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북도/영양군

[스크랩] 영양 / 주실 마을과 조지훈

임병기(선과) 2008. 6. 6.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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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동탁을 알만한 식견도,문학적 이해도 일천하지만 봉화 청량사를 답사하기 위해서는 주실마을
을 경유하는 코스를 택했다. 
남들은 조지훈 이름석자에 늘 '지조론' '승무'가 떠오를지 모르지만, 나는 고교시절에 2,3학년
때 국어를 가르켜주신 잊지 못 할 은사님이신 정규훈 선생님에게 배운 주도 18단계가 먼저 생각
난다. 
아주 재미있게 들었던 기억과 그 당시에는 금기시(?) 했을 정지용의 이름을 거론하시며 "청록
파는 지용의 백록(?)에서 나왔다."라고 하셨으며,시험성적이 좋지 않은 학생에게 김세레나의 
'산처녀'노래를 시켰는데 요즈음도 그러시는지요? 
(은사님께서는 울카페의 깨구리님과 지금도 자주 만나는 친구분 이십니다) 
[주도 18 단계] 
1. 불주(不酒) : 술을 아주 못 먹진 않으나 안 먹는 사람 
2. 외주(畏酒): 술을 마시긴 하지만 겁내는 사람 
3. 민주(憫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으나, 취하는 것을 민망하게 여기는 사람
4.은주(隱酒) : 마실 줄도 알고 겁내지도 않고 취할 줄도 알지만, 돈이 아까워서 숨어서 마시
는 사람 
5. 상주(商酒) : 마실 줄도 알고 좋아도 하면서 무슨 이득이 있을 때에만 술을 내는 사람 
6. 색주(色酒) : 성생활을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7. 수주(睡酒) : 잠이 안 와서 술을 마시는 사람 
8. 반주(飯酒) : 밥맛을 돋우기 위해 술을 마시는 사람 
9. 학주(學酒) : 술의 진경을 배우는 주졸(酒卒) 
10. 애주(愛酒) : 술을 취미로 맛보는 사람. 주도(酒徒) 1단 
11. 기주(嗜酒) : 술의 미에 반한 사람. 주객(酒客) 2단 
12. 탐주(耽酒) : 술의 진경을 체득한 사람. 주호(酒豪) 3단 
13. 폭주(暴酒) : 주도를 수련하는 사람. 주광(酒狂) 4단 
14. 장주(長酒) : 주도 삼매에 든 사람. 주선(酒仙) 5단 
15. 석주(惜酒) : 술을 아끼고 인정을 아끼는 사람. 주현(酒賢) 6단 
16. 낙주(樂酒) : 마셔도 그만, 안 마셔도 그만, 술과 더불어 유유자적하는 사람. 주성(酒聖) 
7단 
17. 관주(觀酒) : 술을 즐거워하되 이미 마실 수 없는 사람. 주종(酒宗) 8단 
18. 폐주(廢酒) : 술로 말미암아 다른 술 세상으로 떠나게 된 사람. 9단 
하지만 누가 뭐래도 보통사람들에게는 지훈과 승무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지 않겠는가? 
"1938년 가을 수원 용주사에서도 영산재가 열렸다. 그때 영산회상의 우아한 가락에 맞춰 펼쳐
지던 승무를 보고 그 아름다움에 반하여 재가 파한 후 늦게까지 절 뒷마당 감나무 아래서 넋을 
잃고 앉아 있던 시인이 있었다.
" 어느 이름 모를 승려의 승무를 본 후 가슴속에서 피어나는 시상(詩想)의 흥을 이기기 어려워, 
긴 밤 내내 마음 설레었던 그 청년의 이름은 조지훈(1920-1968)이었다. 
“나는 시정을 느낄 땐, 뜻 모를 선율이 먼저 가슴에 부딪침을 깨닫는다.” 이렇게 해서 가장 
아름다운 모국어 시의 하나인 <승무>가 탄생하게 된다." 
[승무]...조 지훈 
얇은 사(紗)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파르라니 깍은 머리 
박사 고깔에 감추오고 
두 볼에 흐르는 빛이 
정작으로 고와서 서러워라 
빈 대에 황촉불이 말없이 녹는 밤에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
소매는 길어서 하늘은 넓고 
돌아설 듯 날아가며 사뿐이 접어 올린 외씨 보선이여 
까만 눈동자 살포시 들어 
먼 하늘 한 개 별빛에 모두오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 방울이야 
세사에 시달려도 번뇌는 별빛이라 
휘어져 감기우고 다시 접어 뻗는 손이 
깊은 마음 속 거룩한 합장인 양하고 
이 밤사 귀또리도 지새는 삼경인데 
얇은 사 하이얀 고깔은 고이 접어서 나빌레라 
주실마을과 조지훈 생가에 대해 조용헌 교수는 "경북 영양군 일월면 주실마을은 경북 봉화에서 
청량산을 끼고 돌아가는 길은 장엄하다. 청량산 때문이다. 
청량산이 보통 산인가? 층층의 바위 절벽 중후하고 청결한 산사의 기품을 느끼게 하는 바위 절
벽이 돋보이는 산이다. 산 이름처럼 산의 전체적인 기운이 말고 상쾌하다. 이런 산이 남아 있
다는 것이 축복 아니겠는가? 아직 관광객의 탁기로 오염되지 않은 산임을 멀리서도 알 수 있다. 
