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라남도/장성군

장성...수산리 오층탑. 오성진곤비

임병기(선과) 2009. 9. 13. 07: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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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반 전부터 찾기 힘들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국도변 소방서 맞은편에 있다는 정보만으로도 쉽게 만날거라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인내심의 한계점에서 개인집에서 발견했다. 국도변에 안내 이정표만 세워두었어도 장성군청은 많은 답사객의 한결같은 짜증난 불평불만은 듣지 않을 것이다.뿐만 아니라 문이 잠긴 개인집에 들어갈 수 없어 도둑처럼 까치발을 하고 기웃거려야하는 우리의 모습이 우스꽝 스럽기 그지 없다.

 

진원면 진원리 ‘탑선이골’에 있었던 탑이었다고 전해온다. 그렇다면 진원리 오층탑과 안태 고향이 같은 탑일까?곁의 비석 용도도 궁금하지만 확인할 길 없으니 화중지병에 불과하여 먼 길 달려온 객의 맘은 심란하다.

 

 

기단부는 매몰되어 갑석이 지대석 같다. 몸돌에는 양우주를 새겼고 2층부터 체감이 심하다. 옥개석 낙수면 기울기는 급하며 우동이 뚜렸하고 모서리에는 반전이 보인다. 옥개받침은 1~3층 4단, 4~5층 3단이다.

 

여러 자료에 상륜에는 노반과 보주가 남아 있다고 했어나 보주는 멸실되었다. 기단부 결실로 인해 안정감이 떨어진다. 조성시기는 고려시대로 본다. 

 

 

오성 진곤비 (鰲城鎭坤碑)

정원에 오층석탑과 나란히 서있다. 국립문화재연구소 자료를 가져왔다. "호패형 비석으로 1880년 9월에 세웠는데 비와 탑을 세운 이유는 1600년 진원현과 장성현이 합쳐진 뒤 읍민들의 생활이 빈곤하게 되자 그 이유를 알아본 결과 옛읍 성산터는 와우형국(臥牛形局)인데 산은 숲이 성하나 물은 곧게 달아나 수구(水口)가 무너진 때문이라 하여 이를 비보(裨補)하고자 곤방(坤方)에 탑을 세우고 소를 먹이가 많은 광산군 쪽으로 도망가지 못하게 조산(造山)을 쌓고 소 먹이를 넣어 둔 적초루(積草樓)를 세웠다고 한다."

 

경북성주 동방사지 칠층탑도 와우형국에서 소를 묶어 둘 자리에 세운 탑으로 우리 나라 여러곳에 비보탑과 소의 입 앞 위치에 풀을 쌓은 모습의 조산을 쌓는  비보책을 볼 수 있다.  따라서 수산리 석탑은 장승. 솟대. 당산 처럼일종의 고을맥이 탑이다.

 

비의 내용으로 추측컨데 수산리 석탑은 진월면 안태고향에서 반출되어 장성 어딘가에 서있다가 1880년 고을맥이 비보탑으로 현위치에 이건된 것으로 여겨진다. 참으로 기구한 운명의 석탑이 아닐 수 없어 안타까움 금할 길 없다. 지금이라도 많은 사람이 자유롭게 만나도록 넓지 않아도 좋으니 아늑한 공간을 조성하여 엉어리진 한을 우리시대에 풀어 주면 좋겠다.  

2009.07.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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