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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북도/무주군

무주....석기봉 마애 삼면관음보살좌상(?)

by 임병기(선과) 2013. 11.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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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기봉 마애불을 찾기 위해서는 우선 삼도봉으로 목적지를 잡아야 한다. 나는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를 통하여 산행을 시작했다. 예전과 달리 대형 버스도 이곳 해인리 마을회관 앞에 2~3대 주차 가능하며, 승용차는 이곳을 통과하여 해인산장, 산불 감시초소 앞까지 진입 가능하다. 산불 감시초소 우측 등반코스를 통하는 길도 있지만 산불예방으로 출입이 통제되지 않을 때는 좌측 시멘트 포장길을 통하여 중턱 주차장까지 진입 가능하다.

 

삼도봉

 

삼도봉(1176M)은 영동군 상촌면 물한리, 무주군 설천면 대불리, 김천시 부항면 해인리의 도계이다. 3개 지자체는 매년 10월 3개 도민의 화홥을 다지는 '삼도봉 만남의 날' 행사를 1988년부터 개최하고 있다. 무주군의 제의로  지역 간 불신의 벽을 허물고 화합과 공동 발전의 계기를 마련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되었다고 한다.

 

 

삼도봉에서 바라본 김천시 부항면

 

 

무주군 설천면

 

 

석기봉 코스에서 뒤돌아 본 삼도봉

 

석기봉

 

삼도봉에서 민주지산 방향 능선을 따라가는 1.4KM 거리의 평이한 코스이다.

 

 

 

위 표지판을 지나 석기봉 직전에 보이는 그림이다. 바위와 산행객이 쌓응 돌무더기, 석기봉으로 오르는 밧줄, 이사진 좌측으로 무주군으로 향하는 작은 오솔길이 있다. 길을 따라 약 100M 내려가면 마애불이 자리한다.

 

 

높이는 1,200m이다. 바위산이며, 쌀겨처럼 생겼다고 하여 쌀개봉이라 부른데서 석기봉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 삼도봉(1,176m)을 시작으로 민주지산(1,242m), 각호산(1,176m)과 함께 웅장한 서북 능선을 이루는 산군에 속한다. 각호산 미주지산 삼도봉을 잇는 능선은 수림이 우거지고 바위들이 섞여 있으며 봄이면 능선을 따라 8㎞에 걸쳐 진달래가 만발한다. 그 산들 사이에는 유명한 피서지인 물한계곡이 자리잡고 있다.   조망이 좋아서 정상에서는 북동쪽으로 황악산, 동남쪽으로 가야산, 서남쪽으로 마이산이  보인다. 

 

 

마애불이 바라보는 무주군 설천면 방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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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몇날 밤 꿈속에서 아련거리던 님이시다. 그님이 연무를 헤치며 가는 비 속으로 나투신다. 말문이 막히고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우리나라에서 유일한 삼두마애불이다. 앞선 사람들은 왜 민속신앙과 결합된 존상으로 보는 것일까?

 

 

마애불 앞에 세워진 설명문을 보자.

 

"석기봉에서 서남방향 바위에 양각된 삼신상三神像, 一身三頭像이 있다. 이 삼신상은 고려 또는 백제시대에 조성되었다는 설이 있다. 근화좌대槿花坐臺 위에 오른쪽에 납의를 두르고 결가부좌를 한 형상이다.왼쪽발가락이 오른쪽 정강이 아래로 튀어 나와 있는 특이한 자세를 취하고 있으며 몸에 비해 얼굴은 비대하고 방형에 가깝다. 귀는 목까지 내려와 있으며 양손은 약간 벌어진 형태로 가슴에 대고 있는 것 처럼 보인다. 얼굴은 풍화되어 윤곽이 뚜렷하지 않으나 가늘게 뜬 눈,다문 입술, 얕게 조형된 콧등이 희미하게 보인다. 삼신상 앞에는 공터가 있는데 예로부터 하늘과 산신에게 비는 기도처로 이름 나있다.

