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광역시/부산시

[스크랩] 부산... 마하사

임병기(선과) 2008. 8. 1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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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사가 위치한 금련산(金蓮山)의 금련(金蓮)도 금(金)색 빛나는 연꽃이라는 뜻이니 금이라는 광물이 지니는 성질처럼 ‘불변의 연꽃’이라는 큰 상징성을 지닌다 해도 과언은 아니다.

 

부산의 동남해안에 뻗어 있는 황령산의 서북쪽 여러 산봉 중 하나인 이 ‘금빛 연꽃 산’에는 금학이 알을 품고 있는 금학포란(金鶴包卵)의 형세를 한 고찰이 있으니 바로 5세기경 아도화상이 창건한 마하사(摩河寺)이다. 넓지는 않으나 새가 알을 낳아 품고 있는 듯 둥지 같이 오붓한 분위기를 자아내는 마하사는 불법(佛法)으로 중생을 따뜻하게 품어, 청정하고 지혜로운 불자들을 키워낼 영원한 요람이라는 깊은 의미를 지닌다.

 

이처럼 마하사는 깊은 산중사찰이지만 실은 부산의 중심인 시청에서 10분거리 남짓할 뿐 아니라 우리민족의 오랜 신앙으로 자리잡은 나한신앙의 근본도량으로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도심과 산지지형이 한데 어우러져 공존하는 부산만의 특색이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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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사의 창건연대는 신라시대 이전으로 추정하고 있었을 뿐 정확한 기록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1965년~1970년 사이 대대적인 중창불사를 단행하던 중 당시 대웅전 과 나한전(응진전)에서 상량문이 발견되었는데 이 상량문이 전하는 바대로 아도화상(阿道和尙)의 창건으로 전해지고 있다.

 

마하사의 연기에 따르면 신라 내물왕 39년(394) 아도화상(阿道和尙)이 경북 선산에 신라 최초의 사찰인 도리사(桃李寺)를 세우고, 남으로 내려와 나한기도도량(羅漢祈禱道場)인 마하사를 세웠다고 한다.

초창 당시 마하사의 말사로 반야암(般若庵)과 바라밀암(波羅密庵)이라는 부속 암자가 있었는데, 마하사, 반야암, 바라밀암이라고 이름을 붙인 것은 부처님 가르침의 정수가 담겨 있는 '마하반야바라밀다심경'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고 있다.

 

마하사의 창건은 신라에 불교를 전한 아도화상이 창건했다고 하고 있으나,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는 문헌자료가 부족하여 단순히 연기설화로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한계가 있다. 아도화상에 대해서는 고려 충렬왕(1274~1308)때 일연(一然)스님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 권3, 아도기라(阿道基羅)에 기록되어 있으나, 정확하게 알 수가 없다. 다만 도리사, 직지사, 갑사, 전등사와 더불어 마하사를 아도스님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대웅전 상량문에서 발견된 아도화상 창건 설 대로라면 마하사 초창연대는 5세기경으로 올라가는 고찰이 된다...한국전통사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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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목,다문천왕

 

일주문을 대신하여 천왕문을 2층 누대로 조성하였다. 입구 벽에는 금강상을 모시고 누하 벽면에는 사천왕을 모셨다. 2층은 범종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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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국.증장천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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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사 중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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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석가여래삼존상(유리관 내). 고개를 약간숙이고 결가부좌한 방형 상호의 본존불은 통견,삼도가 보이고나발이며 정상계주와 중간계주도 표현하였다. 협시보살상은 본존의 표현기법과 거의 유사하며, 승각기에는 조선후기 조각에 보편적으로 보이는 몇 겹으로 주름잡힌 상태로 처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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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웅전 목각신중탱. 영산, 지장탱도 목각으로 조성하여 모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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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둥위의 코끼리와 사자. 문수,보현 보살은 더위를 피해 만행 가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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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 목조여래. 대웅전 여래처럼 고개를 약간숙이고 결가부조 하였다. 상호에 비해 어깨가 약해 보인다. 오른손 수인은 항마촉지, 왼손은 여원인이다. 응진전 삼존불 뒤 영산회상탱의 제작시기가 1910년 임으로 미루어 불상 봉안시기도 추측 가능하다.

 

1910년 조성된 영산회상탱은 중앙에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하단에는 문수, 보현,관음,대세지보살을 상단에는 가섭,아난존자를 비롯 제자를위시한 4제자를, 모서리에는 사천왕이 배치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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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의 16나한과 나한도 역시 1910년  조성하였다. 그해는 경술년 즉 우리나라가 일제 의해 나라를 침탈당하는 해이다. 어떤분의 발원으로 마하사에서 대불사가 있었는지 궁금하다. 자료는 문화재청에서 가져왔다.

 

응진전 석조 나한상. 16구 중 12구만 남아 전하며, 나머지 4구는 근래 다시 추가 조성된 상태이다. 12구 모두 화강석재 위에 백토와 기름을 발라 처리하였으며, 얼굴과 머리 부분에는 먹·붉은색·백색·녹색으로 얼굴 윤곽과 모근을 표현하였다.

