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삼척시

삼척...공양왕릉

임병기(선과) 2010. 11. 1. 0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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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기념물 제71호로 지정된 이 무덤은 일명 궁촌왕릉(宮村王陵)으로 불리고 있으며, 궁촌리 추천 고돌재(고돌치)의 동편에 위치한다. 삼척에서 남으로 약 16km 정도 가면 동막리를 지나 사래재라는 나지막한 고개를 넘어가면서 바다 쪽을 건너다보면 큰 소나무가 외로이 서 있고 그곳에 석축굽을 돌린 큰 무덤이 보이고 그 옆과 앞에 작은 무덤이 2기 보인다. 이 분묘들은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과 그의 아들 왕석, 왕우 등 3부자 무덤으로 전해지고 있다.

 

공양왕 4년 7월에 이성계가 즉위하고 8월에 전왕을 폐하여 공양군으로 봉하고 강원도 원주로 보내어 감시하다가 다시 왕과 장자인 왕석과 차자인 왕우의 3부자를 간성으로 옮겼으나, 역시 불안하여 태조 3년(1394) 3월 14일에 그 3부자를 삼척군 근덕면 궁촌리로 귀양지를 옮겼다가 한달 뒤인 4월 17일에 그들을 모두 죽였다.

 

 

현재 궁촌 뒷재인 사랫재(살해재의 음전으로 추측)와 마리방(말을 기르던 곳)이란 지명, 그리고 궁촌이라는 마을명과 궁터라는 지명 등은 공양왕 및 그의 자식들과 깊이 관련된 지명으로 추측된다. 공양왕이 이곳에 귀양와서 죽어 묻혔던 것으로 전해지나, 그 후 경기도 고양군 식사리(속칭 언침) 대자산으로 이묘해 갔다고도 한다. 현재 그곳에는 공양왕릉과 왕비릉이 사적 제191호로 지정되어 있다.

 

세종 3년(1421) 1월 13일에 공양왕의 왕녀(단양군 이성범의 처)가 임금에게 상소하여 아버지를 공양왕으로 어머니를 왕비로 추봉하고 공양왕릉을 정릉(定陵)으로 정하였다는 기록이 전한다. 헌종 3년(1837) 정유년 가을에 삼척 부사 이규헌이 개축하였으며, 1977년 당시 삼척 군수와 근덕면장의 노력으로 묘소들이 개축·보수되어 새롭게 단장되었으며, 이 묘소의 제향은 근덕면 봉찬회에서 매년3월에 택일하여 봉제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 의하면, 고려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恭讓王)은 1392년 7월 이성계에게 왕위를 양위하고 그해 8월 공양군으로 강등된 채 강원도 원주로 추방되었다가 다시 간성으로 옮겨 집니다. 조선왕조 개국 1년 후인 1394년 3월 14일 공양왕은 왕세자 석(奭)과 둘째왕자 우(瑀)와 함께 삼척(궁촌리)으로 옮겨지고, 이 때 동래현령 김가행(金可行)과 동해안 염장관(소금생산 감독관) 박중질(朴仲質) 등과 함께 삼척 울진지역의 인사들이 공양왕 복위운동을 벌이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공양왕을 추앙하는 고려의 유생들과 군사들이 각지에서 궁촌리로 모여 들었고, 그 세력은 점점 커졌으나 거사를 일으키기 전에 관군에 의해 진압되고, 공양왕은 삼척으로 유배온지 한달 뒤인 4월 17일 두 아들과 함께 역모죄로 살해됩니다. 왕명을 받든 사형집행 파견관은 중추원부사 정남진(鄭南晉)과 형조의랑 함부림(咸傅霖)이었으며, 처형방법은 교살(絞殺) 즉 목을 졸라 죽였고, 처형장소는 근덕면 궁촌리 입구의 살해재였습니다.

 

 

글 출처:삼척시 홈 페이지                                    2010.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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