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남도/산청군

산청...지리산 대원사 다층탑

임병기(선과) 2011. 3. 2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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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2001년 봄 / 수정...2011년 2월 / 사진...2011년 2월

 

 

2001년 우리 아이들과 다녀온 기록을 가져 온다.

내원사를 나오면서 맘의 갈등이 심하다. 산속 깊이 자리 잡은 여느 절집도 마찬가지지만 대원사는 계곡을 곁에 두고 물소리와 동행하여야만 참맛을 알 수 있으련만 아이들은 아니 내가 더욱 문명의 이기를 향유하고픈 맘이 더 크기에 잠시 오락가락 했지만, 벌써 승용차는 국립공원 매표소에 앞에 멈추어 선다. 내원사 입장시 구입했던 지리산 국립공원 입장표를 제시(하루 동안 유효함)하고 죄스러움에 애써 계곡으로 눈을 두지 못하고 봉상루 앞 공사가 한창인 주차장에 이른다.

 

 

설악, 금강산이 바위산이라 아버지 산이며 양의 기질이라면 지리산은 흙이 많은 토산이며 음이고 어머니 산이 아닌가. 그래서인지 지리산은 민족의 비극 한가운데 늘 앉아 있고 이태의 남부군 이병주의 지리산 등 많은 문학의 소재로 남아 있다. 해방, 6.25 전후 강대국 패권주의의 희생물, 이념의 대립, 사상의 희생자인 많은 빨치산 들이 마지막으로 찾아 간 곳이 지리산이었다는 것은 어머니의 포근한 가슴을 더듬고 싶어서 라고 생각하는 나의 논리는 억지고 비약일까?

여기에 지리산이 영산이며 어머니 산으로 여기는 “천왕봉 성모상”에 대해 돌배게에서 출판한 지리산자락에서 발췌해 옮긴다.
“지리산 기운을 관할하고 나라와 백성의 안녕을 염원하는 성모(천왕할머니, 마야부인, 마고부인 이라고도 불린다.) 석상이 지리산 국립공원 중산리 매표소 부근의 천왕사에 있다.


삼국유사에서는 신라 박혁거세 어머니라 하고 제왕운기 에서는 태조 왕건의 어머니를 산신으로 봉안한 것이라 했다. 시간이 흐름에 따라 건국신화에 불교신앙과 민속신앙이 뒤엉켜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게 된 성모상이지만 그것은 지리산이 우리 민족에게 얼마나 성역화 된 공간임을 잘 보여준다.“

 

 

어머니 산에 비구니 절집 대원사는 석남사, 수덕사 견성암(?), 청암사, 운문사등과 함께 비구니 참선 도량 으로 손꼽히고 있으며 다른 비구니 가람과 마찬가지로 티끌 하나 보이지 않는 정갈한 도량이다. 봉상루 누하를 올라서면 이국적인 파초가 눈에 들어오는 좁은 월대위에 대웅전 원통전, 응향각이 일자 배치로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다.

 

좌우에 요사와 범종각 뒤켠의 산왕각이 최근에 조성된 기왓골 탓인지 고색창연한 멋이야 없지만 지붕선, 처마선의 맛스러움을 만끽할 수 있다. 특히 관음을 모신 원통전 지붕의 뜰로 향한 팔작지붕의 합각은 우리네 건축의 아름다움이 아닐 수 없다.

오늘도 먼 발치에서 바라보아야하지만, 대원사에서 빠뜨릴 수 없는 답사의 즐거움은 내원사 석탑과 같이 붉은 색을 띠고 있는 구층 다층탑이다. 신라시대 탑이라 하나 훤칠한 팔등신의 서양미를 갖추고 1층 탑신 모서리 기둥 자리에 석인상이 조각된 모습이 특이한 미스 고려라고 난 느껴진다. “예전에 나라에 큰 경사가 있으면 탑에 서광이 비치고 향내가 진동하였다는데” 언제쯤 지리산 자락, 아니 우리나라를 다시 한번 향내로 진동시킬 수 있을지...2001년 봄

 

 

사군자. 

 

 

다산.풍요를 상징하는 그림들

 

 

다층탑. 역시 출입금지 푯말이 가로막은 담장 너머 선원에 있다. 댓돌위에 하얀고무신은 놓여 있는 종무소를 향해. 스님을 불렀지만 허공에 맴돈다. 모두들 포행중이신가? 참으로 인연이 닿질 않는다. 그렇다고 월담할 자신은 없다. 또다시 멀리서 바라보고 훗날을 기약해야 했다.


대원사 다층석탑 ..문화재청
 

646년(선덕여왕 15) 자장 율사가 중국에서 이운해 온 부처님 사리를 봉안하기 위해 세웠다. 천 년이 넘는 세월 속에 탑신이 기울고 하여 조선시대에 중건되었고, 최근에는 1972년에 보수되었다. 현재 보물 제1112호로 지정되어 있다.  탑의 양식은 이중기단 위에 옥개석이 8개 놓여 있고, 상층 기단 네 면에 풍탁(風鐸)이 달려 있다. 상륜부에는 복발과 찰주가 있다. 전제 높이 660㎝다.

 

조선시대에 1724년(경종 4) 태흠 선사가, 그리고 1784년(정조 8) 옥인 선사가 각각 수리하면서 사리 72과를 얻었는데, 큰 것은 녹두알만 하고 작은 것은 기장알만 한데 오색이 영롱하다고 한다. 근래에 탑을 다시 정돈하면서 3층, 5층, 7층에 나누어 봉안하였다.『조선불교통사』「불조유골동래설」에 지리산에 3대탑이 있으니, 대원사 탑이 동탑이요, 법계사 탑이 중탑이며, 구례 화엄사 삼층석탑이 서탑인데 1년에 두 차례씩 세 탑에서 각각 나온 서광(瑞光)이 허공에서 만나 오색무지개 빛을 비춘다는 기록이 있다. 이는 곧 불사리가 한 몸이라는 동근일체(同根一體)요, 지리산 전체가 불신(佛身)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대원사 다층석탑...문화재청
 

기단의 위층은 이 탑에서 가장 주목되는 부분으로 모서리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기는 대신 인물상(人物像)을 두었고, 4면에 사천왕상(四天王像)을 새겨 놓았다.

 

 

그대와의 인연

옷깃만 스쳐도 인연은 인연입니다.
윤회나 환생을 믿지 않더라도

소중하지 않은 인연은 없지요.

 

처음엔 사소하여 잘 알아보지 못할 뿐,

이 사소함이야말로 존재의 자궁 같은 것.
블랙홀이나 미로일 수도 있지만

바로 이곳에서 꽃이 피고 새가 웁니다.

 

그렇다면 최소한 65억 분의 1의 확률로

만난 그대와의 인연,
그 얼마나 섬뜩할 정도로 소중한지요.

- 이원규의《지리산 편지》중에서 -

 

2011.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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