 

삼신三神은 천지인을 말하는데 천天은 칠성七星, 지地는 용왕龍王 인人은 산신山神을 뜻하기도 한다.

삼신은 우리 민간신앙의 터전이 되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삼신상을 사랑하는 사람들"

 

위의 설명을 아니라고 할만한 근거가 내게는 없다. 여러 자료를 검색하여도 마애불에 대한 글은 찾을 수 없었다. 그런대 이 안내문을 세운 주체인 '삼신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운 안내문 때문에 모든 매체와 인터넷상에 삼신상으로 회자되고 있다.즉 불교의 불보살이 아니라 민속신앙인 삼신상으로 불리어지고 있는 것이다. 또한 불보살이 아니기에 대좌도 연화대좌가 아니라 근화좌대槿花坐臺로 설명하였다.

 

지자체 또는 문화재청에서 고증을 통하여 공식적인 발표가 없는 상황에서 삼신으로 정의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본다.

 

 

불보살이라면 그냥 미륵불로 부르면 최고의 선일텐데 그래도 한 번 살펴보자. 삼도 아래에 영락이 보이고(사진 테크닉이 엉망이다), 맨위에는 희미하지만 보관이 있으며 그 위에는 석탑 상륜처럼 노반 복발 보개 보주도 보인다고 한다(기실 내눈에도 긴가민가이다). 그럼 생각나는 존상이 없는가? 그렇다. 보살상의 특징이다.(근거도 빈약하면서 진도 너무 나가는 것 아닌가 몰러?). 여기까지만 살펴보아도 존상은 마애삼신좌상이 아니라 마애보살좌상이 옳지 않을까?

 

상호가 셋이라니?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보면 어디선가 본 듯한 기억이 없는가? 석굴암 11면 관음보살 입상 기억하는가?

 

 

근화대좌? 연화대좌?

 

 

왼쪽발가락이 오른쪽 정강이 아래로 튀어 나왔다.

 

 

우리카페 재야의 고수 민학기님은 맨위 보관 뿐만 아니라 두 기 상호도 보관으로 해석한다. 즉 보관 안의 화불 개념으로 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33관음의 변화관음인 삼면관음보살좌상으로 정의한다. 또한 변화관음은 밀교의 발달에 따라 11면,6면,7면 33면관음보살로 전개되면 3면 관음은 중국 비래봉 3면 팔비보살상이 전한다고 한다.

 

중국 비래봉 삼면팔비보살상...사진 출처/민학기님

 

이해를 돕기 위해 석굴암 11면 관음에 대한 설명을 허균의 사찰 100미 100선에서 가져왔다.

 

“아름답다”는 말도 필요없는 ‘예술의 극치’

우리나라 불교 조각예술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석굴암 석굴의 불상군(佛像群), 그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받는 것이 본존상과 십일면관음보살상이다. 국내에서는 보기 드물게 머리 위에 11개의 얼굴을 가진 이 특이한 모습의 관음보살상은 여성적인 몸매에 화려한 장신구를 두른 것이 특징이다. 전실에서는 본존상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다가가 대하면 그 아름답고 거룩한 자태에 압도당하고 만다. 이런 예술품은 심원한 종교적 체험과 차원 높은 미의식을 갖춘 신라인들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창조해 낼 수 없을 것이 분명하다.

 

