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월면 성산리 성산마을. 남원 인월면과 함양 경계지점 고갯마을에 위치한 동리다. 입석(석불입상)을 만나러 왔더니 이마을이 흥부 마을이라고 한다. 그러나 남원 아영면 성리마을도 흥부마을로 전하고 있다. "1992년 경희대 민속학연구소의 고증을 통해 인월면 성산리는 흥부와 놀부의 출생지로(박첨지 설화), 아영면 성리마을은 흥부가 정착하여 부자가 된 마을로(춘보설화)알려졌다."
인월면 풀수설화를 보자. "성산마을은 흥부전의 발상지로 《남원의 마을유래》에 따르면, 이 마을은 풍수지리적으로 제비집 모양의 연소형국(燕소形局)이라고 한다. 또 갈용음수혈渴龍飮水穴이라 하기도 한다. 이상훈 선생의 <동면 성산리(城山里) 성산(城山)마을 바위, 당산목, 입석>에도, 성산 마을은 풍수적으로 제비집모양의 연소혈燕巢穴 또는 목마른 용이 물을 마시는 형국인 갈용음수渴龍飮水라고도 한다."
성황당
마을 입구에는 목장승, 성황당, 석장승, 조산과 석불입상을 조성하여 마을로 들어오는 사악한 기운을 2차, 3차 차단하고 있다. 마을입구의 성황당? 산뜻한 표지석 뒷쪽 녹슬은 안내문도 성황당 표식? 현재 성황당 모습은 근자에 조성한 듯 보인다. 남원 문화대전에 언급된 하당으로 새마을 운동 시절 도로 확장 과정에서 훼손을 입은 것을 최근에 복원한 것일까?
목장승
예전에는 마을 근처 야산에서 적당한 나무를 선별하여 정성스럽게 다듬고 장승제 후에 세웠을 것이다. 지금은 그런 노력과 정성으로 모실 젊은이도 귀한 현실 아닌가? 그렇더라도 목장승을 대신해 양쪽에 도열해 있는 석물공장 출신 뽀얀 석장승은 온기없는 환자 같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목장승
입석( 남원 출신 이홍식님은 선각석불입상으로 명기된 자료가 있다고 했다). 조산 위에 입석을 모시는 경우는 많다. 그러나 일부 자료에 보이는 남근석은 무리가 있다고 본다. 남근석을 이렇게 높이 조산 위에 모시지 않는다. 오히려 미륵불로 봉안한 석불로 다가온다.
특별한 조식은 없다.
성황지
갈용음수형국에서는 인위적으로 저수지를 비보책으로 조성한다. 성산마을 앞 저수지도 농업 용수 외에고 그런 상징성을 함축하고 있을 것이다. 입구의 민속 대상 만큼이나 당신앙도 두터워 상당.중당, 하당 신앙을 모셨다고 한다. 현재는 성황지 옆 느티나무에서 음력 정월 14일 당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디지털 남원문화대전에 언급한 내용들은 우리나라 다른 지방에서 행해진 당산제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인다.
"제관은 원래 당산제를 지내기 1주일 전에 선정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현재는 몇 년 전부터 한 사람이 계속해서 제관을 맡고 있다. 제관에게는 마을 공동답을 떼어 주어, 거기에서 나오는 이익금으로 제사 비용과 수고비를 대체하고 있다. 2013.08.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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