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부안군

부안...동문안 장승.당산

임병기(선과) 2012. 4. 29. 06: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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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안 당산

 

2004년 4월 21일 다녀온 이야기다.(물론 카메라도 없었다).서둘러 아침 식사를 마치고 오직 나 혼자만을 위해 건설된 듯한 착각이 들 정도로 한적한(?) 서해안 고속도로를 소 달구지를 몰고 가듯 느긋하게 달리며 풍광을 즐기는 중에 보견심 이모님의 전화가 왔다."운전 조심하고 아버지 잘 보살펴라는" 당부의 말씀을 하시며 함께 하지 못 함과 대접이 소홀했다고 몇 번이나 미안해 하신다.(당시 선친이 암투병 중이었다. 보견심 이모님은 우리 어머니와 같은 연세이시며 현재도 왕성하게 카페 활동중이시다)

이른 아침의 부안읍내도 이따금 등교길 학생들만 보일 뿐 시골 소읍의 여유로움이 물씬 풍겨 어머니 젖가슴을 닮은 우리의 산야처럼 푸근함으로 나를 맞이한다.지나가는 승용차를 세워 동문안 당산과 벅수 위치를 물었더니 차를 돌려 따라오라시며 앞장서서 안내하시고는 고마움을 표시할 기회도 주지 않고 갈 길을 제촉하시는 사람좋은 인상의 아저씨처럼 동문안할아버지, 할머니 벅수가 길을 마주하고 서 있다.(순전히 지도 한 장으로 답사 동선을 수립했었다)

울카페 회원들은 이제 익히 알겠지만 벅수는 호남지방에서만 일컽는 말로서 타지역에서는 장승이라고 알려져 있으며, 벅수가 재야권의 호칭이라면 장승은 제도권의 호칭이라 보아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장승이든 ,벅수든 후에는 민간의 기복신앙, 기자신앙,재액 방지,풍년기원,풍수비보 등의 다양한 민초들의 신앙의 대상이 되었지만 남녀의 구분은 후대사람 들의 식견이다.

할머니 벅수에는 하원당장군이란 글귀가 새겨져 있으며, 무서운 인상이며 안내문에 의하면 숙종 임금때 조성 된 것으로 기록되어 있어 우리나라 대부분의 장승들의 조성시기와 큰 차이가 없어 보이며맞은편의 할아버지 벅수는 상원주장군 명찰을 달고 제주도 돌하루방 같은 인상의 인자한 벅수다.

하원당장군, 상원주장군 이란 표식의 의미는 사대사상이 자리잡고 있는 것으로 잡귀,역신이 침입을 중국 장군의 힘을 빌려 예방해보겠다는 미약한 민초들의 소박한 바램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아도 될 것이다.

혼자서 벅수를 친견하고 있는 중에 할머니 한 분이 슬그머니 다가와서는 대구에서 왔다는 나의 말에 "뭘 볼게 있다고 멀리서 왔냐"라시며 할아버지 벅수 잘생겼죠 했더니 "누가 할아버지라고 하더냐"시며 구태여 구분을 하지 않으신다.또한 조금 떨어져 있는 솟대를 가리키며 밧줄로 보아서 금년에는 정월 보름에 동제를 올리지 않은 것같군요 라고 여쭈었더니 지금은 3년마다 동제를 올리신다고 하시어 이 곳에서도 젊은 사람들이 고향를 떠난 것을 쉽게 알 수있지만 우리의 민속이 역사의 장으로 사라지는 현실이 못내 아쉬웠다.[2004.04.21]

 

8년의 세월이 흐른 후 다시 찾은 당산. 주변이 정리되어 당산이 제자리를 찾은 듯한 느낌이었다. 예산과 주민 설득 노력 등 쉽지 않았을텐데 부안군 담당자들에게 갈채를 보내며 타 지자체에서도 타신지석으로 삼길 기대해 본다.

 

상원주장군 하원당장군

하원당장군

 

당산나무 동쪽에 서있는 돌장승이다. 장승을 이곳에서는 ‘벅수’라고도 하는데 몸체에 ‘하원당장군’이라 새겨진 여장승으로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며 질병과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 역할을 하고 있다. 마주보고 서 있는 남장승보다 큰 몸집으로 보통의 장승과 마찬가지로 부리부리한 두 눈이 튀어나와 있고, 뭉툭한 주먹코에 입을 벌리고 있어 마치 마을주변 악귀의 침입을 막으려는 듯 험상궂은 모습이다.

 

상원주장군

 

당산나무 서쪽에 위치한 돌장승이다. 장승을 이곳에서는 ‘벅수’라고도 하는데 몸체에 ‘상원주장군’이라 새겨진 남장승이다. 동쪽의 ‘하원당장군’과 더불어 주신인 당산을 보조하고, 마을의 풍요를 기원하며 질병과 액운을 막아주는 수호신의 역할을 하고 있다. 제주도 돌하루방을 연상시키듯 벙거지모양의 모자를 쓰고 있고, 부리부리한 두 눈이 튀어나와 있다. 커다란 주먹코와 귀가 있어 보통의 장승과 비슷한 모습이지만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는 점이 특이하다.


 


 

 

문화재청 설명문이다. 돌기둥과 돌장승 한 쌍으로 이루어진 당산이다. 마을신앙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당산나무 한 그루와 함께 마을의 수호신으로 받들어 지고 있다. 당산은 신이 있다고 믿고 섬기는 대상물을 의미하지만 이곳에서는 돌기둥만을 별도로 ‘당산’이라 부른다. 

마을에서는 2년마다(예전 답사시 할머니는 3년이라고 했다) 음력 정월보름에 당산제를 지낸다. 새끼를 꼬아 만든 동아줄로 줄다리기를 한 다음 그 줄을 돌기둥에 감아 놓은 후 제를 올린다. 동아줄을 돌기둥에 감는 것을 ‘옷입힌다’고 하는데, 마을 전체의 복을 기원하고 농사의 풍요를 바라는 염원이 담긴 의미로 신앙물을 인격화 함으로써 돌기둥을 동제의 주신으로 받들고 있음을 보여준다.

 

동문안당산의 주신으로 섬겨지는 돌기둥이다. 원래 당산은 신이 있다고 믿고 섬기는 대상물 전체를 의미하지만, 이 마을에서는 돌기둥만을 ‘당산’이라 부른다. 3.2m의 화강암 기둥으로 그 정상에 오리모양을 조각한 돌을 얹어 그 머리가 서북쪽을 향하도록 세웠다. 돌기둥에 오리를 올린 것은 오리가 하늘, 땅, 물을 활동영역으로 하고 있어 신과 인간을 연결해 주고, 벼농사를 주로 하는 농경마을에서 농경보조신의 역할을 하는 종교적 상징성이 표현된 것이다. 높은 돌기둥으로 되어 있다는 점에서 고창오거리당산과 비슷하지만 삿갓을 쓴 고창의 것과는 달리 정상에 오리가 올려져, 마치 돌로 만든 솟대와 같은 것이 특징이다.

마을의 번영과 풍요를 기원하는 당산제는 2년마다 정월보름 대낮부터 행해진다. 새끼를 꼬아 줄을 만들어 줄다리기를 한 다음, 돌기둥에 돌려 감은 후 제를 지내는데 이 풍속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이 마을의 당산은 솟대의 재료가 나무에서 돌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여주는 좋은 예라고 할 수 있다. [2012.03.12]

 

**자료는 문화재청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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