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강진군

강진...보은산 금곡사 삼층탑

임병기(선과) 2009. 10. 13. 08:04
728x90

 

 

강진읍에서 병영성(?) 향하는  까치내재.  거대한 석벽이 양쪽에 서있는 계곡길을 거슬러 금곡사를 만났다. 정확히는 삼층탑 답사를 위해서지만 김삿갓. 정다산의 자취도 더듬어 볼 수 있는 사찰이다. 김병연은 전국 유람중에 들렸고, 정약용은 다산초당에 자리잡기전 보은산에 머물렀다고 한다.

 

인적 없는 절집에는 촉성 멋진 스님의 예불 소리만 경내를 감싸고 있었다. 이럴때는 나의 마음도 차분해지고 석탑을 바라보는 눈도 깊고 그윽해진다. 인간지사 분위기 분위기가 좋아야 한다.

 

 

 

태고종 사찰로, 선덕여왕 재위시(632∼647) 밀봉() 대사가 성문사로 창건했다고 하지만 편년의 오류는 개의치 않을련다.  동국여지승람에는 금곡사로 나오나 사찰 이름이 바뀐 연대는 알 수 없다. 임란때 승병의 훈련 장소로 쓰였으나 왜구의 침략으로 불에 탔으며, 1799년(종조 23)에 편찬된 범우고에 폐사로 나오는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 이후에 폐사된 듯하다.

 

반야용선의 용두에 비해 법당 안에서 마무리한 짧은 꼬리가 용두사미 같다. 양산 통도사 극락전에서는 보이지만 영남지방 사찰의 용미는 두지 않거나 후벽으로 돌출이 보통이지만 호남 사찰에는 법당 안에서 마감한 경향이 짙다.

 

 

염불중에 잠시 휴식을 추하는 스님의 양해를 득하여 촬영한 용꼬리

 

 삼존불

 

금곡사 삼층탑. 기단과 탑신의 훼손이 심하다. 단층기단, 상륜은 멸실되었다. 기단의 우주가 두터워 면석이 작아 보인다. 이같은 우주 표현은 정림사지 백제탑의 계승이다. 1층 몸돌은 각 면마다 감실을 조성했다. 두터운 옥개석 낙수면 경사는 급하다.


1층옥개는 4개 부재. 2~3층은 2개 부재의 결합이다. 전각의 반전도 완만하며 몸돌에는 우주를 생략하여 단순하다. 몸돌받침은 별도의 부재를 조성하여 고려 전형임을 알 수 있다.

 

 
층급받침은 아래로부터 6*5*4이며 광주 서오층탑.  장성 내계리 화순 한산사지 탑처럼 초층 탑신을 두 개 부재로 포개었다. 이또한 백제 고토에 보이는 형식으로 어떤 맥이 흐르지 않을까?

 

전체적으로 균형있는 체감으로 인해 안정감이 있다. 1988년 6월 해체 복원공사를 실시하였으며, 이때 3층탑신에서 세존진신사리 32과가 발견되었다고 한다.

 

 

우연하게 찾은 옥개석의 풍탁홈. 옥개석 4모서리를 관통한 흔적으로 보아 처음부터 의도된 조각이다. 모서리 양쪽에 얕은 홈보다 훨씬 더 숙련되고 고도의 기술력을 가진 장인의 작품 아닐까? 순간의 방심과 실수로 옥개석 모서리가 훼손될 확률이 높을텐데 이러한 감각을 가진 장인은 멋장이임에 틀림 없었을 것이다.

 

 

금곡사에 전해오는 김삿갓글과 관련된 이야기를 다음에서 검색했다.

 

김삿갓과 강진에 머물면서 선비의 안내로 금곡사에 들렸다. 입구에는 계곡을 사이에 두고 양편 둔덕에 집채보다 큰 바위가 마주 서 있었는데, 마치 싸움닭 두 마리가 으르릉거리며 서 있는 형상이라 예로부터 쟁계암(爭鷄岩)이라 불려오고 있었다. 

 

 “금곡사가 번창하지 못하는 것은 입구에서 닭 두 마리가 싸우고 있기 때문이랍니다. 삿갓선생께서 저들의 싸움을 좀 말려주시지요.”


김삿갓은 바랑을 내려 지필묵을 꺼냈다.
 
  雙岩並起疑紛爭     두 바위가 마주 서서 싸우는 것 같으나
  一水中流解忿心     중간에 개울이 흘러 분한 마음 풀어주네.

 선비는 크게 깨우친 듯 오래도록 고개를 끄덕였다.

2009.07.28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