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양군

영양...신구리 삼층탑.석불

임병기(선과) 2009. 7. 2. 07: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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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랬었다. 오래전 이 탑을 찾기위해 초등학교 정면 길을 따라 들길을 헤메이었다. 님은 초교 뒷마을에 계셔 이렇게 반겨주신다. 텃밭에는 명아주가 지천이다. 탑의 역사 만큼이나 많은 민초들의 친구였을 청려장의 재료인 명아주와 탑 그림자가 너무도 잘 어울린다.

 

 

하기단 갑석에는 1단 괴임과 우동을 두었다. 상기단 흰 화강암 면석을 끼웠지만 예전에는 감실속에 석불이 계셨다.통일신라시대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 

 

 

1층 몸돌의 문비와 자물쇠

 

 

몸돌에는 우주를 새겨 놓았다. 3층 몸돌은 복원하였으며 지붕돌 받침은  4단이다. 상륜에는 뒤집힌 노반과 복발이 남아있다.

 

전해오는 전설에 의하면 신구리에는 오래 거주한 사람이 없다고 한다 그 이유인즉 마을 형국이 배와 같이 생겨 배에 물이 생기면 좋지 않다 하여 우물을 파지 않았으며, 배의 모양이므로 많이 실으면 가라앉는다 하여 재산을 모으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는 유래가 전해져 와서 부자가 되면 이사를 가 버리기 때문이라고 하니 씁쓸하다.

 

그렇다면 신구리 석탑은 배가 떠내려가지 말라고 닻을 내리고 밧줄을 매는 도구를 상징하는 비보탑이엇을 개연성도 충분하지 않을까?

 

 

탑과 어울리는 명아주로 만든 청려장에 관한 자료를 다음에서 발췌해왔다.

크게 자란 명아주 줄기로 만든 지팡이를 "청려장(靑藜杖)" 이라 하는데청려장는 가볍고 탄탄하고 모양도 좋아서 옛부터 노인에게 주어진 귀한 선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통일 신라시대 부터 임금이 장수 노인에게 청려장을 직접 하사 했다고 전해지며 조선시대에도 청려장 풍습은 이어 졌다.

 

나이 50이 되었을때 자식이

아버지에게 바치는 지팡이는 가장(家杖)

60대에 마을에서 주는 것은 향장(鄕杖)

70대에 나라에서 주는 것은 국장(國杖)

80세가 되어 임금이 하사한 것은 조장(朝杖)으로

각각 불렸습니다.

 

퇴계 이황(이황) 선생이 짚고다녔던 청려장이 지금도 안동의 도산서원에 보관 되어 있다. 1596년에간행된"본초강목(본초강목)에는 청려장을 짚고 다니면 중풍에 걸리지 않는다는 기록이 있으며 민간에서도 이것이 신경통에 좋다하며 귀한 지팡이 대접을 받았다.

 

 

영양 신구리 석불 좌상. 처절하게 보시를 한 모습이다.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이자리에 서서 바라보는 내가 부끄럽고 미안하여 정면으로 쳐다보지 못했다. 법의는 우견편단으로 보이며 수인은 항마촉지인으로 추정된다.

 

 

작은 아주 작은 창살없는 전각이 있었으면 좋겠다. 배례석이 없어도 향공양, 초공양 자리는 마련해두자. 사시사철 피고지는 꽃을 잘 바라볼 수 있게 아름다운 연꽃좌대가 아니라도 얕은 토축이라도 조성하면 금상첨화겠다.

 

아~ 이런 내마음이 전달되었는지 님은 볼에 핀 홍조를 감추려는 듯 개망초 뒤로 얼굴을 숨기신다. 그날이 오면 다시 뵈러 오겠습니다. ()()() 

2009.0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