“원광(圓光) 보관(寶冠)이 모두 다 거룩하다/부드러운 두 볼, 날씬한 두 억개/춘산(春山) 아미(峨眉)가 으적이 열린 미테 결곡하게 드리우신 코 어엽부다 방울조차 없구나/고은지고 보살의 손, 돌이면서 백어(白魚) 갔다/신라 옛 미인이 저러트시 거룩하오/무릅 꿀어 울어러 만지면 훈향(薰香) 내 높은 훈훈한 살기운/당장 곧 따수할 듯 하구나.”(〈삼천리〉 제11권 제1호(1939. 1. 1)) 이상은 월탄 박종화 선생이 십일면관음보살상을 상찬한 ‘석굴암’ 시의 일부다. 맞춤법통일안 이전의 글이라 우리에게 익숙지 않은 표현이 있지만 십일면관음보살상을 직접 친견한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이 시의 정서에 공감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석굴암11면관음보살...사진 출처/이홍식님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은 석굴내의 다른 어떤 보살상보다 매력적이고 육감적이다. 매끄러운 신체 곡선을 타고 흘러내리는 천의(天衣)는 이 보살상이 과연 돌로 만든 것인가를 의심할 정도로 부드럽고 섬세하다. 엉덩이를 약간 내민 자태와 화려한 장신구로 감싸인 날씬한 허리는 보는 이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그러나 결코 관능적 흥분을 일으키게 하지 않는 것은 그 육감적인 자태 속에 종교적 장엄미가 내재해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십일면관음보살의 모태는 관음보살이다. 관음보살은 관세음보살.관자재보살 등 여러가지 명호로 불린다. ‘관세음이란 세간의 음성을 관하는’이란 뜻이고, 관자재라 함은 지혜로 관조하므로 자재한 묘과(妙果)를 얻는다는 뜻이다.

관음보살은 그를 원하는 중생의 근기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몸을 나타내는데, 이것을 보문시현(普門示現)이라고 한다. 십일면관음보살은 성관음의 보문시현에 의해 나타난 또 다른 관음보살로, 성관음.천수관음.마두관음.준제관음.여의륜관음과 함께 6관음의 하나로 신봉되고 있다.

 

십일면관음보살상의 도상적 특징은 머리 위에 11개의 불보살 얼굴이 부가되어 있다는 점이다. 이처럼 본 얼굴 외에 다른 여러가지 얼굴을 덧붙이는 형식은 인도 힌두교의 신상에서 그 연원을 찾을 수 있다.

 

예컨대 우주 창조의 신인 브라마는 3개의 얼굴을 가진 모습으로 표현되고, 시바 신의 화현인 칼리는 10여 개의 얼굴과 수많은 팔을 가진 여신으로 묘사된다. 그런가 하면 열렬한 시바의 신봉자인 라바나는 10개의 머리를 가진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한다. 이처럼 신상의 본 얼굴에 추가된 여러 개 얼굴은 그 신이 가진 여러 가지 권능과 서원(誓願)의 내용을 드러내기 위한 방편이 된다.

 

전신에 가득한 기품.날씬한 허리곡선

 

그러나 관능적 흥분은 일으키지 않고

 

머리위 십일면불보살엔 因果의 가르침

 

석굴암11면 관음보살...사진출처/이홍식님

 

십일면관음보살의 11면은 보살 얼굴 10면, 부처님 얼굴 1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각 면상(面像)들의 표정은 모두 네 가지인데, 적정상(寂靜相), 위노상(威怒相), 백아상출상(白牙上出相), 대소상(大笑相)이 그것이다. 여기서 적정상은 자비의 표정, 위노상은 분노하는 표정, 백아상출상은 이를 드러내고 있는 표정, 대소상은 크게 웃는 표정을 말한다. 각 표정은 관음보살의 권능, 서원, 내증 등을 나타내는 방편인데, 적정상은 중생을 자심(慈心)으로 대하면서 즐거움을 준다는 뜻을, 위노상은 악한 중생을 보면 비심(悲心)을 일으켜 그를 고통에서 구한다는 의미를, 백아상출상은 정법을 행하고 있는 사람을 보면 더욱 불도에 정진토록 권장한다는 뜻을, 대소상은 착한 자나 악한 자 등 중생들이 뒤섞여 있는 모습을 보고 웃음으로써 이들 모두를 거둬들인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각 면상들은 표정 그룹별로 정해진 위치에 배치되는데, 적정상 3면은 정수리의 부처님 앞에, 위노상 3면은 정면 화불(化佛) 왼쪽에, 백아상출상 3면은 화불 오른쪽에, 그리고 크게 웃는 대소상 1면은 머리 뒤쪽에 배치되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어찌하여 적정상과 위노상과 백아상출상은 3면이고, 부처님 얼굴과 대소상은 1면뿐인가.

