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회마을 충효당
하회마을에 대해서는 우리님들도 충분한 지식이 있을 것이다. 그냥 한바퀴 순례하는 수준에 그치지 말고 체험하고, 참여하며 사전에 공부한 내용들을 확인해보는 자리가 되었으면 좋겠다. 오늘 답사의 목적이 하회마을이 아니라 기억이 가물가물한 충효당 정원 석탑이기에 하회 이야기는 건너 뛰고저 한다. 충효당에 대한 내용은 문화재청 자료이다.
"조선 중기 이름난 문신이었던 서애 유성룡(1542∼1607) 선생의 집이다. 유성룡 선생은 여러 벼슬을 두루 거치고 임진왜란 때에는 영의정으로 전쟁의 어려운 상황을 이겨내는데 많은 공헌을 한 분이다. 선생이 쓴『징비록』과『서애집』은 임진왜란사 연구에 빼놓을 수 없는 귀중한 자료로도 평가 받고 있다.
충효당의 석탑? 쉽게 수용할 수는 없다. 단순히 정원 치장을 위해 절집에서 옮겨왔다는 논리로만 접근하면 이해가 되겠지만,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시각이 많을 것이다. 그 저변에는 안동문화를 양반문화로만 인식하는 사상이 깔려 있겠지만 그것은 큰 오류이다. 그렇다고 안동을 불교문화의 고장 또는 민속의 본향으로만 이해하는 것도 옳은 이해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유교문화의 대명사. 양반 마을의 상징인 하회에 불교문화의 상징인 탑이 조성(이건)되었다는 사실은 다른 지역과 달리 불교를 배척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고 공존의 문화로 수용했다는 의미로 보아도 무방하지 않겠는가? 지금도 하회마을 매표소로 지나 공연장 뒤에는 연화사가 유존하며 뜰에는 풍상 류씨들이 하회에 입향하기 전 부터 장안사 절터의 석탑이 보존되어 있다. 또한 양진당을 지을 때도 고승의 양택풍수를 받아들였다고 전해온다. 이러한 사례는 하회마을 양반가와 불교의 교류를 시사하는 대목이라 하겠다.
더우기 하회마을 선비 가문의 포용성을 상징하는 민속놀이가 계승되어 하회를 대표하는 문화로 자리잡은 하회별신굿이다. 양반과 선비를 혹독하게 비판하고 신랄하게 풍자하는 별신굿탈놀이가 전승하고 있는 것은 기층문화를 말살하지 않고 서민의 삶을 이해하고 오히려 후원하였다는 반증 아닐까?
유교를 맹신하는 덜 떨어진 선비와 유생들이 불교문화.민속문화를 이단(?)으로 취급하여 배척,말살 했지만 명망있는 양반가에서는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동행했다고 보고싶다. 이른바 사회지도층의 책임,역활인 노블리제 오블리쥬를 잘 지켜나간 마을중의 한 곳이 하회마을이라 여겨진다. 이밖에도 하회마을에 대해서는 풍수와 토착민인 광주 안씨(?)이야기 등 재미나는 내용이 많지만 에비던스가 없어 구라를 멈추겠다.
충효당 삼층석탑. 풍산읍 서미리 중대사지에 있던 것을 이전 복원하였다고 한다. 이기단,의 삼층탑이다. 하기단 상기단면석, 2.3층 몸돌이 결실되어 보완, 복원 하였다. 하기단에는 탱주. 우주가 보이고 상기단 면석과 몸돌에는 양우주만 각출하였다. 옥개석받침은 3단이며, 상륜에는 노반, 앙화가 올려져 있다.
하회에 들리시거든 충효당 앞 삼층탑을 꼭 둘러보고 문화의 상생과 공유에 대하여 잠시만 생각해보세요
2010.03.1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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