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부산시

부산...백련사 석조여래좌상

임병기(선과) 2014. 3. 7. 0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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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출처...인드라망

 

2년전 설악산 봉정암 답사 이후 오프라인에서는 가끔 만났지만 순례는 2년전 설악산 봉정암 이후 처음이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공지글을 보고 마누라가 나보다 더 가고 싶어한 다. 그참!

 

 

남구  이기대공원로 85-74.어쩌면 부산 사람보다 대구사람들이 더 자주 찾는 이기대 둘레길이다. 분지에 사는 대구 사람들에게 바다와 횟집은 매력적인 코스임에는 분명하지만 나는 여러번의 기회를 포기하고 둘레길이 아니라 백련사 순례길에 인연을 지었다. 팔공산 갓바위 순례객의 50%는 부산 사람이라고 하듯이 이기대 순례길의 반은 대구 사람일까?

 

 

이기대는 그 동안 군사지역으로 통제되어 오다가 1993년에야 비로소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되었다고 한다. 이기대의 명칭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동래영지 의하면, 좌수영 남쪽으로 15리에 '두 명의 기생二妓'의 무덤이 있어 이기대라고 부른다고 하였다. 민간에 의해 구전되어 내려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당시 기생 두 명이 왜장을 술에 취하게 한 뒤 껴안고 바다에 뛰어내렸기 때문에 이기대二妓臺 또는 의기대義妓臺가 변형된 것이라고 한다. 또한 경상좌수사가 두 기생을 데리고 놀아서 이기대라고 하였다는 말도 있다고 한다.

 

 

백련사는 해안가 둘레길이 아니라 도로에서 약 2키로 산보 삼아 바다와 해안선을 바라보면서 걸어 가면 된다. 입구에서 제일 먼저 순례객을 반기는 님은 멀리 물을 건너온 듯한 부처님이다. 우리 나라 많은 사찰에도 세계화의 물결을 타고 중국, 베트남 등지에서 많은 부처님들이 들어 오셨다.

 

 

 

 

금당에 봉안된 삼존불

 

 

문화재청 설명문을 가져왔다.

 

백련사석조여래좌상 복장물에서 발견된 축원문에는 1906년 편수 문혜산이 제작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손을 배 앞에서 모아진 공수형을 하고 결가부좌하여 고개를 아래로 숙인 자세이다. 공수형 여래상은 통일신라 말~고려 초에 제작된 도전리 마애불 등과 조선후기 나한상 등에서 유사한 수인을 볼 수 있으나, 조선 후기에는 드문 도상으로 다양성이 부각되던 근대에 들어 새롭게 표현되는 특징이기도 하다. (성주 감응사 대웅전에도 조선후기 공수상 불상이 있다.옛님방 참조)

신체는 어깨와 무릎 너비가 균형을 이루고 있다. 머리는 육계와 구분 없이 중앙과 정상에 각각 계주가 있다. 둥글고 납작한 얼굴은 눈이 크고 원통형으로 생긴 코와 입 등 이목구비가 작아 귀여운 인상을 준다. 하반신을 감싼 듯 한 옷자락은 옷 주름 표현이 없이 간략하여 17세기 이후 지속되던 조선 후기 불상 양식과는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백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축원문에 적힌 바와 같이 1906년에 조성된 여래상으로 축원문을 비롯해 황초폭자에 싸인 후령통 등 간략하지만 기본적인 복장납입물의 내용을 갖추고 있다. 즉 양식이나 법식이 전통성을 계승하면서도 시대적 특징을 잘 반영하고 있다.

특히 이 불상의 조성자는 혜산당(蕙山堂) 또는 고산당(古山堂)으로 불리는 축연(竺衍)이다. 축연은 금강산에서 불화 수업을 한 후 전국적으로 활동을 하였는데, 경상도 지역에서는 1885년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삼신도를 그렸으며, 금호 약효와 함께 범어사 나한전 영산회상도와 괘불도 제작했다. 1920년대에는 양산 통도사 응진전 십육나한도와 신중도 등을 제작하는 등 활동 범위가 매우 넓은 불화승으로 19세기 후반~20세기 전반까지 당대의 불화승들과 함께 활약하였다.

백련사 석조여래좌상은 정확한 조성연대를 가지고 있으며 당시의 시대양식을 잘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근대 불교미술에 한 획을 그은 불화승인 축연이 제작한 작품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자못 크다고 판단된다.

 

 

품고 싶다!!!

 

이쁜 아낙보다 더 오래 품고 싶다.!

 

 

친절하신 보살님께서 문화재로 등록된 분이라고 말씀하신다. 바로 앞에서 아니라고 말씀드리면 면박을 주는 것 같아 웃음으로 화답했다.

 

보관은 어느 누가 훔쳐 갔을까???

 

 

여수 향일암. 남해 보리암.양양 홍연암의 경관도 수려하지만 백련사에서 건너 보이는 광안대교 풍광도 장관이다. 광안리 해수욕장에서 바라보는 야경 못지 않게 이곳에서의 야경도 신부산팔경의 하나로 등재하면 어떨까?

 

 

오늘

 

나는

 

부처님을 잠시 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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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0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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