 

적정상을 셋으로 한 것은

①고통에 빠져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고득락(離苦得樂)케 하는 것과,

 

②복이 있으나 지혜가 없는 사람으로 하여금 지혜를 가지게 하는 것과,

 

③지혜가 있으나 도통(道通)하지 못한 자를 통하게 하는 관음보살의 세 가지 자심(慈心)을 표현하기 위함이며,

 

위노상을 셋으로 한 것은

①선업을 쌓지 않고 선과를 구하려는 것, ②미혹과 고통의 업보를 거듭하면서도 고통과 업보에서 벗어나려고 하는 것,

③어지럽고 산만하면서도 적정(寂靜)을 즐기려고 하는 것 등 잘못을 깨우치게 하려는 관음보살의 세 가지 서원을 나타내기 위한 것이다.

 

또한 백아상출상을 셋으로 한 것은 삼업(三業) 즉, ①살생 투도 사음 등 몸으로 짓는 업,

②망어 기어(綺語) 양설(兩舌) 악구(惡口)입으로 짓는 업과,

③탐심 진심(瞋心) 치심(痴心) 등 뜻으로 짓는 업을 짓지 않게 하는 관음보살의 서원을 나타내기 위해서다. 그리고 부처님의 얼굴이 하나인 것은 과도(果道)가 둘이 아니기 때문이며, 대소상이 하나인 것은 선악과 잡되고 더러운 것을 한번으로 웃어넘겨 섭수하기 때문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십일면관음보살상 머리 위에 올려 진 모든 보살과 부처님 얼굴은 인과(因果)의 원리를 상징한다. 즉, 10면의 보살 얼굴은 인(因)을 의미하고, 정수리의 부처님 얼굴은 과(果)를 의미하므로 전체적으로는 인과의 원리를 나타낸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또한 11면 전체 불보살 얼굴은 방편이고, 보관의 화불은 법성 진여라 할 수 있으므로, 이 또한 정법과 방편의 도리를 나타낸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십일면관음보살상의 유래와 도상적 근거는 어떤 경전에서 찾을 수 있는가. 그 대표적인 경전이 〈십일면관자재보살심밀언의궤경〉, 〈십일면관음신주심경〉 등인데, 〈십일면관자재보살심밀언의궤경〉에 이런 내용이 있다.

 

세존이 보타락카산의 대성(大聖) 관자재 궁전에 있을 때 관자재보살이 11면 근본 다라니를 설하는데, 이 진언은 과거 자신이 백련화여래에게서 받은 것으로 열 가지의 이로움과 네 가지의 공덕이 있다. 관자재보살상을 조성하는 방법은, 길이가 한 자 세 치, 얼굴은 열한 개, 팔은 네 개를 가진 상을 만들되, 오른 쪽의 첫째 손에는 염주를 들고, 두 번째 손은 수인을 취하고, 왼쪽의 첫째 손은 연꽃을, 두 번째 손은 병을 잡게 한다. 머리에 11면을 부가하되, 앞쪽의 3면은 적정상, 왼쪽 3면은 위노상, 오른쪽 3면은 이아출현상(利牙出現相), 뒤쪽의 1면은 대소상, 위쪽의 1면은 여래상으로 한다고 되어 있다.

