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산청군

산청...대성산 정취암

임병기(선과) 2011. 3. 31. 07: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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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바람에 길을 물어 찾아 든 절집이었다. 갓 시집온 새색시 닮은 길을 걸어 깊은 정이 절로 우러나는 넉넉한 우리 할머니 같은 진입로, 그 벼랑위에 말없이 천년 풍상을 지켜온 절집 정취암. 차라리 情趣庵이었으면 좋겠다. 절집은 높은 곳에서 자리하면서도 거만스럽거나 위세 부리지 않고 산아랫마을 민초들을 보살펴주면서 터를 지켜오고 있다.

 

 

정취암은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직후인 686년(신문왕 6)에 창건 되었다. 동해에서 장륙금신(丈六金身) 아미타불이 솟아올라 두 줄기 서광을 발하니 한줄기는 금강산을 비추고 또 한 줄기는 대성산을 비추었다. 이때 의상조사(義相祖師)가 두 줄기 서광을 쫓아 금강산에는 원통암을 세우고 바로 이곳 대성산에 정취암을 세웠다고 한다.

 

858년(헌안왕 2) 범일(梵日) 조사가 강원도 양양 낙산사(洛山寺)에 봉안했던 정취(正趣) 보살상을, 고려시대인 1254년(고종 41)에 명주성(溟州城)이 몽고병에 함락될 때 경상북도 경주 기림사(祇林寺) 주지 각유(覺猷) 대사가 정취보살상을 왕실의 창고인 어부(御府)에 모실 것을 건의하어 야별초(夜別抄) 열 명과 절종․걸승 두 스님에게 명하여 어부에 모시게 되었다.

 

1354년(공민왕 3)에 화경(華敬)․경신(景信) 두 거사가 정취암을 중건 한 후 어부에 봉안되어 있던 정취보살상을 정취암으로 옮겨 모셨다. 그러나 그 뒤 전각들이 낡고 허물어지기를 거듭하니 고려 충정왕 3년에서 공민왕 3년에 화경․경신 두 거사가 사재를 내고 또 화주(化主)를 구하여 중수하였다.

 

조선에 들어와서는 1652년(효종 3) 4월 26일 불이 나 모든 전각이 불타고 정취보살상도 소실되어 창건 이래 최대의 비운을 맞았다. 이듬해 봉성 치헌(鳳城致憲) 스님이 중건에 착수하여 9년 만에 복원 하였으며, 정취보살상도 재현하였다. 치헌 스님은 이후 평생을 정취암에 주석하다가 11월 20일에 입적하였으므로, 정취암에서는 이 날을 개산일(開山日)로 정하여 재를 올리고 있다.

 

 

바위위에 둥지를 틀고 있다. 그런데도 안온하기 그지 없는 느낌이다. 과연 이런 절집이 얼마나 남았을까? 주지 수완스님은 정취암을 - "기암절벽에 매달린 정취암, 산천이 한 눈에 다 들어오고, 골짜기에 흰구름 피어 오르는 곳, 문을 두드리면, 세상에서 찌든 마음 맑게 씻긴다"- 노래 했다.

 

 

상서러운 기운이 감돌아 예로부터 소금강(小金剛)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유년시절 작은 개울을 건너 산모룽이 돌아가면 멀리 보이던 외갓집 같다. 툇마루에 나와 왕버들 늘어선 방천길을 달려오는 외손자를 향해 손을 흔들던 외할머니 처럼 법당 문을 열고 누군가가 마중 나올 듯하다. 

 

 원통보전

 

정취암 원통보전에 봉안된 불상으로 연꽃무늬로 장식된 대좌 위에 앉아있는 관음보살 좌상이다. 이 불상은 불신과 엎어놓은 연꽃무늬가 새겨진 낮은 대좌가 하나의 목재로 조성되었다. 자세는 등을 세우고 머리부분을 약간 앞으로 내민 모습의 가부좌를 하고 있다. 

