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강진군

강진...만덕산 옥련사 목조삼존불.석불좌상

임병기(선과) 2009. 10. 12. 08: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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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읍내가 내려보이는 만덕산 자락에 자리한 옥련사는 스님의 엄청난 땀이 배인 불사 흔적이 축대를 비롯 처처에 보인다.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텅빈 절집 대웅전도 용화전도 문이 닫혀 목조 삼존불.석불좌상도 뵙지 못하고 돌아올 상황이었다.

 

잠시후 대웅전 뒤에 인기척이 있어 다가섰더니 말을 아끼는 젊은 보살님이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부끄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다가 다시 호미로 잡초 제거에 여념이 없다. 방문 목적을 말씀드렸더니 대답 대신 바위에 놓인 열쇠꾸러미를 가리킨다. 묵언 중인지 신체적 이상인지 알 수 없었지만 대화 한 번 없이 그렇게 인연짓고 돌아왔다.

  

 

옥련사(玉蓮寺)는 전남 강진군 강진읍 덕남리 기룡 마을 뒤 만덕산의 중턱에 자리 잡고 있는 절이다. 1947년 이후 1951년 11월 능화(能華)스님과 인근 신도들의 노력으로 백련사(白蓮寺)의 소속이던 송광암(松廣庵)터에 초가집 두칸을 지어 강진 대구면 용운리에 있는 정수사(淨水寺)에서 목조여래좌상 1구를 옮겨와 봉안하면서부터 법등을 밝혀오고 있다.

 

대웅전 목조삼존불. 강진군 대구면 용운리에 있는 정수사에서 한국전쟁시기인 1951년에 옮겨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1991년 발견된 복장 유물은 장방형의 한지로서 가로 75.8㎝, 세로 77.7㎝이며 행서로 묵서한 것이며, 불상을 조성하게 된 배경과 시주자들의 명단이 기록되어 있다고 한다. 기문의 내용을 보면 1684년 봄에 불상조성을 시작하여 그해 겨울 11월 18일에 완성하였다. 그런데 이 불은 16나한전에 보신 16나한을 조성하면서 이 불상도 함께 조성한 것임을 알 수 있다. 

 

 

불상ㅇ은 조선후기 특징인 고개를 숙이고 있다. 강진군청 홈에서 자료를 옮겨온다. 머리는 나발이나 육계와 거의 구분되지 않고 전면에 계주가 뚜렷한 것이 특징이다. 이마에 백호가 보이며 눈은 일자형으로 반개하고 눈꼬리가 약간 치솟았다. 코는 상호의 각 부분과 비교해 볼 때 유난히 크며 콧날이 넓어 반원통형에 가깝고 콧볼의 상단만 약간 파서 형식적으로 처리하였다. 입은 코에 비하여 현저하게 작고 얕으며 호형이고 인중은 희미하게 표현하였다. 눈썹과 눈은 먹선으로 그렸고 입은 붉은 칠을 하였다. 콧수염은 옆으로 두 줄을 그었고 입술 밑과 턱밑에도 먹선으로 수염을 그렸다. 턱밑에는 1조의 음각선을 넣어 양감 있게 처리하였다. 귀는 크고 두툼하며 귓불이 무퉁하다. 목은 짧으며 삼도가 있다.

 

법의는 두툼한 통견이나 오른쪽 어깨에 걸친 법의자락이 팔굽까지만 내려왔으며 그 이하는 반나로 처리하였다. 이러한 형식은 고려 후기에서 조선시대 후기까지 연결되는 법의의 양식임을 알 수 있다. 법의를 자세히 살펴보면 왼쪽 어깨에서 내려온 법의 자락은 수지그로 흘러 손목까지 감싸고 있으며 오른쪽 어깨에서 내려온 법의 자락은 팔굽까지만 내려와 옆으로 흘러 반단(半袒)으로 처리하여 팔굽에서 팔목까지는 법의의 의문이 없다. 승각기는 없으며 군의(裙宜)는 가슴 밑에까지 올라와 있다.

 

군의의 상단 옷주름은 규칙적으로 주름잡아 앙연형으로 장식화한 형식으로 처리하였고 그 밑에 1조선의 의대가 돌려져 있을 뿐 띠매듭은 없다. 복부의 의문은 넓은 U자형이고 발목에서 양 무릎의 아래쪽으로 퍼진 의문은 부채꼴이다. 수인은 항마촉지인을 결하고 있는데 왼손은 별도로 만들어 끼운 것이며 왼손의 손목 끝부분에 `석가`라 묵서하여 이 불상이 석가여래임을 표시하고 있다. 앉은 자세는 오른발이 왼발위로 올라오는 항마좌를 취하고 있고 어깨선은 거의 각을 이루고 있어 경직된 느낌을 주고 있다.

 

이 목조여래좌상은 임진왜란이 끝나고 약 90년이 지난 시대로서 이제 서서히 전란의 어려운 시기를 극복하면서 다시 기운을 찾는 그러한 시기에 해당된다. 따라서 각 사찰에서는 많은 불사와 함께 불상을 조성하고 있을 때다. 옥련사 불상 역시 비록 조선시대 후기에 속한 불상이긴 하나 그 조성연대를 알 수 있고 또 그 시대의 불상양식의 표준이 되고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

 

 

대웅전 옆 용화전 미륵불. 나한상? 민불? 미륵불? 조선시대에 만들어진 불상으로 추정하며 방형으로 좌대는 처음부터 없었는지 보이지 않는다. 소발에 둥근 얼굴, 귀는 큼직하다. 백호가 보이고 이목구비와 수염을 표현했다.

 

 

가슴으로 향한 두 손의 수인은 불분명 힘들다.  전체적인 모습이 불상의 형태와는 거리가 먼감을 주고 있다. 법의는 의습이 나타나지 않고 편평하게 처리하였으며, 특히 하체는 부실(?)하여 불안한,쪼그려 앉은 모습으로,  일반적인 불상과는 거리감이 있어 민불로 보고 싶다.

 

 

멀리 강진읍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시문학 동인인 정지용이 해금되기 전에 영랑생가를 방문했었다. 남도 답사 1번지로 회자되기 전에는 참 조용한 소읍이었다. 군시절 3년 동안 현재도 유일하게 연락되는 친구놈이 강진출신이다. 자대생활이 아니라 논산훈련소와 육군병참학교 동기놈이다. 그러고 보니 한참이나 소원했다. 모친도 연로하셨을텐데...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김영랑

 

 

돌담에 속삭이는 햇발같이
풀 아래 웃음짓는 샘물같이
내 마음 고요히 고운 봄길 위에
오늘 하루 하늘을 우러르고 싶다

 

새악시 볼에 떠오는 부끄럼같이
시(詩)의 가슴에 살포시 젖는 물결같이
보드레한 에머랄드 얇게 흐르는
실비단 하늘을 바라보고 싶다

 

 

2009.07.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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