 

석굴암 석굴 십일면관음보살상의 11면도 기본적으로 이 경의 내용을 따르고 있다. 머리에 부가된 불보살상들을 살펴보면, 정수리에 전신 광배를 가진 불좌상이 안치되어 있고, 이를 중심으로 9면의 보살 얼굴이 배치되어 있다. 정수리의 불상은 과거에 일본인들이 보충한 것으로, 십일면관음보살상 정수리에는 부처님의 얼굴을 조각하는 것이 원칙임을 감안할 때 잘못된 형태가 아닌가 생각된다. 이 부처님 상 앞 쪽에 세 보살 얼굴이 조각되어 있는데, 이것이 적정상을 나타낸 것이다. 이들 바로 밑 정면 중앙에 아미타불로 추정되는 화불이 입상으로 조각되어 있고, 그 양쪽에 각각 3면의 보살 얼굴이 배치되어 있는데, 왼쪽의 3면이 위노상, 오른 쪽의 3면이 백아상출상이다. 머리 뒤쪽에도 보살 얼굴이 하나 더 있어야 할 것이나 이 보살상이 환조가 아닌 부조이기 때문에 뒤쪽의 1면은 생략된 것으로 보인다. 정수리의 부처님 얼굴 외에도 일제강점기 일본 사람들에 의해 보수되었거나 보충된 부분이 있는데, 현재 유독 희게 보이는 것이 그에 해당한다.

 

석굴암 십일면관음보살상 머리 위의 10개의 보살 얼굴은 보문시현으로 나타난 또 다른 관음보살의 모습이다. 그러나 이들 각 관음 화신들의 권능과 서원과 자증은 정수리의 부처님에 의해 하나로 통일되고, 이렇게 통일된 십일면관음보살은 결국 진리 자체를 상징하는 석굴 중앙의 본존여래에 융합되게 된다. 석굴암 불상군 전체 질서와 마찬가지로 십일면관음보살상에도 불일불이(不一不二), 일즉다 다즉일(一卽多多卽一)의 화엄의 원리가 적용되어 있는 것이다.

 

허  균/ 한국민예미술연구소장 

[불교신문 2265호/ 9월27일자]

 

 

마애삼면관음보살좌상?

 

조성시기는 언제일까? 설명문에는 백제, 또는 고려로 표기했지만 객관적인 자료는 어디에서 구했을까? 문화재청 사지총람에는 조선시대로 등재되어 있다. 

 

이 보살상의 큰 특징은 삼두와 불신과 전혀 비례가 맞지 않은 작은 손이다. 다른 도상은 뒤로 두고 작은 손을 가진 마애불을 살펴보면 고려초기의 불상들이다. 그렇다고 석기봉마애보살의 조성시기를 고려초로 단정하는 것은 아님을 밝혀둔다.

 

 

고령 개포리 마애관음보살좌상(985년 조성)

 

 

이천 소고리 마애삼존불

 

 

대불리"마을의 명칭은 옛날부터 불교와 관계되는 불대, 불당골, 중현 등과 같은 지명이 전해오고 있으며, 계곡 어디인가 알 수 없는 땅속에서 묻혀있는 부처 님이 땅위로 나올 때는 극락정토가 이루어 진다는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내북마을 불대와 불당골은 옛날 큰 사찰이 있었던 곳이라 전해오는데 마을 서쪽 계곡의 불당골에는 지금도 절터로 보이는 건물지의 기단석과 주초석이 남아있고 탑신, 옥개석, 기와조각 등이 출토되어 불교와 깊은 관계가 있음을 보여주고 있으며, 안골짜기 중고개(중현) 정상에는 어느 시대 것인지는 알 수 없으나 삼두 형상을 하고 있는 마애불상이 석기봉 석벽에 새겨져 있다."

 

위의 설명으로 미루어 석기봉 마애보살은 불당골에 있었던 큰 사찰의 암자였음을 알 수 있다. 

 

 

제글은 어떤 근거가 있는는 이야기는 절대로 아니다. 전문가, 불교미술사가, 교수님들이 공동으로 조사, 고증하여 시급히 존명을 찾아 주었으면 더없이 좋겠다. 그날이 오면 언제라도 당장 달려갈텐데.

 

 

마애불 아래 약수터

 

 

마누라가 기원하는 바람은 무엇일까?

2013.1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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