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고성군

고성...금수리 석탑

임병기(선과) 2010. 10. 12.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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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답사 동선에는 포함되지 않았던 누들스가 들린다는 탑이 궁금해 전화를 걸어도 신호음만 들린다. 몇번의 시도 끝에 통활 마치고 건봉사를 되돌아 간성읍내서 만나 탑 입구까지 안내 받은 후 누들스와 헤어졌다. 좁은 외통수 들길. 비는 줄기차게 퍼붓는다.

 

 

 

길이 끝나는 지점. 암자 같은 집 한 채. 인기척에도 인적은 없어 불안감 마져 엄습했다. 뒤란 같은 길을 돌아서면집 뒤 밭 한 켠 그자리에 천년 세월을 간직한 5층 탑이 자리하고 있다. 마을 주민들이 걸어둔 등. 이세상 어느 절집 연등 보다 아름답고 귀한 공양이 아닐 수 없다.

 

 

비에 젖고 있는 연등, 이런 기념비를 세운 금수리 주민, 참 아름다운 정경이다. 관청에 근무하시는 님들이 배워야 할 일이다. 국민의 혈세를 낭비하여 선진 국가 방문이라는 허울 좋은 견학의 산물이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근무지의 문화재 위치를 인식 하지 못하는 것은 이제 부끄러운 줄 알아야 한다. 선심성,전시성 축제를 비롯한 행사는 지향하고 요소요소에 지정,비정정 문화재 이정표, 안내문 설치는  예산 타령 그만하고 선결되어야할 지자체의 과제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몸돌에 불상인가?

 

왜인지 가슴이 막막해 온다.

 

 

이리라도 지켜주니 고마웁지 않을 수 있겠는가?

 

이제

 

많은 우리님들이 찾아 올 겁니다.

 

 

고성문화원 자료를 보자.

 

지금도 성주변에 군사시설 흔적이 어지럽게 남아 있다.   이산 밑에는 아주 옛날 수타사(壽陀寺=水陀寺)라는 절이 있었는데 이 절에 빈대가 너무 많아 절의 기둥이 빈대로 엉켜붙어 있어 승려들이 견디다 못해 절에 불을 지르고 홍천으로 이사하였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고려말엽 공양왕이 1392년 7월 14일 이성계가 왕위에 오르자 공양군(恭讓君)으로 강등되에 원주로 추방된 뒤 다시 간성으로 피하여 수타사에서 2년동안 있다가 1394년(太祖 3년) 삼척군 근덕면 궁촌리로 재유배 되었다고 한다. 일부 농경지로 변해 버린 수타사지에는 낡은 석탑만이 세월의 무상함을 홀로 지키고 있다.

 

이탑의 정확한 명칭은 알 수 없으나 4층 옥계석까지 남아 있는 것으로 보아 본래는 단층기단 위에 5층 탑신을 을
린 평면 방형의 5층 석탑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에 대해서는「조선보물고적조사자료」에 언급되어 있다

 

 

수타사와 관련하여 고성문화원 홈페이지에는 아래와 같은 전설을 전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설명과 달리 남아선호 보다는 불교배척으로 생각되는 것은 왜일까?

 

고성산(高城山)은 고성군 간성읍 탑동리와 金水里산 394번지에 위치한 해발 350여 미터의 구릉으로 산꼭대기
엔 성(城)을 쌓아 난(�)을 방어하기 위한 흔적의 산성이 현존해 있고 산밑에는 수타사라는 절터가 있는데 잡초속에 석탑만이 하나 남아 있을 뿐이다. 탑동리 마을에는 옛부터 「고성산과 수타사」에 대한 전설이 구전(口傳)으로 전해 내려오고 있는데 그 내용이 관헌들의 현정(賢政)과 우리의 뿌리깊은 남아선호관과 무관하지 않은 얘기이다.

