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청도군

청도...봉기리 삼층석탑

임병기(선과) 2012. 6. 6. 1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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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구 근교에 위치하여 여러번 찾을 기회가 있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사진 촬영은 어쩔수 없이 한다. 사진 기교도 제로이지만 사진 때문에 디테일을 놓친 경우가 종종있기 때문이다. 봉기리 답사기는 2006년 3월에 작성한 글이다. 글에는 문화재청 사진이 실려 삭제하고 2012년 4월의 사진을 올렸다.

 

 

우리애들이 초교생  때 우연히 봉기리 석탑을 들렸었다. 그때의 느낌이 아직도 가슴에 남아있어  봉기리 석탑은 언제나 설레임의 대상이다.  감은사지 쌍탑, 고선사지 석탑을 시원으로 하는 신라삼층탑은 팔세기 중엽이면 소위 삼층탑 패러다임을 완성하게 된다. 팔세기 중엽은 신라 불교미술이 극점에 도달하는 시기로 석탑도 초기의 거대함, 웅장함을 거쳐 절제되었으나 섬약하지 않은 아름다움을 완성하게 된다. 즉, 상하기단의 2탱주, 5개의 옥개석 받침, 몸돌 폭비율이 4:3:2, 2단의 몸돌 받침, 상기단 갑석 밑 부연을 갖추었다. 이시기에 조성한 탑이 다보탑, 석가탑, 국립박물관의 김천 갈항사지 쌍탑, 창녕 술정리 동탑이다.

 

이곳은 통일신라 불교전성기에 평지가람의 천정사지(天井寺地)또는 정전사지이다. 천정사는 국태민안의 기원전당으로 신라 법흥왕(514∼540년)이 전란을 피해 이 사찰에서 몽진하였다가 평정되었다하여 정전사(停戰寺)라 불리어 지기도 했다. 천정사의 3층 석탑은 쌍탑 가람이었으나 동탑은 1930년경 도괴되었고 서탑만 1935년 일제강점기부터 보물로 지정 관리되고 있으며 주변 마을이름을 탑동으로 쓰고 있다. 봉기리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3층 석탑으로 높이5.47m에 상륜부는 없어지고 기단부와 탑신부는 잘 보존되어 있으며 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충실하게 계승한 탑으로 하층기단의 지대석과 중석은 하나의 돌로 만들어 8석을 구성하였고, 지붕돌의 경사는 완만하며 각형과 활 모양의 호형이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상층기단 중석도 8석으로 구성하였으며 각 면에 우주와 탱주 2주를 새겼고 상대갑석은 4매 판석으로 덮었고 밑에는 부연이 있으며 위에는 경미한 경사가 있는 가운데 각형 2단의 굄이 있고 탑신부의 옥신과 옥개석이 각각 하나의 돌이고 각층 옥신에는 우주가 있다.

 

 

옥개석 처마 밑은 수평이고 받침 수는 층 5단이며 위에는 각형 2단의 옥신 받침이 각층에 표현되어 있다. 기단부의 부재 구성이 정연하고 기단의 탱주 수가 상하, 각 면 2주씩인 점 등 한국석탑의 초기양식이 잘 나타나 있으며, 기단이나 옥신의 조각수법에서 힘찬 박력이 나타나 있다.

 

 

석등 지대석. 예전에는 풍각초교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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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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