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북도/장수군

장수...양악탑

임병기(선과) 2011. 8. 6. 0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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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악저수지
 
오늘도 네비양이 난리부루수다. 참 고집도 센年!!! 계북면 양악리 산33번지 1996년 조성된 양악저수지 아래에 위치한다. 양악마을은 언제인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옛날 양촌고을의 고을터였다고 전해오며,  마을에는 동헌터, 옥터, 향교터였다는 자리가 있다고 한다. 답사보다 댐이 무너지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이 내내 엄습한다. ㅎㅎ 우리 집안 내력이다. 한국동란시에 조부님의 일화, 오공시절 선친의 일화를 충실하게 이어받아 선대유업을 찬란히 빛내고 있는 후손 아닐까?
 
 
수방사터로 전하는 양악리 양악저수지 아래에 숲속에 위치한 오층탑으로 잦은 이건으로 원형은 손상되고 부재도 망실되었다.   절집의 흔적은 찾을 수 없으나 온갖 억측을 유발시키는 물가의 정자가 묘한 대비를 이룬다.
 
용연정. 정자와 석탑 부조화인 듯하면서도 어우린다. 용연정은 양악리에 살던 정존성이 소요하던 곳에 손자 정기수가 세운 정자로, 정면 3칸·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이다. 전면 중앙칸에 용연정이라는 현판이 걸려 있고, 내부 벽면에 한말의 우국지사인 연재 송병선이 지은 기문과 심석 최병심이 지은 제액이 걸려 있다.
 
양악리 입구에 정인승 기념관 안내문이 보였지만 선생이 누구인지 도무지 기억을 되살릴 수 없었다. 양악탑을 답사 할 분들에게 국어학자이며 독립운동가인 선생의 이력을 알려드리니 꼭 기념관을 돌아보길 권한다. 
 
건재 정인승
1897∼1986. 국어학자. 본관은 동래(東萊). 호는 건재(健齋). 전라북도 장수출신. 아버지는 상조(相朝)이며, 어머니는 송성녀(宋姓女)이다. 1925년 3월 연희전문학교(延禧專門學校) 문과를 졸업하였으며, 1962년 중앙대학교와 1975년 연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1925년 4월부터 1935년 8월까지 전라북도 고창고등보통학교 교사로 근무하였다.

1936년 9월부터 1957년 10월까지 한글학회 《큰사전》(전 6권)편찬을 주재하여 완간하였다.사전 편찬 중이던 1942년 10월 1일 이른바 조선어학회사건으로 붙잡혀 2년의 실형선고를 받고 함흥형무소에서 복역하다, 광복으로 1945년 8월 17일 출옥하였다.

그 뒤 1952년 4월부터 1954년 4월까지 전북대학교 교수 및 총장직무대리, 1952년 4월부터 1961년 3월까지 중앙대학교 교수로 근무하였으며 교무처장을 역임하였다. 1961년 2월부터 그해 9월까지 전북대학교 총장, 1964년 3월부터 1984년 8월까지 건국대학교 교수 및 대우교수로 재직하였다.

1966∼1981년까지 학술원 회원(국어학), 1981∼1986년까지 학술원 원로회원, 1974∼1986년까지 한글학회 명예이사(학술)를 지냈다.포상관계로는 《큰사전》 편찬공로상(1957)·국어운동 특별공로상(1957)·학술원공로상(1959)·건국공로훈장(1962)·국민훈장 모란장(1970) 등을 받았다.

저서로는 《표준중등말본》(1949, 어문각)·《표준중등말본》(1956, 신구문화사)·《표준고등말본》(1956, 신구문화사) 등 9권이 있으며, 국어학관계의 논문으로 〈사전편찬에 관한 전반적인 문제〉(한글 36, 1936)·〈모음상대법칙과 자음가세법칙〉(한글 60, 1938) 등 10여편이 있고, 그밖의 글로 〈눈의 글과 귀의 글〉 등 40여 편이 있다.

문법 관계에 있어 ‘이다’를 풀이자리토씨〔敍述格助詞〕로 처리한 것은 특기할 만하다.
 
 
전라북도유형문화재 제21호.탑은 방형기단위에 탑신을 올렸다. 1층 몸돌은 상촉하관이 뚜렷하며,  2층 이상의 몸돌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2층 몸돌에만 양우주가 표현되어 있고 2층 이상의 지붕돌은 모두 위층의 몸돌과 한 돌로 되어있다. 1층 지붕돌을 제외한 나머지 지붕돌에는 층급은 4단이며, 5층 지붕돌이 없어진 채 복발(?)만 남아 있다. 고려후기 작품으로 추정된다.
 
 
2층 이상의 지붕돌은 위층 몸돌과 한 돌로 드문 경우에 속하며 몸돌 윗부분을 줄여 조성하여 상승감을 강조하고 있다. 그런데 옥개받침이 3개인가? 모든 자료에 3개로 표기되어 황당하다 분명 4개 아닌가?
 
 
양악리에서 물을 따라 계곡으로 오르면 토옥동 입구에 계단식으로 된 논이 있는데, 원래 논 가운데 있었다. 그나저나 문화재청 자료에는 수(壽)방사터로 나오며 다른 자료에는 심방사(寺)로 표기되어 헷갈린다. 일견보아서 누군가가 자료를 옮기면서 수壽와 심尋을 명확하게 구분하지 못한 오류로 보인다.
 
 
사진만 찍고 미쳐 비명은 확인하지 못했다. 용연정과 관련 있는 비석으로 판단된다. 비록 한적하고 찾는 사람 적은 폐사지의 탑이지만 미미한 오류도 수정하였으면 좋겠다. 뜨거운 폭염 아래서 양악댐 보수 공사에 열중인 작업자들 눈에는 이곳 오지까
지 굴러 들어온 한가한 놈의 유람으로 비쳐지지 않았는지 소심한 A형은 답사 내내 미안함을 감출 수 없었다.
 
 2011.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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