 

 

머리에는 보관을 쓰고 있는데 보관은 중앙에 큰 화불(化佛)과 앞뒤로 불꽃무늬 장식이 달려 있으나, 후대에 따로 만들어 부착한 것으로 추정된다. 얼굴은 네모반듯하며 턱이 둥근 형태이고 가늘고 긴 눈 완만한 콧등, 입술 양끝에 양감을 주어 미소를 머금은 모습 등이 부드러운 인상을 준다. 짧은 목에는 세 개의 주름인 삼도(三道)를 얕게 표현하였다.

 

옷주름 선은 대체적으로 간략한데 반가부좌하여 드러난 오른발 밑으로 보이는 군의 자락을 종아리와 평행하게 드리운 것이 특징적이다. 규모는 50cm 정도의 크기로 안정감이 있고 단아한 인상을 주는 작품으로 조선후기에 제작된 작품으로 추정된다. 현재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314호로 지정되어 있다.

 

 

정취보살.극락, 또는 해탈의 길로 빨리 들어서는 길을, 그 방법을 일러주는 보살이다.

 

 

산스크리트 명은 아난야가민(Ananyagamin)이다. 안이란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이다. 안야란‘그 밖에’‘~과는 다른’이라는 뜻이며 가민은 가다라는 동사의 변화태로 ‘안야가민’하면 다른곳으로 간다는 말이 된다.  결국 이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에 안이 결합되어 다른 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뜻으로 보면 좋다.

 

 

대세지보살이 지혜의 힘으로 염불 수행자들을 극락정토로 향하게 하는 흔들림 없는 힘을 상징한다면, 지금 말하는 정취보살은 극락, 또는 해탈의 길로 빨리 들어서는 길을, 그 방법을 일러주는 보살이다. 어떻게 하면 빨리 해탈세계에 이를 수 있을까? 너무나도 쉽게, 그리고 간편하면서도 빨리 원하는 것을 얻고자 하는 현대인들에게 이 보살은 어떠한 가르침을 주고 있는가?

 

 

그 해답은 이 분의 이름에서 주어지고 있다. 이 보살의 산스크리트 명은 아난야가민(Ananyagamin)이다. 여기서 '안'(an)이란 부정을 뜻하는 접두사이다. '안야'란 '그 밖에' ' - 과는 다른' 이라는 뜻이며, '가민'은 가다라는 동사의 변화태로, '안야가민' 하면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이 된다.

 

 

결국 이 다른 곳으로 간다는 말에 부정의 접두사 '안'이 결합되어 다는 곳으로 가지 않는다는 의미를 만들어낸다. 다른 데로, 다른 길로 가지 않는다. 길 아닌 길로 가지 않는다. 뭐 그런 뜻으로 보면 좋다. 그러니까 뚜렷한 하나의 목표를 정해두고 그곳을 향해서 한 눈 팔지 않고 묵묵히 걸어간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이행(無異行)이며 정취(正趣)라 한역했던 것이다.

 

자, 이제는 해탈의 길로 빨리 이르는 길이란 어디 머뭇하거나 두리번거림이 없이 목표를 향해 꾸준히 걸어가는 것이란 해답이 나왔다.

 

 

『화엄경』 「입법계품」에 그 특징이 잘 설해져 있다. 거기서 29번째로 선지식으로 이 정취보살이 등장한다. 선재(善財)동자가 어떻게 보살의 길을 갈 것인가를 묻자, 그가 대답한다.

 

 

'선남자여, 나는 보살의 해탈을 얻었으니 이름하여 보문속질행해탈(普門速疾行解脫)이다.'

 

 

보문속질행해탈! 이것을 해탈로 향하는 넓고 빠른 길로 해석해 보자. 그런데 사실 그 후에 연결되는 문장을 보면 이에 대한 구체적인 설명이 없다. 단지 선재 동자가 어느 부처님으로부터 그러한 가르침을 얻었으며 떠나온 세계와, 그 세계까지의 거리, 거기에 이르는 시간 등을 묻자, 그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그것은 아무나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하면서 이렇게 말한다.

