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문정사
몇년전에도 헤매이다 발길 돌렸었다. 오늘도 산자락을 오르락 내리락 땀을 말로 흘렸다. 숯불가마 옆 석문정사 팻말을 보고 시멘트 포장 길을 끝까지 올라가면 작은 절집이 보인다. 승용차를 절에 주차하고 대웅전 뒤를 통과 해우소를 지나면 석문정이 보인다. 막곡리 석탑은 석문정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석문정(石門亭)은 선조 20년(1587)에 건립한 학봉(鶴峯) 김성일(金誠一)의 정자로 정면 4칸, 측면 2칸인 와가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석 문이란 정사 서쪽에 바위 둘이 마주보고 서 있는데, 골짜기가 휑하 니 빈 것이 마치 문과 같아 이름지은 것이다. 학봉 김성일은 이곳 청성산(靑城山) 중턱에 정자를 짓고 칠백리 낙동강 맑은 물과 자연 의 경관을 벗삼아 성리학 연구와 후진양성에 전력하였다.
그는 퇴 계(退溪) 이황(李滉)의 문하에서 성리학의 연원을 계승하였으며 선 조 1년(1568)에 문과에 급제하여 경상좌, 우도 관찰사 등을 역임하 였다. 현재 석문정사 안에는 '석문정'이란 현판과 학봉 김성일 자신 의 시판 및 송암 권호문, 지산 김팔원, 문봉 정유일의 시판, 그리고 밀암(密岩) 이재(李栽)가 지은 '석문정사중기문'이 게판되어 있다."
길가에 문화재 이정표 하나 세우면 안될까? 그렇게도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사안인가? 어렵게 만나서인지 옛애인 만난들 이렇게 반가울까? 산빛이 더욱 감성을 자극한다. 휴~~
막곡동 삼층석탑. 암반 위에 세워진 탑은 현재 동북쪽 으로 약간 기울어져 있다.지대석 위 하기단갑석을 놓고 면석은 4매의 돌로 세웠다. 각 면에 우주 와 탱주가 모각되었다. 상기단 갑석에는 부연이 보이고 탑신 받침을 2단으로 각출하였다. 옥신에는 양 우주가 양각되어 있다. 1, 2층만 남은 옥개석받침은 4단이며, 3층 옥개석 이상과 상륜부는 결실되었다.고려시대 탑으로 알려져 있다
안동의 비보 사찰 중의 하나인 성산사(城山寺)의 비보탑으로 알려져 있다. 이제 그 역활을 다했는가? 세월의 흔적과 상흔을 몸에 품고 기울어져 있다. 할 수없이 고개를 눕혀 바라보았다. 탑을 돌릴 수 없기에...
여기에서 바라보면 비보탑을 세운 이유가 분명해진다. 낙동강변에 자리한 안동의 가장 큰 재해는 홍수 였다. 강이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청성산 높은 자리에 성산사와 탑을 조성하여 물흐름을 늘 파악했던 것이다. 큰물이 들어 물이 차 올라오면 읍내 사람들을 사전에 대피시켜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장치인 것이다. 즉 막곡리 탑은 자연 재해를 불교에 의지해 예방하기 위한 고을의 수구막이 탑이다. 안동 지역에 많이 분포한 전탑도 풍수비보와 연결, 해석하는 학자도 있다.
2010.03.1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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