때는 조선 중엽, 고성군수로 갓부임한 양봉래는 문란한 관(官)의 기강을 바로 잡고 현정(賢政)을 베풀기를 게을리 하지 않은 명관이었다. 어느날 마을에 때아닌 돌개바람이 불기 시작하는데 그 위세가 대단할 뿐 아니라 사흘간이나 계속되는 바람에 백성들은 해괴한 일이라며수근거렸다. 양군수의 근심이 또한 커서 밤잠을 설칠정도였다. 그날도 양군수는 윙윙거리는 바람 소리를 큰걱정스레 듣고 있었다. 바깥동정을 살펴볼 마음으로 현관을 나서는데돌개바람이 바로 양군수의 얼굴을 향해 곧장 부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참으로 희한한 일이었다. 이상스레 생긴 나뭇잎이 양군수의 발밑에 떨어지더니 순간, 바람은 언제 불었던가 싶게, 잠이 든것이었다. 

 

그는 즉시 관헌들을 모아 놓고 물었다. 「이 나뭇잎을 본적이 있는가?」「모릅니다. 사또」「어떤 나무에서 떨어진 잎인고?」「처음 보는 나뭇잎니다. 사또」「이 나뭇잎이 어디서 왔는지 알아오는자에겐 후한 상을 내리겠노라」그러자 젊은 관헌 하나가 나섰다「소인이 알아오겠습니다.」젊은 관헌은 한양으로 올라가 저자 거리에 나뭇잎을 펴놓고 않았다. 그러기를 며칠, 머리가 반백이나 된 장년 한명이 발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이 나무는 우리나라에 4그루 밖에 없는 희귀목이요, 경복궁, 불국사, 유점사, 수타사가 그 곳인데 이 나뭇잎은 바로 강원도 高城山 수타사(壽陀寺)뒤에 있는 나무에서 떨어진 것이오」그 말을 남긴채 그는 어디론가 가버렸다.

수타사는 고성군관가에서 10여리나 떨어진 고성산 바로 밑 북동쪽 위치한 곳이였다. 그렇다면 나뭇잎이 그 먼거리를 날아왔던 말인가? 젊은 관헌은 허겁지겁 고성으로 내려와 사실을 군수에게 고했으며 양군수는 몇 명을 데리고 수타사 뒷산으로 갔다. 과연 그 나무는 있었다. 양군수는 그 나무를 샅샅이 조사라하고 명령했다. 「나무 밑둥에 큰 구멍이 있습니다. 풀잎사귀로 막아 놓았는데요. 치워보겠습니다.」구멍에서 나온 것은 가슴에 칼이 꽂힌 여인의 시체였다. 양군수는 생각한바가 있어 그 칼을 뽑아 간직한 후 수타사로 갔다. 

「여러분 나는 이 고을의 수령으로서 스님들의 생활을 알고 싶어 왔소, 그러니 여러분이 생활하면서 평소 쓰는 칼들을 내게 갖다 주시오. 작은 칼이든 큰칼이든 모두다 가져 오시오」그러자 수타사 승려 들은 모두들 자기칼을 가져왔고 양군수는 여인의 시체에서 뽑은 칼을 슬쩍 그 칼들속에 섞어 놓았다. 그리곤 모두들 자기 칼을 가져가도록 명했다. 생각대로 시체에서 뽑은 칼만이 남았다. 

「저 칼은 누구 것이오?」「그것은 사비승 것이옵니다」「사령은 저 사비승을 포박하라」완강히 버티던 사비승은 결국 자신의 죄를 털어놓았다. 「죽을 죄를 졌습니다. 사또 그 여인은 아들을 낳지 못해 3년간 이 절에와서 불공을 들인 끝에 득남을 했습니다. 그후 부처님의 은덕에 보답하기 위해 해마다 불공을 드리러 왔는데 그 여인의 미모가 하도 빼어나, 뒷산 나무밑으로 유인했는데 말을 듣지 않아 그만... 흑흑흑」

「그 여인의 원혼이 얼마나 원통했으면 나뭇 잎을 관가에까지 날려보냈을꼬 여봐라! 이 죄인을 관가로 압송하라」그 후에도 양봉래는 선정을 베풀어 고을 백성을 평화롭게 했으며 문장가로서도 이름을 날렸다한다. 또한 고성산 수타사에는 살인사건 이후 빈대가 많이 생겨 벽과 기둥을 덮는 이변이 발생하는 바람에 스님들은 절에 불을 지르고 홍천군 동면으로 이주했다고 한다. 지금은 절터만 남은 곳에 석탑 하나만 남아 그 옛날의 이야기를 전해주는 듯하다.

2010.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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