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부산시

부산...금수사 목조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4. 12. 30. 1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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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각사에서 금수사로 향하는 길은 부산항이 내려다 보이는 산복도로였다. 이도로는 요즘 지자체마다 경쟁적으로 조성한 상품처럼  '초량 이바구길' 구간 이다. 편리하게 차량으로 이동하는 것보다는 느긋하게 구간을 도보로 답사하면 근대사의 다양한 장면을 접할 수 있는 길이다.

 

 

동구 초량4동 843. 산복도로에서 제법 가파른 계단을 올라야 한다. 동지를 목전에 두고 있지만 금수사의 겨울나기는 이제 시작인듯 김장용 배추 공수 작전이 절집에 펼쳐지고 있었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의 전화를 입은 선조는 1604 강화교섭을 위해 사명대사를  일본에 강화사로 파견하였다. 일본으로 가기 전 사명대사가 머룰렀던 곳이 구계산 자락의 금수사 터였으며 대사는 절의 물맛과 경치에 감탄하였다고 전한다. 이후 대사의 제자가  초암을 짓고 금수암이라고라 칭한 것이 금수사의 창건의 역사이다.  

 

 

여느절집과 달리 사군자가 아니라 매화와 난초가 대칭으로 자리했다. 아래의 문양도 전통사찰에서 익숙하지 않은 모습이다. 얼핏 화투가 생각나는 것은 왜일까?

 

 

대광명전 현판과 달리 비로자나불이 주불이 아니라  아미타불을 주존으로 관음과 지장을 협시보살로 봉안하였다.

 

 

천불전. 천왕문 우측의 단청을 하지 않아 목리를 드러낸 전각이다.

 

 

목조석가여래를 주불로 문수,보현 보살을 협시로 모셨다.

 

 

 

천불전 목조석가여래좌상. 금강산에서 옮겨온 조선후기 작품으로 전한다. 발원문 외 복장유물이 발견되지 않아 조성한 불상에 대한 정확한 이력은 전하지 않는다. 촘촘한 나발에 중간계주와 정상계주를 표현하였다. 이마에는 백호를 새기고 상호는 원만상이다. 목에는 삼도가 보이고 법의는 통견이다. 승각기 매듭 주름은 연꽃 문양이며 결가부좌하였다. 우측손은 항마촉지 왼쪽은 아미타 수인을 결하였다.

 

 

2014.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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