퇴계 선생이 항상 청량산을 흠모했던 이유를 짐작할 수 있겠다. 조지훈 생가는 주실마을 중심
부의 "호은종택"으로 조지훈의 생가는 종갓집인 것이다. 
호은은 주실 조씨(한양조씨)들의 시조이자 조지훈의 선조로서 기묘사화 때 낙향한 이동네에 들
어온 분의 호이다."라고 오백년 내력의 명문가 이야기에서 말하고 있다.
마을을 비보하며 지세를 북돋아 주는 목적의 주실마을 앞 동수(洞藪) 중심에 '승무'시비가 서 
있으리라는 예상을 깨고 500여 명의 후학들이 세운 '빛을 찾아 가는 길 '시비가 반긴다.충남 
홍성 만해 생가에서도 '님의 침묵'이 아닌 '나룻배와 행인'이 시비에 그려져 있었던 것처럼... 
빛을 찾아가는 길...조 동탁 
사슴이랑 이리 함께 산길을 가며 
바위틈에 어리우는물을 마시면 
살아 있는 즐거움의 저 언덕에서 
아련히 풀피리도 들려오누나. 
해바라기 닮아가는 내 눈동자는 
자운 피어나는 청동의 향로 
동해 동녁 바다에 해 떠오는 아침에 
북받치는 설움을 하소하리라. 
돌뿌리 가시밭에 다친 발길이 
아물어 꽃잎에 스치는 날은 
푸나무에 열리는 과일을 따며 
춤과 노래도 가꾸어보자. 
빛을 찾아가는 길의 나의 노래는 
슬픈 구름 걷어가는 바람이 되라. 
동탁의 시비 옆 금줄이 둘러쳐진 당산나무 건너에는 동생 지훈에게 문학의 싹을 길러 주었다고 
알려진 형 조동진의 시비가 동탁을 비롯 형제들에 의해 건립되어 있다. 국화라는 시의 내용이 
21세의 요절한 그의 운명을 예견한 듯 하여 야릇한 마음이 든다.
菊花...조 동진 
담밑에 쓸쓸히 핀 누른 국화야 
네 그 고독의 姿態가 아프다 
바람에 불려불려 섧게 울어도 
기다리는 나비는 그림자도 없고 
서릿발 차운 손길에 
마당가 梧桐잎새가 한 개 두 개 
길게 살아 무엇하리 
오래 살아 무엇하리 
끝내 구슬픈 삶일 양이면 
오 菊花 외로운 내 마음아 
처량한 바람소리에 가슴이 째진다. 
주실마을은 군사정권 시절 이중과세를 방지하고 신정을 설날로 쇠도록 국가정책으로 몰아부칠 
때 단골로 TV에 소개되었듯이 오래전부터 신정을 보내며, 신학문을 일찍 수용했다는 등의 선입
견 때문인지 고택 답사시 느끼든 설레임이나 아늑한 고샅,정겨운 돌담장이 눈에 그려지지 않는
다. 
한양조씨의 교육 양성 기관이었던 월록서당,옥천종택,의병장 조승기, 지훈과 조부 조인식이 태
어났다는 주실마을 중간에 위치한 홍살문에 태극문양이 새겨진 호은종택등의 고가도 있지만 금
년 12월 27일 까지 진행된다는 주실마을 정비사업 공사로 인해 마을 전체가 어지롭다. 
수많은 인재를 배출한 동네이기에 풍수적 해석이 가미된 설화,전설을 조사해보았지만 문필봉 
이야기만 짧게 보이기에 위에서 언급한 조용헌 교수의 책에서 호은 종택과 三不借 이야기를 되
새기며 봉화로 발길을 옮겼다. 
"호은종택에는 370년 동안 내려오는 가훈이 있다. 바로 삼불차(三不借)라는 것이다. 
첫째.財不借로 재물을 빌리지 않고, 
둘째.사람을 빌리지 않는 人不借, 
세째.문장을 빌리지 않는다는 文不借이다. 
돈 없는 상황에서 재불차만 부르짖을 수 없고 370년 전부터 돈 50마지기가 누구 하나 손대지 
않고 오늘에 이른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인불차란 사람을 빌리지 않는다는 즉 양자를 두지 않는다는 말이다. 
문불차 글을 빌리지 않는다는 말이다 
주실 마을은 궁벽한 산골 동네임에도 불구하고 근세에 14명의 박사가 나왔다. 그것도 시원찮은 
나이롱 박사가 아니고 한국인문학의 대가들이다. 대표적 3인방이 서울대 국문학과 조동일 교수, 
조동걸 교수, 성대 부총장을 지낸 조동원교수 조지훈 선생도 조동탁이니 모두 같은 항렬인 것
이다.
남에게 아쉬운 소리하지 말고 살자는 각오가 어디 쉬운 각오인가! 그것도 당신 자신에게만 강
요한 원칙이 아니라 후손 대대로 그렇게 살도록 당부한다는게 어디 보통 신념인가! 삼불차 이
야기를 듣고나니 그러면 그렇지 하는 생각이 든다. 조지훈의 "지조론"은 삼불차의 바탕 위에서 
나온 것이다. 강자 밑에 약졸 없다는 말마따나 그 선조에 그 후손이다. 조지훈은 어릴 때부터 
삼불차 집안의 훈도를 받으면서 자랐기 때문에 "지조론"이 나올 수 있었다." 
2005.05.28 
출처 : 저 산길 끝에는 옛님의 숨결
글쓴이 : 선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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