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장수군

장수...타루비墮淚碑

임병기(선과) 2011. 8. 8.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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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루공원. 전북 장수長水 군 천천면 장판리 마을입구 도로변에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장수의 자연지리에 대하여 문외한이지만 우선 산고수장山高水長의 이미지로 장수군은 물과 관련이 있는 지명으로 보이며 천천天川은 높은 지대에 위치한 내를 생각하면 강의 발원지, 또는 상류를 떠올리게 한다. 이럴때 명쾌하게 설명해주는 사람이 옆에 있었으면 참 좋을텐데.욕심이지만 역사.건축.미술.인문지리.자연지리를 전공한 사람들과 답사 동선을 수립하여 함게 동행하고 싶다. 나의 역활? 마름이면 어떻고 머슴이면 어떠리!!!

 

장수하면 생각나는 인물은 누구나 황희 정승과 주논개를 우선 떠올리게 될 것이다. 하지만 장수에는 왜적에 맞서 향교를 지킨 향교지기 정경손을 기념하는 비각이 향교 앞에 있고, 현감을 따라 순직한 타루비의 주인공 백씨, 그리고 주논개를 장수 3절로 받들고 있어 그들의 신분이 다른 지역과 대비된다. 

 

 

정문을 들어서 좌측에 백씨의 비각이 있다. 비명은 순의리백씨타루추모비殉義吏白氏墮淚追慕碑이다. 즉 함께 따라죽은 의로운 아전 백씨 추모비이다. 타루비각에는 아전의 성씨 없이 長水殉義吏碑로 새겨져 있는 것을 보면 근자에 아전(관노?)의 성씨가 밝혀진 듯 하다.

 

 

자기가 모시던 현감이 비명횡사하자 “이는 주인을 잘못 모시어 죽게 한 것”이라며 주인을 따라 순사한  관노 백씨의의 충정을 후세에 남기기 위해 최근에 조성한 한글 비문이 가슴뭉클하게 한다.

 

 여기서 택도 아닌 설을 풀어 볼까? 흥미로 전개하는 내용이니 크게 의미부여는 않길 바란다. 조선시대가 어떤 사회인가? 과부가 열녀가 되기보다 재가하기가 더 어려운 시대상황이었다. 오늘 날 같으면 운전부주의로 법의 심판만 받고 출소하면 그만이지만 현감의 마부 백씨는 현감이 죽은 후 돌아 올 지탄과 사회적 질시, 계급의 한계를 극복하기가 무척 힘들 것을 예상하고 죽음을 선택한다. 그의 죽음을  집권층과 양반 계급 지방 유림들은 그들의 체제를 더욱 공고히 구축하고, 신분과 위상을 확고하게 구분할  절호의 기회로 삼아 백씨의 죽음을 의인義人으로 미화하게 되었던 것이다. 어??? 이야기가 오끼나와로 빠져버렸군. 아무런 근거없는 이야기니 혹 관계되는 분이 있으면 괘념치 말길 바란다.

 

타루각

 

과연 장수 현감과 관노 백씨와는 어떤 사고를 당했을까? 필림을 돌려보자.

 

"조선 숙종 4년(1678) 당시 장수현감 조종면이 전주감영에 가기 위해 말을 타고 천천면 장척마을 앞 바위 비탈을 지나는데, 길가 숲 속에서 졸고 있던 꿩이 요란한 말발굽소리에 놀라는 바람에 무심코 지나가던 조현감의 말도 놀라 한쪽발을 실족,절벽 아래의 배리소에 빠져 급류에 휩쓸려 현감이 목숨을 잃게되자 주인을 잃은 백씨는 자기가 잘못하여 현감이 죽었다고 통곡하며 손가락을 깨물어 혈서로 원한의 꿩과 말, 그리고 타루 두자를 바위 벽에 그려놓고 자기도 물에 뛰어들어 죽었다 한다."

 

 

1802년 장수현감 최수형이 주인에 대한 충성스런 마음을 널리 알리기 위하여 현지에 비를 세우고 타루비라 하였으며, 타루비를 세운지 80년이 지난 1881년 지방민과 장수리순의비를 타루비와 나란히 세웠다. 비문에 보면 배리의 성은 백씨로 구전된다고 했다. 1960년대까지도 혈서로 그린 검붉은 말과 꿩의 형상이 남아 있었다고 전한다."

 

타루는  '중국 진나라 양양진의 총독으로 선정을 베풀었던 양호(羊祜)가 죽은 후 양양의 백성들이 그를 사모하여 비를 세우고, 그 비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는 이야기에서 “비를 바라보면 반드시 눈물을 흘린다'는 의미라고 한다.

 

"참으로 기이한 것은 나라에 큰 이변이 생길 때는 타루비에서 눈물 같은 물이 흐른다는 것이다. 1910년 우리 나라가 일본에 합방됐을 때 사흘을 비에서 눈물이 흘렀다 하며 근자에는 1950년 6.25사변이 나기 얼마전에 여러 날을 비에서 눈물이 흘렀다는 것이다. 노인들을 "눈물 흘리는 충절의 비"가 두고 두고 나라의 앞날을 걱정해서 어려운 일을 미리미리 암시해 주는 진짜 충절의 비라고 하여 추앙하는 마음이 더욱 커진다고 한다."

 

상황을 묘사한 꿩. 말그림과  좌측에 타루애 글씨가 보인다.

 

답사를 마치고 문을 나설 때 금방 논에서 일하다가 오신 분으로 보이는 촌로가 "타루공원"을 왜 조성했는지 아느냐며 나의 정중한 거절에도 불구하고 설명을 강요한다. 직감적으로 타루비에 관해 무척 깊은 이해를 가진 분이며 자기가 최고라는 간접표현으로 들려 짧게(길게 알지도 못했지만) 언급했더니 그럼 그렇지라는 표정으로 청산유수로 이야기를 풀어 나간다.

"...도로개설 전 까지는 타루 글씨에 붉은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그 소沼를 원님소로 불렀다고" 마무리 한다. 설명 잘 들었다며고맙다고 인사드렸더니 흡족한 표정이 역력하다. 

 

요즘 유홍준 명지대 교수의 나의문화유산답사기6의 부제 인생도처유상수가 여러자리에서 회자되고 있지만 오래전부터 내가 떠벌리고 다니는 문구가 스쳐지나가더라.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必有我師!!!!!

 

 2011.07.25

***참고문헌:장수군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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