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예천군

예천...죽림리 향나무

임병기(선과) 2013. 8. 20. 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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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문면 금당실 마을에서 다리 건너편 신주소 죽림길 43번지에 있는 향나무이다. 도착하여 보니 10년전 답사하였던 예천 권씨초간종택 입구에 서 있었다. 2003년 6월 답사기와 달리 고택은 말끔히 보수되어 10년전 모습은 찾을 수 없었다.

 

2003년 6월 7일 답사기를 보자.

"예천읍을 지나 용문사로 가는 도중에 예천 권씨 종택 팻말이 보인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권씨는 안동 권씨만 알려졌지만 가일, 예천 권씨도 일문을 이루고 특히 예천 권씨는 외가의 성으로 개성한 것이다. 즉 예천 권씨의 시조 권섬(權暹)의 본래 성씨는 흔(昕)이었으나 고려 충목왕의 이름이 흔(昕)이어서 외가의 성인 권(權)씨로 개성 후 시조가 되었다 한다.

예천 권씨 종택은 풍수에서 신선과 학이 어울려 노는 선인농학형(仙人弄鶴形)의 길지라고 한다.  이런 형국에서는 만석꾼 또는 당대 발복하여 대문장가를 배출하는 자리로 대구부사를 지낸 초간 권문해의 부친 권오상은 후자를 택하여 초간 선생을 낳은 것이다.

대부분의 영남 지방의 양택은 호남지방의 一자형 가옥 배치와 달리 ㅁ자 구조이나 종택은 ㄷ자 이어서 대문채와 행랑채가 사라졌다.  사랑마당, 안채마당, 사당 앞마당이 보이지만 육간 대청의 사랑채가 위엄를 나타내며 안채는 중문으로 연결되어 있다.  안사랑채 지붕에는 두 개의 합각마루가 있어 북부 경북 가옥배치에 충실한 구조이다.

유교 질서에 엄격한 가옥배치는 사랑채 기단이 안채보다 높다. 하지만 경사지에 자리 잡은 종택은 안채 기단이 높아 보여 안채의 처마를 홑처마로, 사랑채의 처마를 겹처마로 가구하여 주자학의 질서를 따랐다. 사랑방 뒤에 마루방을 두어 고방으로 연결하여 안채로 들어가게 되어 있었다.

종택 안내문에 의하면 초간 권문해는 송나라 음시부(?)의 체제를 모방하여 우리나라의 역사 지리 문학 철학 예술 인물 성씨 등을 20권 20책으로 [대동운부군옥]과, 사대부 집안의 일상과 관아의 일상을 엮은 초간일기를 남긴 분이다.

하지만 분명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인데도 마당은 풀이 우거지고 잡초를 머리에 인 지붕이 무거워 보여 편치 않았다. 종택 입구에 풍상을 이기지 못해 비스듬히 자라고 있는 향나무마져 힘겨워 보여 발걸음 무거웁다.

용문사 초입에 초간 권문해 선생이 학문에 정진하고 심신을 수련한 종택의 별당 같은 초간정은 기암을 휘돌아 가는 계곡 옆 자연암반 위에 막돌 헛튼층 쌓기로 기단을 조성 하였고 주위의 노송과 어울려 진경산수화 같은 전경이다. "

 

 

2003년 답사기에 언급된 향나무이다. 그런데도 기억조차 없어 다시 찾아 왔으니 인연이 깊은 향나무이다.

 

문화재청 설명문이다. "향나무는 우리나라 중부 이남을 비롯해 울릉도와 일본 등에 분포하고 있으며, 상나무·노송나무로도 불린다. 이 나무는 강한 향기를 지니고 있어 제사 때 향을 피우는 용도로도 쓰이며 정원수·공원수로 많이 심는다. 

 

죽림리 향나무는 나무 나이 약 300년으로 추정되는 노목으로 나무높이 10미터, 나무높이의 가슴둘레가 0.6미터인데 울향(鬱香)이라 부르는 나무이다.전설에 의하면 이 나무를 울향나무라 부르게 된 것은 이 마을을 개척할 때 무오사화에 연루되어 울릉도로 유배 당했던 권오상(權五常)공이 돌아오면서 가져다 연못가에 심은데서 유래되었다.지금의 향나무는 처음에 심었던 것이 아닌 훨씬 뒤에 심은 것으로 보이는데 대수마을과 영고성쇠를 함께한 전설의 나무이다."

 

 

 

 

 

 

 

 

 

일반적으로 알려진 내용과 달리 영남일보 이지용 기자 취재 기사는 다르다. 참고 하길 바란다.

 

"굽어 자라는 향나무 가슴높이 나무둘레를 재는 게 쉽지 않았지만 직접 재어본 나무둘레는 2.12m 였다. 안내문을 세울 때보다 나무가 많이 자란 탓일 것이다. 어릴 때 향나무에 올라가 놀았다는 권영기씨는 "이 향나무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커다란 향나무가 한 그루 더 있었는데 고사했다. 이 향나무는 무오사화때 해남으로 귀향간 15대조께서 돌아오는 길에 울릉도에 들렀다가 두 그루를 가져와 심은 것으로 수령은 500년이 넘었다. 지금도 제사 때는 향나무를 외과수술하면서 생긴 것과 고사한 향나무를 모아뒀다가 향을 피운다"고 알려줬다.

귀향간 곳이 울릉도가 아니고 해남이라고 한다. 수령도 300년이 아니고 500년이라는 상반된 주장이다. 어느 쪽이 맞는지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선조가 남긴 것을 소중히 보살피고 후세에 남겨 주려는 종손의 애정만은 느낄 수 있었다. 예천권씨 초간종택과 맥을 같이하는 향나무, 자손들이 한없이 흠모하고 있는 향나무, 오늘도 향나무는 푸르름을 잃지 않고 후손들에게 충절의 향기를 전해주고 있다."

 

                                                                                           2013.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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