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부산시

[스크랩] 부산...다대포 객사

임병기(선과) 2008. 8. 19. 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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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놈의 중생이 차안에서 선크림을 떡칠한다. 5분도 안 지나서 흘르 내리는 땀으로 인해 소용도 없겠지만 전투(?)에 임하는 장군이 위장술이 없을 수 있겠는가?

 

멀리 해변가에는 전투 경찰들이 소리내어 구보를 하고 있다. 누슬스놈은 전투경찰 출신답게 체육대회 배경, 어슬렁 거리는 고참들의 행태, 모래 재질까지 꿰뚫고 있다.

 

몰운대는 답사 코스보다는 산보 코스로 더 어을릴 것같은 풍광이 펼쳐진다 도심과 가까운 곳에 천혜의 자원이 있음에도 부산분들은 어디로 피서를 가고 몰운대 산보코스는 바람만 스쳐 지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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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로 올라가는 길목에 시비가 서있다.

                         

                      몰운대...선조조 동래부사(東萊府使) 이춘원(李春元)

 

           浩蕩風濤千萬里(호탕풍도천만리)  호탕한 바람과 파도 천리만리 이어졌는데

           白雲天半沒孤臺(백운천반몰고대)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扶桑曉日車輪赤(부상효일차륜적)  새벽마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常見仙人賀鶴來(상견선인하학래)  언제나 학을 타고 신선이 온다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의 가장 남쪽에서 바다와 맞닿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16세기까지는 몰운대라는 섬이 있었으나, 그후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어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지형상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沒雲臺)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로서 임진왜란(1592) 때에는 격전이 벌어졌으며, 이순신의 선봉장이었던 충장공 정운도 이 앞 바다에서 500여 척의 왜선을 맞아 힘껏 싸우다가 순국하는 등 역사의 한 장면이 연출된 곳이기도 하다. 정운의 순국을 기리기 위한 사당과 비석이 있는 이 곳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경승지이다...문화재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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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태포 객사. 우리님들도 이제는 객사에 대해서 너무 잘 인식하고 있을 것이다. 우리카페에 올려진 전국의 객사만 해도 아주 많다. 문화재청 자료를 가져왔다.
 
객사는 관아(官衙)건물의 하나로 전패(殿牌)를 안치하고 고을의 수령(守令)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大闕)을 향하여 망배(望拜)를 드리던 곳이며 또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하였다. 정당(正堂)과 그 좌우에 익실(翼室)을 두는 것이 일반적이므로 이 객사는 정당만 남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 다대포는 옛부터 왜구(倭寇)를 막기 위한 군사(軍事) 요지로, 임진왜란(壬辰倭亂) 이후에는 경상좌도(慶尙左道) 7진(七鎭)의 하나가 되었으며 부산진(釜山鎭)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 중요시 되었던 곳이다.
 
이 건물의 초창(初創) 연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소실(燒失)된 후 수차 중건(重建)되다가 순조(純祖) 25년(1825)에 중수(重修)된 것으로 5량가구(五樑架構)의 팔작집이다. 원래는 다대초교 구(舊) 첨사영(僉使營))에 있던 것을 1970년 지금의 자리로 옮겨 복원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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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팔작지붕이다. 벽이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이 객사는 일반적으로 중앙의 정당과 좌우 익실로 이루어진 다른 객사들과는 달리 정당만이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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객사 사래에 걸쳐진 망와가 눈에 들어온다. 일반적으로 귀면와로 마감되는데 흔치않게 박쥐무늬가 새겨져 있다. 박쥐문양은 조선시대에 청나라레서 유입된 문양으로 추정하며  장신구, 가구와 건축의 금속제 장식물, 자기 등의 여러 기물에 복(福)자를 대신해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난다.

 

박쥐를 나타내는 복과 福이 발음이 같아  복을 상징하며,또한  장수(長壽), 부(富), 귀(貴), 강녕(康寧), 다남(多男)의 오복(五福)사상과 결합하여 현세의 기복적(祈福的) 길상(吉祥)의 상징적인 의미로 일상 생활용품에 박쥐를 표현하여 현실적인 염원을 담았으며, 덕을 많이 쌓은 사람의 행복을 방해하는 귀신을 쫓는 표상으로 부적에도 그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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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와서 캔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켜 보지만 별무 소용없다.

 

이 더위에 우리는 뭘 하고 있지?

 

미쳤지!  미쳤어!!!!!!!!!!!

 

그래도 입에서는 배호의 '파도'가 흥얼흥얼...

 

영판 맛 갔다!!!!!

 

2008.07.28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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