다.

 

 

 

 

 

요즈음 스토리텔링이 트렌드인데 글빨이 짧아...

무슨 뚱딴지?

 

시주자 박산회부부

이런 규모의 마애불 불사를 하려면 거금의 자금과 제도권과의 연결고리가 있는 재력가 또는 권력가 집안이었을 것이다.

그런 문중이라면 자식을 기원하며 관세음 보살, 조상의 극락왕생을 기원하며 아미타불, 또는 큰 사찰, 명성 있는 스님이 주석하는 절집에 가정의 안위를 위하여 석가여래를 모시는 불사를 하는 것이 옳지 않았을까?

 

소설 한 편

1630년은 임진왜란, 정유재란이 끝난 후 아직 전쟁의 피해가 아물지 않았으며 더구나 인조반정의 부당성을 걸고 넘어진 후금이 정묘호란을 일으킨 3년 후로 정국이 어수선하고 민초들의 고통은 극에 달한 시대였다. 그런 시대적 배경에 사재를 출연하여 전쟁이 없고 평화로운 세대를 갈구하며, 민초들의 고통을 구제하고 기아에서 벗어나기를 염원하며 미륵하생을 염원한 박산회 부부!!!

 

그들은

노블리스 오블리제를 실천한 인물 아니었을까?

 

 

또하나

미륵불의 시선이다.

정면에 좁지만 배례 공간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측면을 응시하고 있어 의아스러웠다.

과연 그럴까?

답사기회가 되면 미륵불과 눈을 마주보고 방향을 옮겨보길 바란다.

한순간도 미륵불의 시선은 우리 눈과 떨어지지 않고 지켜 보신다.

 

의성 고운사 우화루 호랑이 벽화

부산 범어사 대웅전 호랑이 벽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움직이는 눈동자의 작례다.

 

불상에도 있었던가?

 

 

 

봄날이었으면

긴 장편소설 한 편 탈고 했을텐데...

 

2015.10.04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