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특별시/서울특별시

서울...보타사 마애보살좌상. 금동관음보살좌상

임병기(선과) 2014. 10. 13. 07: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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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운사 옆길을 따라 잠시 걸어가면 대원암이 나타난다. 대원암은 1845년(조선 헌종 11) 지봉 우기가가 창건했다. 일제강점기인 1926년 10월 개운사 주지 동봉스님이 대원암에 불교전문강원을 개원하고 박한영스님을 강사로 초빙했다. 한영스님은 선각자 가운데 한 분이었다. 스님은 일제의 식민지 불교정책에 강하게 맞서 싸운 불교 운동가였으며 한국불교의 미래는 교육을 통한 인재양성에 의해서만 보장될 수 있다고 생각하며 불교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던 불교 교육자이기도 했다.

 

석전은 이후 20여 년간 불교인재 양성에 주력했는데 그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로는 청담.운허.신석정.서정주.이광수.조지훈 등을 꼽을 수 있다. 대원암은 개운사의 산내암자로 중앙승가대학이 김포로 옮기기전 개운사에 있을때 비구니스님들의 기숙사로 사용했던 암자라고 한다.

 

 

보타사

 

 

마애보살좌상은 대웅전 뒤편 바위에 새겨져 있다. 부처님 진신사리를 봉안하는 적멸보궁처럼 대웅전 뒷벽에 유리창을 설치하여 누구든지 마애불을 법당에서 친견토록 되어 있다.

 

 

마애보살좌상은 보개처럼 보이는 바위 아래  돋을새김된 보살상이다. 넓은 어깨에 양감이 강조되어 신체가 당당한 모습이다. 머리는 보관을 쓰고 있다. 보관은 높은 편인데 좌우로 관대가 돌출되고 보관 장식이 아래쪽으로 길게 늘어진 모습이다. 목에는 삼도가 보인다.

 

얼굴은 이목구비가 뚜렷한 편으로 좌우로 길게 뻗은 눈, 초승달 모양의 눈썹, 높게 솟은 콧등이 특징적이다. 커다란 두 귀에는 노리개를 달고 있다. 법의는 통견이다. 천의를 걸친 채 왼손은 결가부좌한 다리 아래쪽으로 내리고 오른손은 어깨 높이까지 들어 올렸다.  조성시기는 여말선초로 전한다.

 

 

 

 

 

 

 

 

 

신중탱 대신에 모셔진 마애신중패

 

(중앙) 나무금강회상 불보살

(우측) 도리회상성현중

(좌측) 옹호회상영기등중

 

 

대웅전 옆 인법당에 모셔진 금동보살좌상이다. 제를 준비하는 보살님들이 바쁘게 움직이고, 촛불의 조명, 유리상자 속에 안치되어 사진 촬영이 어려웠다.

 

 

사진출처...문화재청

 

보타사 금동보살좌상은 왼쪽 다리는 아래로 내려 바닥을 딛고 오른쪽 다리의 무릎을 세워 앉는 유희좌의 자세를 취하고 있다. 방형 상호에 통통한 뺨, 반개한 눈, 작고 아름다운 입술, 짧고 깊은 인중, 신체에 걸쳐진 화려한 영락 등에서 여성적인 면모가 느껴지는 보살상이다.조선 초 왕실이나 지배층이 발원한 상으로 추정한다.  

 

어깨에 천의를 숄처럼 걸치고 그 한 자락을 수직으로 늘어뜨리고 있다. 오른손에는 정병을 들고 계신다. 또한 보살상은 나무로 보수한 왼발. 결실된 보계를 제외하면 보존상태가 양호할 뿐 아니라 조선 초기에 중앙에서 유행했던 귀족적인 보살상 형식을 보여주는 작례로 알려져 있다.

2014.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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