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청도군

청도...청도읍성.석빙고

임병기(선과) 2012. 6. 11. 0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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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도는 아주 자주 다녀 왔었다. 그중에 2006년 나의 답사기는 이렇게 시작했다. "나의 고약한 버릇 아시죠? 한 번 다녀와 올린 답사기는 다시 답사해도 그것으로 끝!!! 컴을 알고부터 올린 답사기는 물론, 대학노트에 기록해둔 답사기도 마찬가지랍니다. 다만 우리님들 참고하시라고 자료는 올려 드리겠습니다"  2012년 참 양반이 다 되었다. 최신 사진을 올려주고 ㅎㅎ.

 

화양(청도)읍성...2006년

 

화양읍 서상리, 동상리, 교촌리를 둘러싸고 있던 청도읍성은 원래 토성 이었던 것을 선조 23년(1590년)에 착수하여 1592년(선조 25년)에 준공 하였다. 청도읍성은 고려때부터 있었는데 당시의 성은 석축과 토축을 혼합해서 쌓은 토성으로 성내에는 관아(官衙)와 객관, 유향소, 군기고, 근민당, 서역기, 작청(作廳)등의 건물이 있었다. 또한 누정(樓亭)으로는 청덕루, 청향루, 죽서루 등이 있었다고 한다.


선조때 황윤길이 통신사로 일본에 갔다와서 일본이 침입해 올 위험이 많다고 조정에 보고 하니 동래에서 서울에 이르는 연도에 가까운 주, 군에 소속된 성지를 일제히 수축 또는 신축하라는 왕명이 내렸다. 이때 청도 읍성도 오례산성, 철마산성과 같이 군수 김은휘에 의해 토성에 석축을 쌓아 올리고 여첩을 쌓고 성의 높이도 더 높혔다.

 

이 청도읍성은 주위가 1,570步이고 높이는 5자 5치, 女堞이 600자로 동서북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에 왜적이 읍성을 점령하고 내성을 소규모로 축성하였다 하나 지금은 내성도 없어지고 청도읍성은 8 ~ 900m의 성벽의 殘址(잔지)만 보일뿐 옛모습은 찾을 수 없다.


임진왜란때 읍성은 불타 버리고 동서 두문만 남아 있었던 것을 1669년 (현종 9년)에 군수 유비 (兪秘)가 서문을 건립하고 무회루(撫懷樓)라 하였다. 동문은 1708년(숙종 34년) 군수 임정(林淨)이 소건하고 捧日樓라 하였다. 이와 같이 장엄하던 읍성의 문루는 오랜 세월속에 허물어지고 지금은 동문의 흔적만 남아 있다...청도군 홈

 

 

위의 사진과 같은 곳이다. 2012년 현재 읍성은 거의 복원되어 있었다.

 

 

석빙고는 크게 변하지 않았다.

 

 

 

석빙고는 인위적으로 축조한 것으로 겨울철에 자연 얼음을 저장하였다가 봄 .여름 .가을까지 사용하였다. 청도읍성 동문 동상리 구릉에 위치하고 크기가 길이 14.75m, 넓이 5m 높이 4.4m로 화강암을 지하에서 아치모양으로 틀어 올려 쌓아 올리고 다듬은 돌로 홍예를 올린 후 그 위에 흙을 덮었다


석빙고의 입구는 서쪽에 있으며 입구의 출입문은 지금은 없어 졌고 계단을 따라 안으로 내려가게 되어있다. 바닥은 안으로 들어갈수록 경사가 졌으며, 흙을 단단하게 다진 바닥에 돌을 깔았다. 배수는 양쪽 가장자리에 있는 배수로의 경사를 따라 가운데 배수구에 모여 외부로 흘러나가게 되어 있다.


천정은 아치형으로 된 10개의 돌을 짜서 틀어 올려 4개의 보를 만들었다. 이 보위에다 거대한 판석을 덮어 천정을 만들었는데, 이들 개석은 거의 파괴 또는 없어지고 몇 개만이 앙상하게 남아있으며, 환기구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청도 석빙고는 조선 숙종39년(1713년) 2월 11일에 진사 박상고(進士 朴尙古)가 착공하여 같은 해 5월 5일에 준공했다. 빙고 비문에는 『전면 : 始於二月十一日至五月五日而訖盖役衆五千四百五十一皆一日赴役成石梯六百七役二十日石工十三治匠三木手一粮米五三石瓦功錢三百兩正鐵一千四百三十八斤口三百八十四石』『후면 : 癸巳五月初六日立 左監 衝黃亦鳳 進士 朴尙古 左色貢生 崔世哲 幼學 李義孝 都色貢生 朴以載 庫直 金千世 幼學     左色貢生 朴徽碩 右  李胃善 治 朴世  右 判官 金汝俊』로 기록되어 있어 축조당시 석공이 13명, 목수와 치공 등 연인원 6천74명 정철 1,438근이 소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청도 석빙고는 신라초기부터 있었다고 전해지며, 오산지에는  당초 청도읍성 북문밖에 있었는데, 토굴로 만들어 협소하고 허물어져 이곳에 다시 축조하였다고 하며, 삼국사기에도 신라 지증왕 때 얼음을 저장했다는 기록이 나타난다. 전국에 보존되고 있는 6기의 석빙고 중 가장 오래된 석빙고이며, 규모도 제일 큰 소중한 유산이다....청도군 홈

 

 

예전과 달리 청도 석빙고 주변은 정비가 되어 소공원 처럼 조성되있다. 그런데 석탑 옥개석을 뒤집어 놓았다. 옥에 티인가? 무성의인가?

 

 

 

석등 대좌. 도주관의 석불. 석탑 옥개석은 전시 장소가 청도읍성. 석빙고와 어울리지 않는다. 차라리 사찰로 옮기는 것도 검토하였으면 좋을 것 같다.  사람도, 자연도, 문화재도 제자리에 있을 때가 가장 아름답기 때문이다.

 

201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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