 

자세는 주로 결가좌를 취하고 있으나 반가좌의 경우도 있으며, 옷차림은 장삼에 가사를 걸친 모습이다. 지물은 대개 불자·경전·보주 등을 쥐고 있으며, 향좌측 6번째 나한상은 결가좌한 다리 위로 호랑이가 묘사되어 있다.

 

16나한도는 비단 바탕에 채색하여 그려진 것으로, 원래 총 4폭이었으나 1폭이 결실되어 3폭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나한상의 육신은 붉은색에 백색안료를 많이 섞은 분홍색으로 피부를 표현하였고, 육신선은 가는 먹선 위에 엷은 붉은색 선을 겹쳐서 나타내었으며, 육신선에 따라 붉은색으로 바림하여 입체감을 살리고 있다.

 

머리 부분은 노승(老僧)의 경우 흰 선으로 머리털을 표현하고, 약승의 경우 녹청을 발라 묘사하였다. 옷차림은 대개 녹청 혹은 군청 장삼에 홍색 가사로 보색대비를 나타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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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진전 나한과 관련하여 재미난 전설이 전해 내려온다. 지금으로부터 500여년전의 어느 동짓날의 일이었다. 스님이 새벽에 일어나 보니 화덕에 늘 살려두는 불씨가 꺼져 있었다. 불씨를 구하려 황령산 봉수대로 가서 불씨를 구하고자 했으나 봉수꾼이 말하길, 조금전에 동자승이 와서 불씨도 주고 팥죽도 먹여서 보냈다고 하였다.

 

절에는 동자승이 없다고 말하니, 틀림없이 마하사에서 왔다고 하며 내려가 보라 하였다. 급히 절로 돌아와 보니 화덕에 불씨가 살아 활활 타고 있었다. 아무래도 이상해 나한전에 들어가 보니 오른쪽에서 3번째 나한의 입술에 팥죽이 묻어 있었다. 그것을 본 스님은 자신의 나태함을 부끄러워하며 나한님의 신통력에 크게 감읍하였다고 한다.

 

 마하사 도량에는 참새떼가 많이 모여들어 청정한 도량을 시끄럽게 하고 곡물에 피해를 줘 골치를 썩였다. 그래서 스님이 나한전 나한님께 참새들이 마하사에 오지 않도록 해 달라고 기원하였는데 어느날 도량 한 가운데 참새 한마리가 떨어져 죽은 것을 발견하였다. 그 후로 마하사 도량에는 참새떼가 사라졌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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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대복연(지장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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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양간과 지장전이 한 전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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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에는 조왕인줄 알았다. 현왕탱은 드물며 나는 처음 접한 탱이다. 문화재청에서 자료를 가져왔다.

 

유형문화재 제54호인 현왕탱(摩訶寺 現王幀)은 회화 1폭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조선시대인 1792년 조성되었다.

마하대복연(지장전)에 봉안되어져 있는 현왕탱은 화면 중앙에 관(冠)을 쓰고 홀(笏)을 지닌 현왕(現王)이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이 크게 묘사 되어져 있고, 그 좌우에는 조금 작게 묘사된 판관(判官)들이 각각 6분씩 12분이 현왕 쪽으로 예를 올리며 에워싸고 있는 화면 구도를 지니고 있다.

 

사람이 죽은 후 3일만에 받는 심판을 주재하는 곳의 명간교주(冥間敎主)이자 정의를 지키는 법왕(法王)을 현왕(現王)이라 한다. 이 현왕을 모신 곳이 현왕단이며, 현왕단에 현왕재를 올려 영가를 천도하기도 하고 병으로 고통받는 중생을 구제해 달라거나 사바 인연이 다한 경우에는 편이 돌아가게 해달라고 기원하기도 한다.(진본은 범어사 성보박물관에 보관하고 있으며 현재 봉안 중인 현왕탱은 2003년 5월 모사한 것이다)

 

3폭 산수화 병풍을 배경으로 중앙에 현왕이 책상을 앞에 두고 양손에 홀을 쥔 채 정면향으로 의자에 앉아 있고, 그 좌우에 재관집홀상(載官執笏狀)의 녹사 6명이 현왕을 향해 각각 배치되어 있는 현왕탱은 기년명이 뚜렷하여 그 제작시기(1792년)를 알 수 있어 조선후기 부산·경남지역의 불교미술 양식과 계보를 살필 수 있는 사료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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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하사는 도심속의 작은 절집에 불과하지만 금련산 마하사에서 들려오는 저녁 종소리를 수영팔경의 하나로 칭했던 시절도 있었다고 한다. 해질녁 저녁종소리도 들으며 우리 옛님도 감상하며 우리님들이 잠시 마음 놓아도 좋을 도심속 산지 가람이다.

 

사는 게 별건가요?

 

2008.07.28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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