 

 

'오로지 용맹 정진하여 물러서지 않고 겁이 없는 보살들, 선근이 구족하고 뜻이 청정하여 보살의 근기를 얻고 지혜의 눈이 있는 이라야 듣고 지니고 알고 말할 수 있다.'

 

 

여기서 용맹정진하고 물러서지 않는 겁 없는 보살이란 과연 누구를 말함인가. 바로 다른 데 한 눈을 팔지 않고 꾸준히 목표로 삼은 그곳으로 묵묵히 그리고 힘차게 걸어가는 사람이 아닌가.  그런 사람은 사실 어떠한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물러서거나 겁먹지 않는다. 아 저기 저 편한 길로 갈 걸 하면서 후회하거나 머뭇거리지 않는다. 그렇게 다른 길로 가지 않기에 무이행이요 뜻한 바 오로지 그 길로 가기 때문에 정취보살이라 했을 것이다.

 

 

다시 보자. 선재가 그런 말씀에 따라 행하겠노라고 하자 정취보살은 자신은 동방 묘장(妙藏)세계의 보승생(普勝生) 부처님으로부터 왔노라고 하면서, 거기로부터 떠난 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오래되었으며, 한 생각 속에 말 할 수 없는 많은 길과 그 한 걸음마다 말 할 수 없는 부처님 세계를 지나면서 부처님께 위없는 마음으로 공양하면서 동시에 수많은 중생들을 구제했노라고 한다. 그렇게 동방, 서방, 남방, 북방, 그리고 상 하방에서 그와 같이 하여 보문속지행해탈을 얻고 그 결과 모든 곳에 빨리 다다른다고 했다.

 

 

위없는 마음으로 부처님께 공양한다는 것은 깨달음의 길로 들어서는 지혜를 추구하는 길이요, 중생을 구원한다는 것은 바로 하화중생이다. 바로 보살의 행인 것이다. 그럴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숫한 보살행을 한 결과 보문속질행 해탈을 얻었으니, 사실 그 빠르다는 말은 결국 요즘 말하는 그런 인스턴트식 스피드가 아님은 말할 나위가 없다.  

 

 

산신각 앞 낮은 담장 아래로 펼쳐진 조망. 산청 9경중 8경이라고 했다.  시원함 보다는 고독, 적막 그 나락에 빠져 별유천지 느낌이었다면 오버인가?

 

 

 

적멸보궁처럼 산신각을 유리창으로 개방하고 산신탱이 바라보이게 배치한 유례없는 구조이다. 옳고 그름의 판단은 내몫이 아니기에 파격이라는 표현도 조심스럽다.

 

 

1833년(순조 33)에 제작된 것으로 가로, 세로가 각 150cm 크기다. 산신이 호랑이를 타고 행차 하는 것을 협시동자가 받들고 있는 형상을 그린 것으로 그림의 주제는 불교적이라기보다 오히려 토속신앙을 표현 할 것이다. 전통적인 토속신앙과 불교의 혼합을 잘 보여주는 그림이다. 현재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243호로 지정되어 있다.

 

 

 

그위에 다시 신신을 모셨으니...

 

 

산사에서...곽도경 

 

둔철산 정취암에는

비 내리는 밤에도 별이 뜬다

절집 흙담에 기대어

세상을 보면

마을을 삼킨 어둠이

초롱초롱 별들을 토해낸다 

 

정취암에서는

거꾸로 매달려 보지 않아도

산 아래 세상이 전부 하늘이다

하늘보다 더 높은 곳에 서서

아득히 먼 밤하늘 내려다보면

전갈자리

큰곰자리

물병자리

백조자리

밤새 잠 못 들고 깜박이다가

우우우

새끼 잃은 어미노루 울음소리와 함께

새벽 예불에 든다

나무정취보살마하살

나무정취보살마하살

 

2011.02.19

***전통사찰 관광정보를 참조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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