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강진군

[스크랩] 남도땅 답사 1번지 / 강진 월남사지 삼층탑

임병기(선과) 2008. 6. 6. 08:06
728x90
차밭이 이어지고 있는데도 배부른 중생들은 감흥이 없어 보인다. "어이! 사진 한 방 박을래?"
"수 많은 놈이 박아서 더이상 나올것도 없어요! 제기럴! 그러면 마부꾼을 위해 이미자의 낭주골
처녀 노래라도 들려주던지...
월출산 영봉과 차밭을 감상하며, 정다산과 추사가 유배길에 넘었을 그 언덕을 넘어서면 월남사
지(月南寺址)다.


고려 진각국사(운주사 답사기에 언급하기 위해 무신정권과의 관계는 여기서 생략하겠다)가 창건
했다고 알려졌을 뿐 폐사의 흔적은 알 수 없지만 목포대의 발굴 조사 보고서를 보면 무위사와 비
슷한 가람에 고려시대에 번창했다는 것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월남사지 (1995.9.30, 목포대박물관 학술총서 제36책)

전남 강진군 성전면 월남리에 위치한 월남사지와 월남사 관련 문헌과 주변유적에 대한 정밀지표조사 보고서이다. 조사는 1994년 12월부터 1995년 8월까지 이루어졌다. 내용은 월남사지의 역사문화적 배경, 월남사의 연혁과 그 변천, 월남사지 유적·유물, 월남사지 주변일대 유적, 월남사지의 정비 복원 방안 등으로 나누어 정밀조사한 결과 이다.

월남사지는 월출산 남쪽 평지에 위치하고 있는데 전체규모는 상당한 면적을 차지하 였던 것 같다. 현재 외곽담장의 흔적이 잘 남아 있는데 동-서 방향인 전면의 길이가 175m, 남-북 방향인 측면의 길이가 185m로서 총면적은 약 1만여평에 달하고 있다.

가람배치 형식은 전체적으로 보아 완만한 경사지를 4개의 단으로 만들고 그 단부에 축대를 쌓아 점차적으로 오르면서 각각의 단에 평평한 대지를 조성하여 건물들을 배 치시킨 것으로 보인다. 또한 좌·우측으로도 5개의 단을 두어 각각의 단에 대지를 조 성한 것으로 보이는데 다만 軸線은 대웅전을 중심으로한 건물과 다르게 배치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월남사지에서 수습된 유물은 기와류와 자기류 뿐이지만, 기와류는 다양하게 수습되 었는데 문양, 태토, 소성도 등으로 미루어 통일신라말∼조선시대로 추정된다. 그러나 통일신라와 조선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은 극소수이고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유물이 주 를 이룬다. 자기류도 완, 접시, 병, 대접 등 다양하게 수습되었는데 모두 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유물들이다."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며 돌과, 석축이 얼기설기 담장을 이루며 가정집 같은 월남사 앞에 한눈에 백제계열임을 알수 있는 석탑이 보인다. 명백한 자료나 증명할 만한 에비던스도 없지만, 개인적으로는 월남사지 석탑은 분명 월출산의 지기(地氣)와 관련 있다고 믿고 싶어, 쪼구려 앉아 상륜부와 월출산 정상을 눈에 넣어 보았다.


아직도 의견이 분분하지만 옥개석 받침, 낙수면의 부재로 인해 모전석탑 형식으로 불리어 지기도 하나, 주지하는 바와 같이 백제는 목탑에서 석탑으로 발전되고, 신라는 목탑-전탑-모전석탑-석탑으로 유형이 변천되는데(물론 이설도 있다) 어째서 고려시대에 백제이전의 패러다임이 보이는 것일까?


더더구나 많은 자료와, 동리의 촌로들의 증언에 의하면 쌍탑이었다는데....
쌍탑이라니?
신라의 일금당 쌍탑, 고구려의 삼금당 일탑에 비해 백제는 일금당 일탑이 전형인데 혹 백제계열의 일금당 쌍탑이 있었던가?
익산 미륵사지에는 동탑, 서탑 쌍탑 아니냐고요?
미륵사지는도 분명 일금당 일탑 구조입니다. 즉 동,서 석탑 가운데 목탑이 있었으며 이는 미륵이 하생하여 용화수 그늘 아래서 3회 설법을 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으로 각각의 탑에는 금당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니, 월남사지 탑은 시대와 양식이 심하게 왜곡된 매력 넘치는 탑 아닌가?


탑 조성에는 흔치 않은 슬픈 전설도 전해내려오니...

"옛날 이 3층석탑을 만든 석공에게 젊고 아리따운 아내가 있었다.
공은 아내에게 탑을 완성할 때까지 절대 아오지 말라고 당부하고 월남사로 떠났다.
그러나 어느 날 아내는 너무 오랫동안 집을 비운 남편이 견딜 수 없이 보고 싶어 몰래 월남사를 찾아갔다.
아내는 먼발치에 숨어서 탑을 만드는 일에 열중하고 있는 남편을 훔쳐보았다.
불사에 열중한 남편은 그 일에만 삼매경에 빠져 있었던지 수척해 보였다.
돌아서려던 그녀는 아쉬운 마음으로 발걸음이 옮겨지지 않아 작은 목소리로 남편을 불러봤다. 사랑하는 아내의 목소리를 들은 석공은 그녀를 향해 머리를 돌렸다.
순간 벼락이 치며 그가 완성직전에 있던 석탑은 조각나고 그의 사랑하는 아내는 돌로 변해버렸다.
석공은 돌이 되어버린 아내을 어루만지며 눈물을 흘렸으나 이미 때가 늦어 버렸다.
다시 처음부터 일을 새로 시작해야 했던 석공은 인근을 뒤져 석재를 구했으나 쓸만한 돌이 없었다.
석공은 생각 끝에 그의 부인이 화신한 돌을 쪼아 다시 이 탑을 완성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즐기는 것이 우선이니 미스테리는 학자들의 몫으로 남겨두고 월남사지 창건주로 알려진 진각국사의 깨어진 비석에 비해 참으로 당당한, 호기로운 귀부를 바라보며 혹 무신정권을 미화하기 성역화 사업으로 건립되지는 않았을까? 라는 생각도 지울 수 없더라!


돌아 나오면서 안내문에 표기된 진각국사의 입적이 1234년 이라 동행한 넘들에게 같은 해에 무슨 역사적 사건, 또는 학교 때 암기했던 기억이 없냐고 해도 배부른 중생들 마이동풍이더라!!
직지심경, 상정고금예문 인쇄된 해가 아니었던가?

2005.03.21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메모 :
728x90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