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서울...개운사 목조아미타좌상

임병기(선과) 2014. 10. 12.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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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대박물관 답사후 다시 지하철을 이용 안암역에 하차하여 개운사를 들렸다. 사실은 보타사 마애보살좌상을 뵙기위한 동선이었으나 사나브로님이 개운사 목조아미타불을 소개해 주었다. 개운사는 보타사 직전에 위치하여 이동하는데 용이했다. 대웅전에서는 제를 올리고 있어 예도 표하지 못하고 미타전의 아미타불만 뵙고 발길을 돌렸다.

 

 

개운사는 조계사의 말사이다. 1396년(태조 5) 무학선사가   영도사로 창건하였으며, 1779년(정조 3) 정조의 후궁인 홍빈의 묘 명인원明仁園이 절 옆에 들어서자 인파 스님이 지금의 자리로 옮기고 개운사라 개명하였다. 1873년(고종 10) 명부전을, 1880년 이벽송이 대웅전을 중건하였다. 1912년 일제의 사찰령 시행에 따라 봉은사의 수반말사로 지정되었고 김현암이 제1대 주지로 부임하였다.

 

1926년 김동봉이 강원을 개설하였고 1929년 권범운, 신영산이 독성전을 중건하였다. 1932년 이벽봉이 노전을 짓고, 1935년 권범운이 칠성각을 지었다. 1980년 이전에는 조계종종정의 정통성을 내세우면서 총무원이라는 간판을 걸었고, 1993년 대웅전을 새로 지었다.현재 경내에는 1981년 이전해온 승려들의 교육기관인 중앙승가대학이 자리하고 있다.

 

 

개운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1280년에 중수된 개심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과 더불어  고려후기 불상으로 알려져 있다. 1274년 작성된  중수원문에 의하면 아산 봉축사에 봉안된 불상으로 13세기 초 작품으로 전한다.

 

 

 

대좌와 광배가 결실된 목조아미타불이다.  육계가 크고 나발이 촘촘하며 중앙계주를 표현하였다. 상호는 갸름하며 단아하다.  이마가 넓고 턱은 뾰족하며 가는 눈과 코, 작고 단정한 입은 얼굴 중심부로 몰려 있다. 목에는 삼도가 보인다. 법의는 통견으로, 왼쪽 어깨는 밖으로 접혀 층단을 이루었고 이 아래에서 팔로 내려간 옷은 여러 줄의 주름이 타이트하게 잡혀 팔굽에서 Ω자를 이루었다.오른쪽 어깨에는 왼쪽 어깨 뒤로 넘어간 자락이 반달형을 이루고 있는데 삼국시대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이중 착의의 대의 끝자락일 것이다. 하체는 대의 선이 간략화되었는데 왼무릎에는 옷자락이 구불구불한 삼각형을 이루면서 내려오고 있다. 가슴 아래에 표현된 승각기는 곡선을 이루고 있는데 띠 매듭이 없는 것이 당시의 다른 예들과는 다른 편이다.

 

결가부좌로 앉아 있는 불상의 체구는 단아하면서도 당당하다. 어깨의 곡선이나 가슴, 허리, 무릎의 양감은 세련미 넘치게 표현되었는데 특히 오른발을 왼 무릎 위로 올린 길상좌의 하체가 깔끔하게 처리되어 있다. 오른손은 가슴에서 손바닥을 보이도록 외장하고 왼손은 허리까지 들어 손바닥을 위로 하면서 엄지와 중지를 모은 하품중생인 변형을 짓고 있는 수인은 봉림사 목아미타불좌상, 문수사 아미타불좌상, 국립부여박물관 소장의 아미타불상 등 대부분의 고려 후기 아미타불상 수인과 유사하다. 손가락은 가늘고 길어 수려한 아름다움을 보여준다....한국민족문화대백과에서 발췌

 

 

 

 

대각루. 1922년 이정만

 

 

개운사. 죽농 안순환

 

 

 

 

201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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