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청도군

청도...도주관.척화비.장연사지 석불

임병기(선과) 2012. 6. 9. 0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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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과 작은 사진은 2006년 글이며, 큰 사진은 2012년 4월에 촬영했다.

 

도주관...2006년

 

도주관은 공사가 한창이다. 道州는 청도의 옛지명이며 도주관은 객사건물이다. 일반적으로 객사는 정청을 중심으로 좌우 익랑을 갖춘 구조로 정청에는 왕을 상징하는 궐패를 걸어 놓고 고을원은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배례를 하였으며, 지방출장 온 중앙관리의 숙소로도 활용되었다.  일반적 정청 처럼 익랑보다 높게 지붕을 내었으며 정면 3칸이며, 좌측 익랑은 정면 6칸이며 우익랑도 대칭으로 조성중이다.

 

도주관... 2012년

 

도주관은 조선초기부터 있었으나, 서까래 등 목재가 썩어 내리는 등 노후하고 누추하여 향촌의 선비들이 중수할 것을 바라고 있었는데 삼족당 김대유(金大有)가 조선 中宗36년(1541년) 태수 안태고(安太古)에게 이를 재창해줄 것을 청원하고 소요당 박하담(朴河淡)이 설계도면을 완성하자 태수는 이 뜻을 받아드려 관찰사인 한사 이청(李淸)의 도움으로 착수하게 되었다.


목재는 운문에서 벌채하여 물길을 따라 옮기고 일선 임백령(林百齡) 관찰사의 힘을 받아 1543년(중종38년) 중창한 건물이다. 이는 조산대부 풍기군수 겸 춘추관편수관 이었던 상산 주세붕(周世鵬)이 쓴 중수기문에 기록되어있다. 현재는 정청과 우 객사만 남아 있고 한 동안 화양면사무소(華陽面事務所)로 사용하면서 바닥과 벽체를 개조한 것을 복원하였고 나머지 부분은 본래의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청도군청 

 

정청

익랑

익랑 

 

2006년 도주관 비림...2012년 다른 곳으로 옮긴듯 보이지 않았다.

 

방방곡곡 고을마다 넘쳐 나는 것이 선정비다. 그러면 어명으로 파견된 암햄어사는 수령들 공적조사로도 시간이 모자라지 않았을까?  백성들을 수탈하고, 가렴주구의 폭정을 펼친 원님들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과연 선정을 베풀고 떠난 사또를 그리며 세운 선정비는 저비림 속에서 찾을 수 있을런지...

 

 

 

2006년 청도 척화비

 

청도 척화비도 프랑스군 침입으로 야기된 병인양요와 미국군 침입으로 발발한 신미양요 후 대원군의 명에 의하여 전국에 세운 비의 하나다. 다른 지역의 비문과 같이  정면에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서양 오랑캐가 침입하는데 싸우지 않고 화해하는 것은 나라를 파는 것이다), 옆에는 "戒我萬年子孫 丙寅作 辛未立"( 자손만대에 경고하노라)가 새겨져 있으며 척화비의 비문을 지은 년대와, 세운 년대도 새겨져 있다.

 

 

2012년...도주관 밖에 옮겨 세웠다.

 

 

예전에 보지 못했던 불상이 도주관 한쪽에 누워 있다. 형태로 미루어 입불의 파불처럼 보였다. 어디서 뵌 분 같지 않은가? 아래 2006년 장연사지 답사기에 잠시 언급했던 옛님이다.

 

매전초교..장연사지 석불

 

불령사 전탑을 돌아서 매전초교 교정에 모셔진 님을 뵈었다.  얼굴, 몸, 수인이 심하게 망가졌지만, 긴 귀, 통견 법의의 불상이다.  장연사지 석불인데 무슨 연유로 옮겨진지 모르지만 미륵이 하생하는 그날은 모두의 고통, 번뇌가 소멸되어 순진무구한 어린아이 마음임을 암시하고 계시지는 않은지....

 

 

 

 

내기억 저편, 매전면 장연사지 입구 매전초교 교정 화단에 계시던 님으로 다가온다.  기왕 옮기려면 안태고향 장연사지로 옮겼으면 좋으련만, 어찌 도주관이란 말인가?

 

201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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