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대웅전 뒤 암벽을 보면 고교 2학년 시절 한 장면이 눈앞을 스쳐간다. 우리반 급우중에 산악회원이 있었다. 그친구가 암벽을 타고 올라가자 우리 담임선생님 당장 내려오지 않으면 퇴학 처분하겠다고 고래고래(?) 소리치더니 급기야 애걸복걸(?)하면서 내려오라고 하셨었다. 그날 소풍 분위기는 상상에 맡긴다. 졸업 이후 그 친구는 만난 적이 없지만 선생님은 모교 교장선생님을 역임하셨는데 건강하시기를 빌어 본다.
안일사가 위치한 곳은 앞산 안지랑이골로 조계종 동화사의 말사이다. 927년(경순왕 1)에 영조가 창건하였으며, 고려 태조왕건이 이곳에서 편안하게 머물렀기 때문에 안일암이라고 하였다. 지금도 절 위 500m 지점에는 왕건이 머물렀던 굴이 있다. 이후의 사적은 전래되지 않고 있다.
1915년 음력 1월 윤상태, 서상일, 이시영 등 13명이 이곳에서 목숨을 바쳐 국권회복운동을 할 것을 서약하고, 비밀결사인 조선국권회복단 중앙총부를 조직하였으며, 1919년 3·1독립운동 뒤에는 상해임시정부를 돕기 위하여 군자금 조달운동이 벌어지는 등 일제강점기 하에 항일운동의 본거지가 되었다. 1932년에는 경송이 중창하였고, 1960년 이후 주지 철인이 중건하였다.
지장보살.석가여래.관음보살
조선후기에 제작한 목조여래좌상. 조성기. 발원문 등 복장유물은 전하지 않는다. 우리카페 손태호님은 오른손은 후대에 부보한 것으로 보며 본래는 아미타 수인의 아미타여래로 추측한다. 비록 후대에 조성되었지만 협시불로 미루어도 이해가 된다.
2015.5월 대구시 유형문화재로 지정
후벽 목각탱
목각신장탱
1975년 안일사. 대웅전, 벌거숭이 민둥산이 뚜렷하다.
어찌 인민군 같다. ㅎㅎ
오랫만에 찾은 까닭에 옛모습을 전혀 느낄 수 없었다. 선지국으로 전국적인 지명도를 가진 안지랑골 대덕식당에서 안일사 까지는 비교적 가파른 시멘트 포장 등산로가 개설되어 있다. 주말 등산객이 붐비지만 매일 아침 운동을 하는 분들의 단골코스로 안일사에는 유명한 약수터가 있어 많은 사람의 발길이 이어진다고 한다. 하지만 내기억속의 안일사는 아니었다.
2014.05.2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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