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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남도/서천군

서천...지현리 석탑

by 임병기(선과) 2010. 5.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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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윤경의 묘

 

서천군 한산면사무소 옆에 위치한 묘소이다. 시조묘 조성 배경, 면사무소 앞 비림과 지현리 석탑과는 분명 사연이 있을듯 보이지만 조심스러워 언급을 회피하겠다. 

 

" 충남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에 있는 한산 이씨(韓山李氏) 시조 이윤경(李允卿)의 묘. "이윤경은 고려 중기 권지호장(權知戶長)직을 역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고려 말 삼은(三隱)의 한사람인 목은 이색(牧隱 李穡)과 사육신(死六臣)의 이개(李塏), 토정비결의 저자인 이지함(李芝函) 등이 후손들이다. 인근 기산면 영모리에 명당으로 알려진 이색의 묘가 있으며, 한산면 종지리에 역시 후손이 되는 독립운동가 월남 이상재(月南 李商在)의 생가지가 있다.

 

옛날 서천 관아에 괴이한 일이 매년 벌어졌다. 관아 대청마루에 깔아둔 널빤지가 해마다 썩어 못쓰게 된 것이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한 관리가 노인이나 유식한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그 이유를 물었다. 결론은 그 땅이 명당대지이기 때문이란 것이었다. 즉 왕성한 지기(地氣)가 원인이었다는 게다. 그는 그 땅에다 조상의 뼈를 묻으면 가문이 부귀할 것이라 여겼다. 그래서 몰래 조상의 뼈를 널빤지 아래에다 평장으로 암장을 했다.

 

그 뒤로 가문이 중흥하였다. 후에 한산 이씨의 후손이 그 고을의 고위 관리가 되어 관아의 대청마루 밑을 파본 즉 전해오는 말 그대로 유골이 발견되었다. 이를 기뻐한 그 후손은 사비를 들여 관아를 옆으로 이전하고 그 곳에 봉분을 만들어 시조묘를 조성하였다. 가장 널리 알려진 한산 이씨 시조묘에 얽힌 얘기의 대강이다...출처/김해김씨 삼현파(판도판서공파)"

 

 

 

 

 

먼저, 이탑에 대하여 문화재청 자료를 살펴보자.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측되며 지방 관아의 뜰에 세워졌던 것으로 구전되고 있다. 1층 옥신의 남쪽면에 8행 66자가 음각(순화 2년 세차신묘 2월 위국 발원 조탑기)되어 있어 고려 성종 10년(991)에 세워진 것으로 호국적인 발원으로 한산지방의 호족에 의하여 세워졌던 것으로 본다."

실제로 고려초에 한산면은 한산현의 관아가 있었다. 사실적이며 객관성이 있지만  현존하는 탑중에 관아에 조성된 사례를 살펴보면 관아의 탑이라는 설에도 의문이 간다.

 

둘째, 국립문화재연구소 자료를 보자.  "전하는 말에 따르면 한산 이씨 시조인 호장 이윤경이 무덤을 쓰기 위하여

그 자리에 있던 절을 다른 곳으로 옮기는 바람에 탑만 남게 되었다고 한다."

고려초의 많은 사찰은 비보사찰 즉 명당보다는 허결한 형국에 세워 땅의 기운을 북돋아주었다. 따라서 풍수비보책과 관련하여 돌이켜보면 사찰을 옮겼지만 비보탑은 차마 이건할 수 없었을 것이다.

 

어떤 설이 옳은지 명백한 근거 없이 판단은 내릴 수 없다. 다만 한산 이씨 문중에서 시조묘의 발복으로 훌륭한 인물이 많이 배출된 것은 어떤 설에도 불구하고 국가를 위해 여간 다행한 일이 아니다. 

 

 

현재 지현리 석탑은 단층 기단, 몸돌에는 양우주가 모각되었다. 옥개석 층급은 아래로 부터 3*3*2이며 물막이 홈은 생략되었다. 옥개석 상단에는 높게 탑신 각형으로 1단 받침을 높게 괴임하였다. 처마의 반전은 약하나 풍탁공이 있는 전각의 반전은 심하다. 전체적으로 많이 파손되었지만 3층 옥개석 위에 몸돌로 미루어 원래는 5층탑으로 보인다. 

 

2010.0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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