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역사 박물관은 2002년 경희궁 부지에 개관하였다. "서울역사박물관은 유서깊은 서울의 역사와 전통문화를 정리하여 보여줌으로써 서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을 심화하는 한편 서울시민 및 서울을 찾는 내외국인들에게 서울의 문화를 느끼고 체험할 기회를 제공하는 서울의 대표적 문화중심이 되고자 한다."라는 설립 목적을 가지고 있다. 나는 옥외에 있는 고려시대 석탑을 뵙기 위하여 들렸지만, 동선에 포함되지 않았던 조선후기, 대한제국의 신도비를 만나는 행운 을 누렸다.
2013년 마포구 현석동에서 발굴된 비석으로 명문이 없다. 대리석 재질로 어떠한 연유로 미완성으로 남은 상태이다.일견 원각사지 대원각사비가 떠오른다.
이수 후면
이수 전면
중앙 사도세자의 네째아들이며 흥선대원군의 조부인 은신군 이진(1755~1771)신도비. 왼쪽 은신군 묘비. 오른쪽 낙천군 묘비
은신군 신도비. 17세에 제주도에서 요절하였다. 정조는 동생을 위해 제사를 정성스럽게 모셨다. 순조는 인평대군의 후손 남연군에게 가계를 잇도록 하였다. 1783년 정조가 글을 짓고 글을 써서 세웠다.
은신군 묘비 1871년 그의 사후 100년후에 시호가 소민에서 충헌으로 바뀐 다음 세웠다.이재원이 짓고 이재면이 글을 썼다.
낙천군 온(1720-1737). 계보상으로는 은신군의 부친이라고 한다. 1764년 김광진이 기록하고 신광수가 썼다.
흥선대원군의 장남이자 고종의 형인 흥친왕 이재면興親王 李載冕,1845~1912의 신도비. 1863년 과거에 급제하여 규장각 대교,도승지,형판,병판,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910년 8월 흥친왕이 되었다. 신도비는 1913 김포군 고란대면 풍곡동 묘소앞에 세웠으나 묘소를 이전하였다. 현재 신도비는 1932년 세웠으며 김윤식이 짓고, 윤용구가 쓰고 전자는 김성근이 썼다.
우측 2번째 흥선대원군의 손자이자 장손인 영선군 이준용永宣君 李埈鎔, 1870~1917 신도비, 우측 3번째 흥선대원군의 증손인 이우李鍝 1912~1945의 신도비에는 글씨가 없는 백비이다. 우측 1번째 이준용의 동생 이문용의 묘비, 맨 우측 1967년에 세운 이우의 둘째아들 이종의 묘비,이종은 서울대 졸업후 미국 유학중 사망 하였다.
비석 지붕돌 합각면에 대한재국의 국화인 오야꽃 문양을 조식하였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석탑으로 보인다. 하층기단 면석에 3개의 안상 무늬를 새겼고 중앙에 귀꽃을 피웠다. 옥개받침은 3단이다. 옥개석 물매는 얕고 초층 탑신석을 제외한 몸돌, 5층 옥개석은 후보한 것 같다. 몸돌에는 우주가 생략되었고, 옥개석의 추녀 반전은 부드럽다. 상륜에는 노반과 보주가 일석으로 남아 있다.
무덤에 불을 밝혀 사악한 기운을 쫓는 등인 장명등. 망주석. 향로석, 그리고 석탑, 경희궁터에 두어야 할까?
가을날에는 생각도 단순해진다.
2014.09.27 |
'서울특별시 > 서울특별시'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지광국사현모탑 (0) | 2014.10.15 |
---|---|
서울...흥천사명 동종 (0) | 2014.10.15 |
서울...원각사지 10층석탑 (0) | 2014.10.14 |
서울...보타사 마애보살좌상. 금동관음보살좌상 (0) | 2014.10.13 |
서울...개운사 목조아미타좌상 (0) | 2014.10.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