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포항시

포항...장기 척화비

임병기(선과) 2011. 12. 10. 09: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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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헌과 선정비림

 

작은 바닷가 장기면사무소 앞의 비림이 의아스럽게 생긱되겠지만은 장기는 지답현(只沓縣)으로 출발하여 신라 경덕왕 16년(757)에 기립현으로 개명되었다가 고려조 현종 9년(1018)부터 장기현으로 불렀다. 1011년 장기성을 쌓고 1290년 군량과 마초를 저장했으며 조선조 세종 21년(1439)에는 성을 다시 쌓고 수직군(水直軍)이 주둔하였다고 한다. 또한 장기는 조선조에 유배지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여기서 유배생활을 한 송시열. 정약용 등의 선비들로 인해 장기 주민들의 학문의 질을 높였다고 한다. 

 

 

대원군척화비의 원래 위치는 장기읍성 내에 있었던 것을 1951년 4월초에 장기(당시 지행면)지서 입구에서 찾아 현재 장기면사무소 정문좌측 도로변에 세워두었다가 1990. 12. 1 장기면사무소 정원에 이설하였다.

 

 

비문의 익히 잘 아는 내용으로 정면에 새겨져 있다.

洋夷侵犯 非戰則和 主和賣國 戒我萬年子孫丙寅作 辛未立(양이침범 비전즉화 주화매국 계아만년자손병인작 신미립)

 

 

근민당. 척화비 옆에 있는 장기현 관아 동헌이다. 근민近民은  민가근불가하民可近不可下로 늘 고을 주민들편에 있으며 절대 함부로 하지 않겠다는 목민관의 자세를 상징하는 의미 아닐까? 장기읍성에서 1922년 이건하여 장기면사무소로 이용하였으며 1960년 현 위치로 옮겼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에 민족 정신 말살정채의 일환으로 관아건물들이 훼손된 사례는 전국에 많이 알려져 있다.

2011.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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